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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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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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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6-12-31 00:00    조회 5,178    댓글 0  
 
마태복음12:1~8절         “밀밭에서의 교훈”        2006. 10. 22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이 무르익어 고개 숙인 밀밭 사이의 시골길을 걸어갑니다. 바리새인들이 함께 동행 하고 있었는데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의를 걸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이의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이 안식일인데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걸어가면서 밀 이삭을 손으로 훑어서 먹더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안식일인데 안식일에는 일해서는 안 되는데 일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관심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찬에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관심 있는 문제들을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왜 입니까?
마9:2절에서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이르시기를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이 후부터 이 사람이 참람하구나 그냥 내 버려둬서는 안 되겠구나 유대 지도자들은 이때부터 예수님과 단절하기 시작했고 또 다른 하나는 단절의 이유는 예수님이 생각하는 의와 죄인에 대한 견해와 유대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의와 죄인에 대한 견해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의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므로 얻을 수 있는 행위에서의 의를 의로 생각했고 이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죄인들과 철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들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의에 대하여 한 마디로 규정짓기를 외식이라는 것이고 자신들이 멀리하는 죄인들을 예수님은 오히려 친구라고 하면서 저들을 가까이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는데 오늘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훑어 먹는 것을 보고 옳다 잘 걸렸다 예수야 한 번 당해봐라 안식일을 범했다고 보고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지키는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배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동을 금하게 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모든 유대인들과 그 가축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불도 지피지 못하게 하셨고 그러므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먼 거리도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상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나뭇가지를 주우려다가 발각되면 돌에 맞아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규제가 무엇 때문이었다고요?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예배를 거룩하게 드리며 주 안에서 쉬게 하시려는 의미의 이런 몇 가지 안 되는 규제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세요.
네이버 -> 유대인의 안식일 -> 카페 두 번째 부분 “유대인의 안식일” 클릭
현대 유대인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나?
1. 청 소
가. 집안 청소는 안식일에 해야 한다.
나. 청소 중, 빗자루가 부러지면 수리할 수 없다.
다. 먼지 나는 맨 땅에 물 뿌리는 것은 허락되지만, 타일 바닥 청소는 금한다.
라. 식사 중, 식탁보에 물 혹은 우유 같은 것이 흘렀을 때, 행주로 훔쳐내는 것은
    허락되지만, 씻거나 빠는 것은 금물.
2. 중앙난방
가. 안식일에 작동은 근본적으로 금할 뿐 아니라, 온수를 작동하는 것도 불허한다.
나. 그러나 이방인이 난방 스위치를 대신 작동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때에도 안식일에
    정한 온도에 맞추어야 한다.
다. 안식일 사용 가능 온도는 섭씨 45도이다.
라. 젖은 손을 라제이터에 말리는 것도 금물이다.
3. 도구사용
가. 셔터 문이 고장 난 것을 수리하는 것은 금한다.
나. 안식일에는 전기로 사용하는 벨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 엘리베이터, 에스칼레이터 사용하지 않는다.
라. 햇빛 가리개도 사용 못한다.
마. 자동문 사용을 금지한다.
4. 위급상황
가. 위험한 동물, 벌레들은 안식일에도 죽일 수 있다.
나. 광견, 독사, 전갈 등등...
다. 깨진 유리, 바늘 등을 제거할 수 있다.
라. 가습기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안식일 전에 젖은 옷으로 가습을 시도할 수 있다.
5. 동식물
가. 나무와 같은 식물에게 물을 줄 수 없다.
나. 열매따기, 나무 오르기는 물론 사다리를 사용할 수 없다.
다. 풀밭에 앉는 것은 허락된다.
라. 꽃 냄새를 맡을 수 있으나, 과일 냄새는 맡는 것을 불가하다. 왜냐하면 과일 냄새를
    맡고 먹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마. 동물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출 20:10).
바. 젖소, 젖 짜기를 불허한다. 그러나 젖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이방인이 젖소 젖을
    짜는 것은 가능하다.
6. 그 밖의 일
가. 업무 편지, 건축 설계도면, 은행 보고서, 여권, 신분증과 같은 우편물을 개봉할 수 없다.
나. 시계 테입 감기는 불허하지만, 병자의 위급한 상황이나 이방인이 작동 시에 가능하다.
다. 입으로 부는 휘 바람은 가능하지만 도구로 부는 것을 일체 금물이다.
라. 원천적으로 \'춤\'은 불허하지만, ‘심하 토라’라는 명절에는 춤이 허락한다.
