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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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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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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0-05-08 00:00    조회 4,790    댓글 0  
 
잠23:24~25절     “즐겁고 기쁘게 해 드릴 어버이”     2010. 5. 9
대통령이 기거하는 청화대 옆에 효자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 이름이 왜 효자동이 되었느냐하면 “옛날 어느 가정에 할아버지와 어린손자가 함께 잠을 자게 되었는데 이른 아침 며느리가 방에 들어가 보니 아들아이가 할아버지 밑에 깔려서 그만 죽어 있는 겁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이 사실을 알면 크게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실 것을 알고는 가만히 죽은 아들을 안고 남편에게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니 남편이 아들을 안고는 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뺨을 세차게 때렸는데 죽은 줄로 알았던 어린 아들이 눈을 번쩍 뜨며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임금님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어 그 동네 이름을 그때부터 효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와는 너무나 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처럼 어색하기만 합니다. 오늘날 그런 아들이나 며느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부모 모시고 사는 가정을 보면 참 위대하게 보이고 이제는 그렇게 사는 가정이 별로 흔하지 않습니다. 다섯 가정 중에 한 가정이 노인들만 산다고 하니까 이제 얼마 안 가면 다섯 가정 중에 한 가정 빼놓고 네 가정이 노인들만 사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부모보다는 부부나 아이들 위주의 생활이 되어서 돌아갑니다. 그렇다보니까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려니 하고 섭섭함까지도 내려 논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전화나 한 번 해 주면 고맙고 찾아와주면 황송하고 잊어버리고 저들끼리 살아도 그냥 체념하고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낳아서 키울 때 일년이 넘도록 똥오줌 받아주면서 없는 돈에 유치원 보내서 학교 들어가고부터는 학원비 대느라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학 들어가게 되면 등록금 만드느라고 허리가 휘면서 사회 생활하는가 싶으면 결혼하겠다고 배우자 데려오고 그러면 결혼비용으로 또 한번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평생을 사실상 자녀들 뒷바라지 하면서 고민과 고통의 세월이 간 것입니다.
이삼십 대 부모가 아이를 낳고 키울 때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잠20:11절입니다.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이 교훈의 말씀에서 자녀가 비록 어리다 할지라도 자기 행동을 통해서 깨끗함과 정직함을 나타낼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삼십 대 젊은 부모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내 자식이 아직 어리다고 가르치지 않고 어린 것이 뭘 알까하고 지나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살 다섯 살 어린자녀들이 나 잘했지 나 착하지라고 부모에게 말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삼십 대 부모들은 내 자식이 아직 어리니까 뭘 알랴 좀 있다가 가르치지 이렇게 키우다보니까 할 때는 잘하는데 한번 때 쓰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삼십 대 젊은 부모는 이런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어지간해서는 매를 들지 않습니다. 이런 교육이 과연 자녀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인지 어둡게 할 것인지 몰라서 이것이 젊은 부모의 고민이고 고통입니다.
지혜의 말씀인 잠23:13~14절입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채찍으로 때린다는 말씀은 이성을 잃고 마구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신체에 고통이 느껴지도록 아픔이 느껴지도록 체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르쳐라 그러면 자식이 산다는 것입니다.
때려서 가르치는 때가 다 있습니다. 자식이 성장하면 그때는 때릴 수 없습니다. 손에 있을 때 그때 때려서 잘못된 것을 알게 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도 기초가 튼튼해야 되는 것처럼 그리고 첫 단추를 잘 껴야 되는 것처럼 어릴 때 말씀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늘 어리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자식이 성장하였을 때 자녀를 교육해야하는 사오십 대 부모는 고민과 고통이 더 증가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훌쩍 커버리면 이때부터 매로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 이때는 알아듣도록 훈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잠15:5절입니다.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15:20절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이 두 말씀에서 아비와 어미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미련한 자식이 있는가 하면 깨닫게 하는 훈계를 달게 받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식이 있음을 봅니다.
모든 훈계를 달게 받는 지혜로운 자식이라면 그 자식 때문에 부모가 고민할 것도 고통 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말을 잘 안 듣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사오십 대 부모에게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업신여긴다는 말은 하찮게 취급하는 것과 함께 발로 밟는 신체적 학대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하찮은 존재로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이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를 못해서 그런 걸 어떡하냐고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잠28:7절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여기 음식을 탐식하는 자란 꼭 음식을 탐하는 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헤이한 자요 전반적으로 생활이 바르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이렇듯 좋지 않은 이들과 어울려 다님으로 부모는 고민하고 고통 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식들로 인하여 부모에게까지 욕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잠20:20절입니다.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자식으로부터 저주를 당하고 있는 부모가 있어 이 부모들이 고민하며 고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시대를 걸쳐서 이런 자식들이 있어 왔습니다. 잠30:11절입니다.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아비를 저주하고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역시 저주한다는 것이니 저들은 모르고 부모를 저주지만 하나님은 이 저주하는 자식을  저주하신다는 것입니다.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한다.” 대낮에 등불이 꺼진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밤중에 등불이 꺼지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행동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를 저주하는 자식은 그 인생의 열매가 없다는 것이고 어두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이삼십 대 부모들이 자녀를 키움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사오십 대 부모들이 되었을 때 그 성장한 자녀들이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출가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출가 시키고 난 후 육십 대 부모들이 겪는 고민과 고통이 있습니다.
잠28:24절입니다.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자식이 되어서 부모의 것을 빼앗고도 뻔뻔하게 죄라고 생각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부모가 고민하고 고통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도둑질하다는 말은 “늑탈하다 억지로 빼앗다 강탈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유산으로 배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마귀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탕자의 비유에 나오지 않습니까? 아버지 아직 정정하신데 유산 나눠 달라고 졸라서 아버지 곁을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 끝에 아버지가 주신 유산을 모두 날려버린 아들 탕자 그는 마귀와 동류였던 것입니다.
사실 부모들 중에는 이런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칠팔십 대 부모가 겪는 고민과 고통이 있음을 봅니다.
잠19:26절입니다.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어린 자식을 키우던 이삼십 대 젊은 부모가 성장한 자식을 훈계하는 사오십 대 부모가 되고 어느 덧 장가들고 시집간 출가한 자식들이 부모의 유산에 상당한 관심을 갖게 되는 육십 대 부모가 되는 것이고 그 자식들에게 구박을 당하고 쫓겨나는 연약함과 씁쓸함과 허탈함에 젖게 되는 칠팔십 대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만 있는 서글픈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의 부모들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연로해진 부모들이 경제력이 없고 기력이 약해서 스스로 몸조차 가누기 힘들어 할 때 경제력과 사회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자식들은 그 부모를 구박하고 쫓아내더라는 것이고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불효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가진 자식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합니다. 스스로 능욕을 부르는 행위라고 말입니다.
지금 잠언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비슷한 말씀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음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좀처럼 지켜지고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에게 꼭 지켜야할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1~3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돌아가신 다음에 잘 하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 이 땅에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것입니다. 잘해서 이 땅에서도 복 받은 자로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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