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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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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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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02-16 00:00    조회 5,101    댓글 0  
 
마태복음27:57~61절    “이런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2008. 2. 17
세상에 부자가 참 많은데 부자 중에서도 닮고 싶은 부자가 있는가하면 전혀 닮고 싶지 않은 부자가 있습니다. 오히려 욕을 먹고 사는 부자가 있습니다.
성경에 부자는 천국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라는 문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의 문이니 사람보다 몇 배나 더 큰 낙타가 통과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부자는 천국 가기가 어려운 부자가 아니라 주 안에서 이런 부자라면 하는 마음이 끌리는 부자이기에 오늘 설교 제목을 “이런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바로 그 금요일의 해가 저물었습니다. 금요일 해가 저물면서 시작되는 것이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는 안식일의 시작입니다. 바로 금요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각에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이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겠노라고 허락을 받아서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자기 무덤 그것도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아놓고는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심을 믿으십니까? 아멘?
우리의 시작과 현재와 그 끝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도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사건을 이 사건이 일어나기 600여 년 전에 이미 예언을 하셨다는 것이 아닙니까?
사53:9절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정말 이 말씀대로 아리마대사람 부자 요셉이 자기가 사후를 위하여 사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57절입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우리가 담기를 원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이름이 그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다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숨은 제자로 아무도 모르게 살다가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놓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통 상식이라면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제자라고 드러내놓고 살다가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에는 모른다고 잠수해 버리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제자라고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드러내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자신까지 구태여 드러낼 필요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예수님 살아계셨을 때 드러내서 제자라고 불리었던 사람들이 어떤 이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리고 대다수 도망하고 또 어떤 이는 너무 급한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도망을 가버린 그런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었을 때 오히려 빌라도에게 나타나 내가 예수님의 제자이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아주 당당하게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 인기 절정일 때 그의 제자가 되어 덩달아 인기를 공유하고 으쓱할 때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다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신분을 오히려 노출하면 위험하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때 제자라고 나서는 당당함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상황이 괜찮을 때 제자 되기는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제자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어느 훌륭한 설교자의 책에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그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임야를 기도원 부지로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하고 구두로 교회 앞에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재벌이 그 장로님이 구두로 바친 그 땅 바로 옆에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땅값이 크게 폭등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 장로님이 하는 사업이 아주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부도의 위기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자연 그 장로님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두로 바친 그 땅만 팔면 빚도 갚고 사업에도 재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류로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말로 한 것인데 이 땅을 팔아서 사업자금으로 쓰고 나중에 벌어서 더 좋은 곳에 다른 땅을 사드려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 두 번 씩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로님 부부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더 이상 갈등하지 않기 위해서 그날로 등기이전을 해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 사업은 망할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로님의 사업이 바로 그 때부터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은 지금 부자이고 그것도 굉장한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 장로님은 보통 세상적인 부자라기보다는 아리마대 부자 요셉과 같은 부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이런 부자들이 많이 생겨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을 때는 제자인 줄 모르다가 정말 어려울 때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그런 부자 제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유대지역을 다스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내린 빌라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을 의식하고 자신의 출세를 더 생각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죄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죄인으로 정죄한 사람입니다.
그런 비인간적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해 꼬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빌라도에게 가서 내가 그의 제자이니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막15:4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예수님의 시체를 유대총독 빌라도에게 달라고 하는 모습을 “당돌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다른 표현은 아마 “담대하게”가 맞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는 때가 어떤 때입니까?
모두가 한 통속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대었고 그들의 소원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바로 그 직후입니다. 오래 지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고 예수님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그런 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더욱 흥분하여 날 뛰는 사람들이 아직도 살기등등하여 주변에 쫙 깔려 있는 그런 때입니다.
그런 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내가 그의 제자라고 공개선언하고 나섰으며 그것도 빌라도에게 당돌하게 나가서 요구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일에 담대한 부자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공회원이었고 그는 부자였습니다. 요셉은 이 모두를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총독 빌라도하고는 무척이나 차이가 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빌라도는 잠시 잠간의 것들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던 세상의 출세와 성공과 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마리아성에 폭동 진압에 많은 죽음을 몰고 왔다는 이유로 본국 로마에 소환을 받았고 이로써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자살로써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부자 요셉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당돌한 행동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볼 때는 담대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제자로서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새겨들었을까요?
눅9:24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부자를 잃어버리는 것과 공회원이라는 높은 자리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는 자신의 신분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 요셉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막15:43절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아리마대 부자 요셉은 잠시 잠간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런 부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자 이면서도 현재에 만족하여 게으른 신앙 나태한 신앙 믿음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세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잃을 각오, 쌓은 부와 명예도 잃어버릴 각오로 강하고 담대한 신앙으로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부활로써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
팻 로버슨 예일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팻 로버슨은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 퇴근 시간에 한 잔 하러 가자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여보, 나 구원 받았소” 하고 외쳤습니다. “당신 미쳤군요?”하는 아내의 소리에 “난 미치지 않았소 난 구원을 받았단 말이요” 그리고 그는 취침시간 즈음에 아무 말도 없이 주방으로 나와서는 찬장 문을 열고 거기에 진열되어 있던 비싼 위스키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구에 쏟아버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콸, 콸, 콸 콸..... 아내가 달려와서 “아니 여보 당신 왜 이래요 이게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마지막 술병을 움켜쥐려는 것을 다시 빼앗아 다 쏟아버렸습니다. 그는 그가 사랑하던 것들을 모두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잠시 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세상의 사랑하던 것들을 버리는데서 소유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흘려버릴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 것으로 채우십니다. 아리마대 부자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상의 부자도 공회원이라는 높은 지위도 버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부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요19:39절에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 있는 행동은 또 한 사람 니고데모를 용기의 사람으로 뒤를 잇게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어려울 때 제자로 사는 아리마대 부자 요셉
잠간의 것보다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산 부자 요셉처럼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부자가 많이 생겨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하는 성도들에게 이 축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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