마. 어린이 유모차를 인도에서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소리가 덜 나는 모래 길 위에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바. 정결 의식을 행하는 탕(Mikveh: 침례탕과 비슷)의 물을 데우는 것은 허락된다.
사. 안식일에 초를 키는 것은 허락된다.
아. 달리기, 게임 등은 금물이다.
자. 가게의 물품을 진열창을 통하여 볼 수 있으나, 가격을 알아보는 것은 금물이다.
차. 안식일 생명을 구하는 것은 허용되는 것이다( 참고 : 레 18:5).
하. 안식일에는 어떤 폭행도 금지된다(참고 : 겔 20:25).


현대인 유대인들이 이 정도였으니 이천 년 전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대하여 어느 정도였을까 상상이 가고 남습니다.
올해는 어떨까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절대로 없었습니다마는 요 근래 생긴 일들인데 기껏 추수해서 곡식 말려 놓은 것을 차 대놓고 몽땅 걷어가 버리는 가하면 아예 남의 논에 들어가서 벼까지 몽땅 베서 도망쳐 버리는 아주아주 나쁜 사람들 아주 나쁜 도둑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남의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이삭을 훑어서 먹은 것은 분명 도적질인 것 같은데 바리새인들이 이 문제는 걸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하여 뭐 잘못하는 것이 없나 눈에 불을 켠 사람들인데 어째서 이 도적질 문제를 걸고 넘어가지 않는데 그것은 제자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23:25절에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제자들이 낫을 댔다면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인데 손으로 이삭을 훑는 정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으로 괜찮다고 말씀을 하셨군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 허락되어 있는 일이지만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건 것은 남의 밭에 이삭을 맘대로 먹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3~5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인즉 다윗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만 먹게 되어있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떡을 먹음으로 분명히 율법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죄로 정하지 않았다는 말씀이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짐승을 잡고 피를 뿌리고 일을 하여 안식일을 범하지마는 죄가 없다고 하나님의 법에 말씀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성전에서 이루어진 불법과 안식일을 범함도 용서가 되었다면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먹는 제자들을 성전보다 큰 내가 죄로 정하지 않는데 너희들이 무슨 권위로 죄로 정하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하니하였으리라”
자비를 원하지 무정한 자의 드려지는 예배는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훑어 먹었다는 것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은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비난하기에 앞서서 오죽 배가 고팠으면 이삭을 훑어 먹었을까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방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유대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을 훑어 먹는 것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삭을 훑어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비난해야 마땅합니까?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죽하면 그랬을까 내가 먹을 것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는 자비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 없이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예배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열을 내는 사람보다 어쩔 수 없었던 어려움을 이해하며 자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도 잘 못하면서 정죄하는데 열을 내는 사람은 아닙니까?
우리는 살인하지는 않습니다. 도적질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죄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들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주님도 정죄하시지 않는 것을 우리가 뭐라고 정죄할 수 있습니까?
일전에 한국 기독교 잡지사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 질문에 1위가 금식기도 잘 하는 사람이고 2위가 철야기도 잘하는 사람이고 3위는 신학 공부를 한 장로님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금식, 철야, 신학 등은 개인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것들이 자랑감이 되거나 남의 연약한 신앙을 비판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된 줄 오해하지 말고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누구는 영성이 없다” “누구는 무엇이 부족하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 있냐?” 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작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예배에만 익숙해 질 수 있습니다.
별로 크지 않은 석탄 공장이 철길 가에 있었습니다. 그 공장 울타리 뒤로 하루에도 몇 번씩 화물기차가 지나가곤 했는데 예수 믿는 공장 주인은 가끔 석탄 덩어리를 삽으로 퍼서 울타리 너머 철길 쪽으로 던지곤 했습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직원이 하루는 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왜 석탄을 담 너머로 던지시는 겁니까?”
주인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사실 철길 너머에 가난한 할머니가 한 분 사시는데, 집에 불을 땔 석탄조차 살 돈이 없어요. 예전엔 기차가 지나간 뒤 기차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다 불을 때고 살았죠. 이젠 기차가 석탄대신 기름을 때는데도 눈이 어두워진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석탄을 주우러 와요. 그래서 그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석탄을 조금씩 던져주는 겁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기독교 신앙입니다.
시편41:1절입니다.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오늘 밀밭에서 귀한 교훈을 받습니다. 정죄보다는 사랑의 실천과 자비함이 앞서는 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건지심을 아주 어렵고 힘들 때 건짐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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