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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5:1~12절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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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3-17 00:00    조회 6,257    댓글 0  
 
사도행전25:1~12절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2012.3.18
베스도가 유대의 새로운 총독이 되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대제사장과 유대의 높은 사람들로부터 바울을 고발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십여 일이 지난 후에 베스도 총독이 다시 가이사랴에 내려갈 때 유대인들 중에 유력한 자들이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서 함께 내려갔고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유력자들이 베스도에게 고발한 내용들은 하나같이 고발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총독 베스도는 힘없는 바울보다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힘 있는 유대인 유력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말처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해서 자신이 거기서 판결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바울에게 내비칩니다.
유대인들 유력자들의 계산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베스도의 호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게 될 때 기회를 봐서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산이었습니다. 바울은 베스도총독에게 말합니다. 죽을죄를 지었다면 죽기를 사양하지 않을 것이나 고발에 대한 증거도 없이 죄를 정하려고 하니 이는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의 판결로 그치지 않고 로마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마땅히 가이사황제에게 상소하겠다 그래서 총독 베스도는 재판에 배석한 사람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네가 로마시민으로써 가이사황제에게 상소했으니 가이사황제에게 갈 것이라고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도 하나님을 떠났을 때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 지를 발견합니다. 아직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직분들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만 믿는 사람들이지 속은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십계명 중에 여섯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 말씀은 살인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아닙니다. 아주 강한 부정입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를 어길 시에는 하나님께서 엄중 진노하시겠다는 의미까지 던져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직 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떠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라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더더욱 대제사장이라면 이런 일을 뜯어말려야 할 사람이요 뜯어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차원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쳐야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저들이 2절과 3절에 베스도총독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해 올 때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이자고 합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이렇듯 얼마든지 사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날씨가 좀 누그러졌길래 대한수도원으로 기도를 갔었습니다. 수도원 안쪽 산 입구에 큰 물고기들이 많이 있던 작은 연못하나가 있는데 아직까지도 얼음이 얼어있었습니다. 약간 녹아 있어 물이 보이는 곳에서 물고기들이 펄떡거리기도 하고 유유히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차디찬 얼음을 가까이 접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냐 단 일 분도 발을 담그고 있지 못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분명한 것은 살기위해서 몸부림치기보다는 살아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여러 모양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가섭니다. 돈 때문에 차갑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차갑기도 하고 요즘 피부에 닿을 정도로 무서운 불경기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차갑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얼음장 같은 현실을 거슬러 움직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일생을 바친 슈바이처박사에게 생명의 귀중함을 배우기 위해서 젊은 의사들이 많이 방문했었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인 우리나라 사람으로 의학도이면서 목사인 이일선은 아프리카 밀림 현지에서 큰 나뭇가지 사이에 나무들을 연결해서 흔들침대를 만들었었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슈바이처박사에게 크게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당신 편하자고 말 못하는 나무가 얼마나 아프고 고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슈바이처는 생명에 대해서 아주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지금 유대인 유력자들과 대제사장이 사람을 죽이자고 합의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은 언제든지 행동을 낳고 반복되는 행동은 어느 새 습관이 되고 그리고 그 습관은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도 없이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던 입술은 어느 새 굳어지고 하나님을 기뻐하던 마음은 얼어붙게 되는 것입니다. 미움은 곧 살인인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예배 중에 함께 찬송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사람 죽인 시체를 끌어안고 예배를 드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소한 일로 생긴 미움이 바로 내 마음 속에 한 사람의 시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 시간에 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인은 인간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그는 예배시간에 이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미 가인은 마음에 동생 아벨의 시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동생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어 자신도 망하고 그 후손도 망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왕이 있는 자리 그리고 왕이 배설한 축하잔치에 들어올 때 무장해제하고 들어옵니다. 하물며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잔치자리에 마음에 무기를 품고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이런 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우리 모두 미움대신에 사랑을 품고 사는 자로 달라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5:21~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에게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가이사에게 재판 받을 수 있는 로마시민의 특별한 권리
베스도총독은 전임자 벨릭스총독하고는 기질 자체가 다르다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점이 있다면 벨릭스나 베스도나 모두 유대를 다스리는 총독으로 유대인들의 인심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고 다른 점은 벨릭스 전임총독은 바울에게 뇌물을 바라면서 아무 죄도 없는 바울을 구류해놓고 2년 동안이나 매우 꾸물거리는 사람이었다면 베스도 후임총독은 부임하자 일사천리 신속하게 십여 일만에 속전속결로 바울을 재판에 불러서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 폭동이 일어나면 앞으로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되니까 굳이 유대인들의 인심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스도총독은 바울을 재판정으로 불러서 너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서 유대인지도자들이 있는 가운데서 내가 너를 재판하려고 할 때 바울은 나는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하겠다 그러니 나를 로마로 보내달라고 하였고 이 바울의 상소가 받아들여져서 총독 베스도의 판결도 없이 로마황제가 있는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전혀 이런 혜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면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다른 유대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이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로마시민권자가 되면 행22:28절 말씀처럼 천부장 같은 관직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행23:27절에 로마시민권자가 되면 로마의 군대를 동원해서 자국민을 보호해 줍니다. 한 마디로 우월한 특급대우를 받습니다.  
행22:29절에 식민지 국가에서 함부로 때리거나 핍박하거나 죽이지 못합니다. 로마시민권자는 철저한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바울처럼 최종적으로 황제와 만날 수 있는 황제의 재판까지 상소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의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우월한 시민권이 있습니다. 빌3:17~21절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요점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내가 천국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이 땅의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천국시민으로서 살아가라고 여러 번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듣지 않고 예수 십자가의 원수로 즉 마귀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서 살더라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살면 멸망 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배만 채우기 위해 땅의 것만 위해서 살면 부끄러움의 영광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살지만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장차 예수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는 예수의 몸처럼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너희도 나처럼 그렇게 천국시민권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천국시민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국은 천국이다 그리고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엡2:19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시민에게는 로마시민이 받는 우월한 혜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조때 청나라가 쳐들어와서는 우리나라 사대부여인을 비롯해서 닥치는 대로 잡아서 끌어간 숫자가 육십만 명이었는데 나중에 돈을 받고야 풀어줘서 고향으로 시댁으로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답니다. 고향에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돌아왔으나 시댁에서 남편에게서 환영을 받지를 못하고 도리어 몸을 더럽히고 돌아왔다고 환향년이라고 내쫓기는 일들이 일어나서 목숨을 끊는 여인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인조임금은 자신이 임금으로서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덕함을 자책하면서 전국에 회절강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누구든지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말고 모두 받아들이라는 교지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백성이요 우리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능히 깨끗케 하시는 분이시오(요한1서1:9절) 연약한 우리를 능하게 하시는 분이시오(딤전1:12절)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분이십니다.(사30:26절) 우리가 감당치 못할 때에는 피할 길을 내사 능히 우리로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고전10:13절) 그분은 말씀하십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 대공항을 만나서 모든 국민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경제를 타결하기 위해서 오히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마천루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답니다. 하나는 불황을 이기기 위한 일자리 고용창출이요 또 하나는 영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 102명의 신앙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102층으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미국의 경제를 일으키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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