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막2:1~12절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8-04 00:00    조회 5,399    댓글 0  
 
마가복음2:1~12절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2012.8.5
나병환자를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므로 깨끗해졌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갈릴리 전역에 퍼졌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동네에 계실 수가 없어서 한적한 바깥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는 것이 사람들은 그 한적한 바깥까지 사방에서 모여들어서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들어가셨고 이 소문은 곧장 퍼져나가 예수님이 계신 가버나움의 그 집으로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고 그들에게 예수님은 본문 2절에 첫 번째 사역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고침과 이적과 귀신을 내어 쫓는 이면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말씀사역으로의 무장이 필요했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중풍병자는 중증의 중풍 병을 가진 환자였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중풍병자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네 사람에게 침상을 들게 해서 예수께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 동네 사람들인지 친척들인지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중풍병자를 그 중병에서 놓이게 하는 일에 한 가지로 마음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회에서 흔하지 않은 광경입니다. 수거하트가 지은 이기적인 사회라는 책에 보면 몇 가지 물음이 소개가 됩니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회는 과연 불가능한가? 인간의 이기심은 정말 고칠 수 없는 것인가? 왜 사람들은 자기만 알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모르는 것일까? 과연 더불어 사는 삶, 서로 어울리는 삶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물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이지 않으려면 가정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인하여 인간은 이기적인 것을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기적인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선 가정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그런 말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의 필요를 위해서 헌신하는 가운데서 오늘 중풍병자는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참 필요한 것이 이기적이기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함께 필요를 나누는 아름다움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절입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무리들이 네 명의 사람들에게 중풍병자를 메워서 예수님이 계신 집에 도착을 해보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까지 갈 수 있는 그런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통해서 중풍병자를 들어 올렸고 이어서 예수님이 계실만한 장소를 눈짐작으로 정해서 지붕을 파헤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내릴만한 구멍이 뚫어지자 중풍병자를 줄로 해서 내리게 될 때 5절 상반절에 “예수께서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지금 행동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들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가옥구조는 스라브로 된 집인데 지붕을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옆으로 나있고 지붕은 진흙과 짚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간단한 도구로 해체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의 집이고 아무리 해체할 수 있는 진흙과 짚으로 섞어 만든 지붕이라도 오랜 세월 굳어져서 돌덩이처럼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작업이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향하여 나가는 믿음에는 일사천리로 쉽게 나가도록 허용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난관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마음에 믿음으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모든 중심이 누구로 향한 것이 믿음입니까?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에게 그 초점을 맞추고 찬송을 드리면서도 예수님에게 오늘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에 오직 예수님만 찾는 것이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 예수님, 우리 예수님만 찾아 나가는 이 시간에 가로막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줄 모릅니다. 세상의 염려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찾는 우리 믿음을 가로 막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이적을 경험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빌4: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른 데서가 아닌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직 예수님, 예수님, 그 예수님에게만 향하는 믿음으로 살 때 마음과 생각이 흔들리지 않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젊어서 혼자가 된 엄마가 딸을 잘 키워서 대학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교수인 딸을 교회로 인도했고 엄마의 소원이 교회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엄마를 따라 처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교회에 간 첫날 별로 교회가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모여서 남의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식당에선 얼굴을 붉히고 있는 봉사자들을 볼 수 있었고 서로 먼저 음식을 타가기 위해서 다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저 이제 다시는 교회가지 않을래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무슨 소리냐 그래서 교회에 가지 말아야할 딸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엄마는 수십 년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 얼굴밖에는 보지 않았는데 너는 단 하루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구나.”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오직 예수님만, 예수님만 보는 것이 믿음이고 그러므로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리가 마음을 같이하여 네 사람에게 중풍병자를 들게 해서 예수님을 향하여 나오는 믿음의 행위에 대하여 그 기를 꺾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로 갈 수 없도록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막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면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집에선 기적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뛰어넘어 오직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향했고 그 물질 또한 예수님에게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예수님께로 가는 길에 제동이 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빌4: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물질 역시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 그 분만 바라보시고 나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도 뛰어넘고 물질로 건너뛰어서 오직 예수님 그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중풍병자를 침상 채 내리는 이들의 믿음은 불가능을 뚫고 있습니다. 믿음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믿음은 고난이라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향하여 나가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문제도 뚫고 나가는 믿음으로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언제 뚫을 려나 했는데 뚫기를 시작하니까 곧 뚫게 되더라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대로 되는 날도 곧 가까이 임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절입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그 믿음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로 인하여 온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과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롬5:1~2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가는 순간 우리는 죄로 말미암은 저주를 끊어내고 하나님과의 단절로부터 화평을 누리는 관계로 회복되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서 죄사함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서기관들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를 사하시는 분이 없는데 어째 예수가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이는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서기관들에게 9절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현실적으로 쉽습니까?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현실적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꼼짝도 못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온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상을 들고 걸어간다는 것은 말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그럴만한 확률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어려운 이 일을 하십니다. 11절입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랬더니 12절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10절에 “인자가 당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란 증거입니다. 우리로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엡2: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중간에 막힌 담이 무엇입니까? 죄, 그것을 무엇으로 허셨습니까? 십자가위에서 자기 육체로
12절에 자기가 들려 들어왔던 그 상을 들고 나가는 중풍병자를 보고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고전10:31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 믿는 자들의 최고의 목표가 “하나님 영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예수님만 바라고 나아가시므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막힌 지붕도 뚫어버리고 인간의 담도 뛰어넘고 믿음을 가졌더니 그 믿음대로 되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며 우리에게 믿음으로 죄사함 얻게 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인생목표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5월 12일 주일 예배 영상
하박국 2:4 김용우 목사
2025년 5월 12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