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1월 20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01-19 00:00    조회 5,229    댓글 0  
 
마태복음26:31~35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2008. 1. 20
미래를 안다면 행복할까요? 아니면 괴로울까요?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면 행복할 수 있어도 미래에 닥칠 일이 좋은 일이 아니라면 괴롭고 힘들어서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래를 다 보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과 이스라엘백성들의 40년 후의 미래를 보십니다.  
예루살렘 성은 다 무너지고 이스라엘백성들은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지옥 같은 모습을 보십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스라엘백성의 고통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우십니다.
이처럼 미래를 본다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미래를 보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예수님은 앞으로 몇 시간 후의 되어질 일을 보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지는 것과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미리 보시는 예수님은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미래는 커녕 자기 자신들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흩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한 술 더 떠서 모두 주를 버린다고 해도 나는 결단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35절에는 베드로가 말하기를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였고 다른 모든 제자들도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미리 보시고 말씀하신 것이 다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56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7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몇 시간 전에 이런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아신 예수님은 그 마음이 어떠하셨겠습니까? 38절입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실패할 것을 미리 안다면 얼마나 힘이 들며 실패한 후에 어려운 생활을 하는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애를 미리 알려고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단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믿음으로 사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에 감사하고 미래를 소망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늘 기도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33절에 “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자기 확신에 대한 장담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나는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여기 모두라면 다른 모든 제자입니다. 자기 동생 안드레도 있을 것이고 요한도 야고보도 빌립과 바돌로매도 있고 도마와 마태도 있을 것이고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시몬과 가룟유다가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뿐이지 이름을 거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것이 습관처럼 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하였습니다. 비교해서 얻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열등감이요 다른 하나는 우월감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열등감은 사람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우월감은 지금 베드로처럼 자기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사람을 헛바람 들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다른 집 자식들을 보라면서 자녀들을 훈계합니다. 여기서 얻는 것은 그 아무개 집 자식들을 우리 자녀들이 미워하게 되는 것이고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이 자녀들에게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들에게도 다른 어떤 집사님 좀 보라고 하면서 바가지를 긁습니다. 그러면 남편들은 그 집사님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갖는 서운함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찬가집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든지 괜히 헛바람 든 사람이 되어서 실패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바로 이것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기 보다는 이 지구상에 하나님은 ‘나’라는 사람을 오직 하나밖에 만드시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개성과 달란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남들에게는 없는 아주 독특함을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각기 다르게 개성 있게 만드신 창조의 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마다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멘?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군이 되게 하시려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달란트를 주셨음을 믿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예수님은 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땅히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시기 위하여 기도가 필요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흩어져 도망하고 베드로 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예수님은 기도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리를 준비해 주셨건만 안타깝게도 기도하는 자리를 조는 자리 잠자는 자리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았던 베드로는 사실은 적극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소극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58절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멀찍이’
처음 나오신 분들이 맨 앞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분들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멀찍이는 신앙으로 승리하게 하는 일을 방해합니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파경에 이른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기자회견을 하고 파경을 선언합니다. 갑자기가 아닙니다. 잘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상처가 나서 그 상처가 깊어지고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갑자기 나빠지지 않습니다. 서서히 오늘 본문에서처럼 멀찍이 그 간격이 점점 더 멀어지다가 완전히 나빠진 신앙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늘 기도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늘 기도하면 적극적인 신앙이 되지만 기도 쉬기 시작하면 소극적인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신앙은 결국 신앙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왜 실패하였습니까? 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었습니까? 멀찍이
아닙니다. 늘 기도하면서 적극적인 신앙을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고난에 가장 가까이서 동참하여 받는 은혜가 배나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실패하여 고통 하는데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 베드로는 실패를 딛고 돌아왔고 회복되었고 더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들려 주셨던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너무나 가슴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어째서 나를 못 믿어 주실까 그때는 예수님이 자신을 인정해 주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맞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맞았다는 것을 닭 우는 소리 때문에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119:10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아멘?
어느 날 주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회복과 돌이킴과 오히려 아름답게 쓰임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예수님의 기도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눅22:31~32절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지금도 우리 예수님은 사탄이 밀 까부르는 것처럼 우리를 어지럽게 하지마는 그래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까닭으로 우리가 돌이키게 되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에서 감사하고 자족하며 남을 의식하기 보다는 각자가 하나님의 창조된 개성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인 것을 알고 기도하며 적극적인 신앙으로 말씀을 붙들고 사시며 지금도 우리 위해서 생명을 불어 넣으시려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는 주님이 계심을 기억하여 사시므로 장애를 딛고 근심을 떨쳐버리고 늘 승리하시는 삶이 이루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5월 12일 주일 예배 영상
하박국 2:4 김용우 목사
2025년 5월 12일
교회앨범
담임목사 위임·원로목사 추대 및 임직…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용우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