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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7:27~44절 “바울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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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4-28 00:00    조회 5,791    댓글 0  
 
사도행전27:27~44절          “바울의 통찰력”           2012. 4. 29
알렉산드리아호에 타고 있는 276명이 유라굴로라는 광풍으로 말미암아 자그마치 열나흘 동안이나 초죽음이 되어 이리저리 바다 위를 헤매고 떠다녔습니다.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오직 하나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어떤 한 섬에 안전하게 닿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27절에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한 밤 중에 사공들이 오랜 바다생활에서 얻은 어떤 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느낌은 28절에 점점 바닷물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29절에서는 암초에 걸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네 개의 닻을 내리고 앞은 너무너무 캄캄해서 무엇이 앞에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날이 새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이런 난감하고 캄캄하기 만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암초에 걸려 망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여기 선원들처럼 믿음 닿을 하나 둘 셋 넷 내리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여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막연한 말씀이 아니라 분명 말씀대로 성취하는 능력이 있어 결코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퇴출을 당한 사람이 너무 실망한 나머지 집을 가출했습니다. 그리고 방황 끝에 얼마 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여보 미안해 내가 직장을 갑자기 잃고 당신하고 아이들 볼 면목이 없어서 가출해서 어떻든지 직장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소 정말 죽고 싶고 난 이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애” 남편의 실의에 찬 이 말에 아내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아직 한 가지 일을 하지 않았잖아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면 어떨까” 아내의 이 말을 들으면서 남편은 “그렇구나 내가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하지 않았구나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래서 남편과 아내는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기도가 계속되면서 직장과 직장상사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삭으러들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고 이를 실천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 비싸서 호텔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중저가 호텔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비록 중저가이지만 여행을 하면서도 집처럼 느낄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이디어를 주셨기 때문에 이 호텔에서는 절대로 술은 팔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을 갖추었습니다. 이 호텔은 사회적으로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나중에는 많은 호텔체인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호텔의 창업자는 케몬스 윌슨이고 이 호텔 이름이 그 유명한 호텔 홀리데이 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실패가 없기 때문에 믿음의 닻을 내리고 기도의 닻을 내린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에 대 경제공항으로 인해 온 국민이 어려워할 때 국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국민 여러분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훗날 그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연설할 수가 있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였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도의 결과로 우리의 앞날과 우리 후손들에게 회복과 번영을 누리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닻을 내리고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2절에 바울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30절에 사공들이 도망을 하려고 뱃머리에서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작은 배를 내려서 그 거룻배로 땅까지 암초에 걸리지 않고 이동하려고 하였습니다. 작은 배는 하나인데 사람은 276명이나 되니 나중에 서로 배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울 것이 뻔했기 때문에 선원들이 먼저 선수를 친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이런 의도로 선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31절에서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저는 바울의 이런 행동을 날카로운 통찰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서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에 버려두지 않고 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선원들이 저들만 살겠다고 달아나 버린다면 바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할 것은 뻔한 사실이었습니다. 백부장도 사태를 파악하게 되었고 백부장의 명령에 따라 작은 배를 내리려는 그 줄을 끊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통찰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통찰력에 대해서 한국어 사전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통찰하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정신없어 군인들조차도 선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반하는 선원들의 행동을 통찰하고 막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길선주목사님 때문에 평양에 기생들이 비상회의가 열렸답니다. 왜냐하면 평양시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니 기생집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기생 중에 맏언니 되는 기생이 누가 길선주목사 잡을 년 없니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빼어난 미모를 가진 젊은 기생하나가 언니 걱정마시라요 제가 꼭 길선주목사님을 내 서방으로 모시고야 말겠습네다.“ 그때부터 이 기생은 장대현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생은 주일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삼일저녁예배, 철야예배, 심지어는 새벽예배까지 열심히 출석함으로 진실한 성도처럼 보였고 마침내 길선주목사님의 눈도장을 찍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기생은 길목사를 자신의 집으로 식사초대를 하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길목사님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푸짐한 밥상이 차려 있고 아랫목엔 비단 이부자리까지 깔아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모든 것을 알아차린 길목사님은 갑자기 누워 뒹굴면서 소리 지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이구 ~ 사람 살 ~ 려, 길선주 살려 나 죽는다” 얼마나 소리가 컸던지 지나던 사람들이 달려 들어와 길선주목사님을 구출해 내게 되었습니다. 기생은 길목사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기절을 했다지 뭡니까 이후로는 평양기생들이 예수쟁이라면 머리를 흔들었다고 하고 길목사님을 정말 존경하는 기생들은 기생직업을 아예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찰력입니다. 상황을 통찰하는 능력이 없다면 아마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주인의 부인이 종인 요셉을 유혹하여 방안으로 끌어들였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하고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이 나와 버렸습니다. 상황을 알면서 넘어가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알고 피하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통찰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망치려는 선원들이 있었는가하면 통찰력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의 통찰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3절로 34절에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열나흘 동안 태풍 때문에 먹지를 못했는데 자 이리와서 좀 드시오 당신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좀 들어야만 할 것이오 이제는 염려하지 마시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오” 바울은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지금이 바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사람들과 상황을 주관하고 있음을 봅니다. 바울의 통찰력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아마도 자신을 완전히 죽는데 내어주는데서 오지 않을까요?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에게서 무엇을 봅니까? 자기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 있습니다. 지금도 주를 위하여 고난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에 편지한 것처럼 자신은 예수 십자가에 함께 못을 박혔기 때문에 죽어서 없습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만 삽니다. 바로 여기에 상황과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통찰력과 예지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리차드 백스터의 기도라는 책 1부 안으로 향하는 기도라는 큰 제목 하에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제자가 주후 3세기경 기독교박해를 피해서 애굽의 사막에 은둔생활을 하던 아바요셉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선생님 저는 가능한 한 계율도 지키고 금식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음속에서 모든 악한 생각을 제하고 모든 나쁜 의도들도 없애 버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러자 아바 요셉은 일어서서 두 손을 하늘로 향하여 뻗는데 그 열 개의 손가락은 마치 열 개의 등불처럼 보였고 이어 말하기를 “왜 자신을 불 속에 넣어 완전히 변화 받지 않는가?”
불속에 자신을 던져 버린 바울을 보세요 35절입니다. 그가 지금 사람들과 상황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습니다.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벳세다 들녘에서 예수님이 무리를 앉게 하신 후에 보리떡을 손에 드시고 축사하셨을 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그 기도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처럼 사공들도 군인들도 죄수들도 모든 사람들도 바울의 이 기도에 수긍하고 있음을 봅니다. 36절에 그래서 안심하고 받아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문제와 고난이 아닙니다.
우린 선원들처럼 느낌으로 살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고난을 외면하던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바울은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 질 것을 믿었고 또 그렇게 되는 놀라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윗이 원수들 앞에서 밥상을 받게 하신 하나님은 모든 자신을 주를 위해 버린 바울에게 사람들도 상황도 그에게 주시는 은혜를 아끼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다스리고 제압하고 압도하는 사람도 얻고 상황도 얻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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