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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30~44절 “떡을 먹은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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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12-29 00:00    조회 5,526    댓글 0  
 
마가복음6:30~44절       “떡을 먹은 남자는”   2012. 12. 30
정채봉씨의 에세이 가운데 만남이란 이야기에 이런 재미난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만남에는 여러 만남이 있는데 먼저 잘못된 만남이 있답니다. 잘못된 만남은 마치 생선 같은 만남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비린내가 몸에 베이는 까닭이랍니다. 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남이 있답니다. 이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인데 피어있을 때는 좋아하지만 시들어버리면 버리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만남이란 거지요 그리고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이 있는데 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으로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금방 그 존재를 순식간에 잊어버리기 때문에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는 겁니다. 그런가하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 있는데 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랍니다. 왜냐하면 힘이 들 땐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만남을 가진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 만남이 행복을 주기도 하고 불행을 주기도 합니다. 어느 날 라디오방송에서 젊은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 신랑이 너무나 멋있고 괜찮아보여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솔직히 이것이 자기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였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마는 잘못된 만남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만나고 있음을 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생선 같은 만날수록 부패함이 지독해지는 그런 만남이나 꽃송이 같은 시들었다 해서 쉽게 버리는 만남이기보다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에게서 마치 목자가 없는 양 같음을 보시면서 저들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이 드셨습니다. 목자가 없다는 것은 말씀을 제대로 전달해 줄 지도자가 없어서 말씀을 먹지 못하였기에 영양실조가 되어 이리저리로 헤매는 그런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모습을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암8: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예수님은 바로 오천 명쯤 되는 이들에게서 말씀을 듣지 못하여 기갈 된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4: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사람은 먹는 것이 다가 아니래요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것인데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바로 이 말씀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에게 예수님이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 무엇입니까? 저들의 영이 소생하도록 영의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요1:1~4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태초에 계신 말씀이 누구? 하나님 그러므로 이 세상 만물이 무엇으로 창조되었습니까? 말씀
말씀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서 죄와 사망과 심판과 저주와 같은 어둠을 몰아내는 빛으로
이 같은 생명의 말씀이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어둠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이신 말씀이 사람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만나주시고 계십니까? 본문에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은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 살아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통해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겨져버리는 사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 어둠의 사망을 당하게 한 죄를 없이하고 다시 살게 해 주시려고 이 세상에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고전15: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므로 여기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과 우리 예수님과의 만남은 어떤 만남입니까? 생명을 주는 이와 죽었던 생명을 다시 얻으려는 이들과 만남인 것입니다. 단순히 손수건같이 흘린 땀을 닦아주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 주는 그런 육적인 만남을 넘어선 새 생명을 주시려는 만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만나면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 그의 작품 중에 ‘황소의 머리’조형물이 있는데 그 ‘황소의 머리’는 피카소가 길을 가다 수북이 쌓인 고철더미 속에 버려진 자전거를 발견하고 버려진 자전거를 자기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고 그 안장에다 핸들을 거꾸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황소 머리’라 붙였습니다. 최근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이 작품에 약 300억 원이라는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한 사람의 화가와 버려진 자전거와의 만남 그리고 그의 손을 거친 버려진 자전거는 너무나 놀라운 예술 작품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버려졌던 인생인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너무나 소중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인생으로 바뀐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무엇을 봅니까? 나눔과 섬김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봅니다. 오늘 본문의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어둑해지는 늦은 저녁까지 말씀이신 예수님에게 올인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 이 아름다운 모습을 제자들이 깨고 나섰습니다. “예수님,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들이 긴 시간 동안 먹지 못했습니다. 여기는 들녘이고 먹을 것이 없으니 촌과 마을로 보내서 저들로 사먹도록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37절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생명의 말씀을 먹었다면 생명의 말씀을 먹은 자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고 그리고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함께 나누게 되고 나눌 때 하나님의 나라의 풍요를 경험한다는 나눔과 섬김을 교훈하시고 계시다 하는 것입니다.
마20:26~28절입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려 오셨고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나누기 위해 오셨다고 소개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오늘 본문에 그 직무를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무엇입니까? 너희 자신의 것을 비우라는 겁니다. 이 비움을 헬라어로 케노시스라고 말합니다. 이 비움을 잘하는 자가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는 공동체가 예수님의 공동체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의 노예가 되려는 의지가 가득한 곳이 교회공동체요 이것이 예수님의 리더쉽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전2:7~8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예수님에게서 섬김과 나눔을 배운 제자들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내가 사도인데 하는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에 아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유모처럼 교회성도들을 섬겼다는 겁니다. 아니 목숨까지도 나누고자하는 나눔의 기쁨까지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진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우리에게도 맡겨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핑계가 복 받을 우리를 가로막고 서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의 핑계가 무엇입니까? 때가 안 좋다, 날이 저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소가 안 좋다, 여기는 빈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38절입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그랬더니 몇 개가 있다고 보고합니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제자들과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봅니까? 한 사람의 양식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무엇을 보십니까? 오천 명이 먹고 남을 양식으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섬기기 위해 나누었더니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입영통지서를 발부해 큰 도시로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유니온 정거장에는 기차에 오르기 위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과 이들에게 따뜻한 차나 커피를 따라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밤늦은 시간까지 뜨거운 코코아를 쟁반에 들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코코아 잔을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잘 다녀오세요. 그대들의 건승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고 “대통령 각하가 아니십니까.” 그는 허허 웃으며 “날 알아보셨군요. 고맙소. 내가 끓여주는 코코아 한 잔은 미미한 것이지만 꼭 승리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이야깁니다.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의 ‘섬김의 리더십’은 미국 최초 4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에게 있던 사망과 심판의 어둔 그림자는 물러가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핑계대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내게 있는 작을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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