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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45~52절 “물 위를 땅처럼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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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1-19 00:00    조회 5,620    댓글 0  
 
마가복음6:45~52절         “물 위를 땅처럼 걷자”          2013. 1. 20
주님의 손에 들려진 하찮은 떡 다섯 개는 오천 명이 먹는 양식이 되었고 남아서 열두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오천 명의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 놀라운 현장을 떠날 생각을 하질 않습니다. 이제는 날이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섰습니다.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오천 명의 무리들을 각기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무리와 작별하신 후 예수님은 혼자서 산으로 기도하시러 가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무엇을 봅니까? 예수님과 기도는 마치 연결된 고리와 같다는 겁니다.
시리아의 아이작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이 거하시게 되면 그 사람은 기도를 멈출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 안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시기 때문이란 겁니다. 마음속에 계신 성령님 때문에 잠을 자든 깨어 있든 그 사람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기도하게 된다는 거지요. 먹을 때나 마실 때나 일할 때나 쉴 때나 기도의 향기가 그의 마음속에서 자발적으로 피어오르게 된다는 겁니다. 마음속에서 생기는 참으로 작은 자극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은밀하게 기도케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기도를 멈추실 수 없으셨습니다. 먹을 때도 기도요 마실 때도 기도요 일할 때도 쉴 때도 기도의 향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가 특별히 다른 장소나 다른 특별한 시간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기도가 무엇이니까요? 하나님과의 교통이요 교제니까
요14:11절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예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아버지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통,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요 이는 곧 기도라는 말입니다.
17세기 프랑스 로렌지방의 뤼네빌 근처의 작은 마을 에리메닐에서 태어난 수도사 브라더 로렌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충만한 삶은 없다.”, 그 브라더 로렌스는 정식 수도사가 아니라 평신도 수도사였습니다. 평신도 수도사로 주방에서 정식 수도사를 섬길 때 일입니다. “빵을 굽기 위해 장작의 불을 지필 때 성령님 제게도 찾아오셔서 제 심령도 태워주세요. 국을 끓이면서 수증기가 냄비 위로 올라올 땐 하나님 제 심령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게 해주세요. 자신이 지어준 밥을 먹는 수도사들을 보면서 하나님 이 귀한 천사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다는 겁니다.” 이런 브라더 로렌스를 중앙회에서는 정식 수도사도 어려운 원장수도사로 임명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늘 기도의 삶을 살았던 그가 수도원원장으로 발령 받고 그 당시 무척이나 말썽 많기로 이름이 난 수도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 수도원에 젊은 수도사들은 그저 나이 많은 수도사가 갈 데가 없어서 온 사람인 줄 알고 주방에서 주방 일을 보게 하였습니다. 브라더 로렌스는 주방에서 계란 후라이를 비롯해서 온갖 요리를 써빙 하고 식사가 끝이 나면 주방청소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앙에서 지위가 높은 유명한 수도사가 방문을 하게 됩니다. 그가 원장을 찾습니다. 아직까지 이곳엔 원장수도사가 없다고 젊은 수도사들이 대답을 합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벌써 브라더 로렌스를 이곳 원장으로 발령을 냈는데, 젊은 수도사들은 브라더 로렌스라는 말에 놀라 주방에서 그릇을 닦고 있는 로렌스에게로 달려가 용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겸손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들레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까? 늘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데서 오는 능력 때문에 그럴 수가 있었던 겁니다.
무엇입니까? 항상 기도하는 삶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눅18: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늘 기도하세요. 쉬지 말고 기도하세요. 특별한 자리와 시간이 아니더라도 삶이 기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으로 가볼까요? 이제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은 산에 그대로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 중에 보신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제자들이 거슬리는 바람을 맞으며 바다 한 가운데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거슬리는 바람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생의 바다에서 겪고 있는 사망당한 내 영적인 실상을 너무나 잘 아시고 구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불교용어로 고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세상은 생로병사(生老病死)등의 4고(苦)와 또 다른 4고(苦)가 있는 괴로움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4고는 생로병사외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 세상욕심을 쌓는 것에 집착되어 있기에 일어나는 고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이 8가지의 고로 고통을 당하는 바다인데 그 속에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고마운 것이지만 고해처럼 때로는 우리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무서운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2011년 3월11일은 일본 동북부지역을 휩쓸어버린 쓰나미의 위력을 보았던 날입니다. 물이란 것이 저렇게도 무섭구나 일본 대부분의 가옥이 나무로 지어졌는데 너무나 맥없이 휩쓸렸고 자동차도 배까지도 쓸어 가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노아홍수 때에 비하면 노아홍수는 지구 전체가 잠겨버린 사건이었으니까 그때 당시 물의 힘은 참으로 가공할만한 것이었을 겁니다.
모세가 아기였을 때 그 어린 아이 모세를 죽이려 들었던 것도 나일 강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옛날 애굽에서 탈출해서 가나안을 향하여 갈 때 저들의 발목을 잡고 못가도록 막고 선 것이 바로 홍해라는 바다였으며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을 목전에 두었을 때 역시 최종적으로 못가도록 막아섰던 것도 역시 많은 물이 넘치도록 흘러가고 있는 요단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갈릴리바다도 제자들의 발목을 잡고 장장 6시간 동안이나 삼키려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자들에게는 너무나 두렵기만 한 그 출렁거리는 바닷물, 그 바닷물에 위협을 느끼고 불안해하면서 가지고 있는 도구로 막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물을 땅처럼 밟고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은 영원히 사망에 처하는 판결이 있는 심판입니다. 히9:27절이지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인간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 사망의 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롬5:12절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큰일입니다. 죄가 해결 되지 않으면 사망에서 건짐 받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구원 얻을 길은 없을까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롬8: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강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니까? 사망의 강에서 왕노릇하는 마귀를 없애고 사망의 강을 땅처럼 밟고 서 계신 유일한 분이시니까, 히2:14~15절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 사망의 강을 땅처럼 밟고 우리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도 사망의 강을 땅처럼 밟고 설 수 있도록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도무지 배가 아니면 올 수 없는 환난을 겪고 있는 바다의 현장으로 바다를 땅처럼 밟으면서 제자들 곁으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캄캄함으로 인하여 예수님인줄 모르고 너무나 놀라서 유령이라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유령은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유령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령은 죽은 존재이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육체로 오신 하나님자신이십니다. 제자들이 있는 배를 땅처럼 걸어서 지나쳐 가시려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은 배에 가까이 지나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더욱더 놀랐을 겁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곤 제자들의 배에 올라가셨고 그렇게도 배가 앞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던 바람까지도 그쳤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바다에서 겪고 있는 내 육적인 실상을 너무나 잘 아시고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구하기 위해 우리가 겪고 있는 위험한 바다를 땅처럼 밟고 우리를 찾아 우리 안에 오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마14장에선 같은 이야깁니다 마는 베드로가 바다를 땅처럼 밟고 서계시는 예수님께 부탁하지요, 주님 저로 예수님처럼 바다를 땅처럼 걸을 수 있도록 오라고 명해주십시오. 그래 오라!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잠깐이긴 하지만 바다로 내려갔지만 예수님처럼 바다에 땅처럼 밟고 설 수 있었고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릴 삼키려는 세상의 환난의 물에 대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땅처럼 밟고 걸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어떤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어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마는 예기치않은 어려움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현실로 걱정하고 힘들어 하고 때로는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겨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우린 느낍니다.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그때 주님은 우리의 방법과 생각과 같지 않은 순전히 주님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두려움을 물리쳐 주십니다. 바람을 잔잔케 하십니다. 해결해 주십니다. 또 우리는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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