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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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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2:6~13절 “사랑의 실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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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6-20 21:10    조회 220    댓글 0  
 
약2:6~13절          “사랑의 실천”②        2023.6.21.
우리는 예수 안에서 모두 헬라어 <아델포스> <형제>입니다. 아델포스는 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란 의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우리 믿는 자들을 모두 <형제들아> 호격으로 <아델포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형제이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것을 금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형제가 되었습니까? 고후4:4절에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악한 영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예수를 믿은 것은 우리 가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똑같이 얻은 것은 예수 모심으로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것이 있잖아요. 롬3: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외형을 보지 말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사람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심을 받은 사람들인 것에 주목하자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습니다.

6절을 볼까요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교회 내에서 본 것이 뭐랍니까? 여기 <도리어> 헬라어 <데>라는 접속사를 통해 너무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음을 지적합니다. 도리어 어떻게 했답니까? 가난한 성도를 업신여겼다는 겁니다. <업신여기다> 헬라어 <아티마조>는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하다> 또는 <모욕을 주다> 또는 <창피를 주다>란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치욕적인 대접을 받았다는 겁니다. 이러한 행동은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난 아델포스, 형제임을 부정하는 복음의 진리에 역행하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거지요
자리를 내주면서 여기 앉으라 대접한 부자는 어떻답니까? 너희를 억압하며 범정으로 끌고 가더라는 겁니다. <억압하며> 헬라어 <카타 뒤나스튜우신>은 <폭군처럼 행동하다> 행13:50절에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이런 현상들이 교회 내에 저들이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재력이나 권세를 빌미로 폭군처럼 행동했다는 겁니다.
채권자로서 채무자들인 가난한 성도들을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악랄하게도 피도 눈물도 없이 법정에 끌고 가더라는 겁니다. 여기 <끌고 가지> 헬라어 <헬쿠신>은 <칼을 빼듯이 날카롭게 잡아 끌다>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빌어서 위협하며 법정까지도 끌어내는 인권을 철저하게 짓밟는 사람들이었음을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을 보시지요.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부자들이 성도들에게 따르는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한다는 겁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 이름 예수잖아요. 이상하네요. 교회에 들어온 부자들은 그렇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네요 그러면 그렇지요 예수이름을 비방할 정도니까 채권자로서 빚을 갚지 않는 가난한 성도들을 재판정으로 인정사정없이 세우지요 그러니까 여기 부자들은 돈을 사랑하는 까닭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인간은 두 주인을 사랑할 없음을 알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든지 주님을 사랑하든지 복음을 듣고 믿기는 믿는데 돈을 믿고 있었던 겁니다.

8~9절을 보시지요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요13: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5: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마22:37~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거랍니다. 예수님 이 세상에 오심으로 뭐가 완성되었습니까? 율법이 완성되었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최고의 법으로 예수 믿는 자들에게 이루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순종하며 산다면 이것처럼 잘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여 대한다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어겨 정죄 받는 범법자가 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다른 법을 잘 지킨다 해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오셔서 완성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최고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니 이는 죄를 짓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 <범죄자> 헬라어 <파라바타이>는 <곁길로 가는 자>란 의미니까 우리가 예상치 않는 죄를 우리 스스로 많이 짓고 있다는 걸 깨닫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11절을 볼까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법엔 경, 중이 따로 없다는 거잖아요. 그 어느 것 하나도 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러므로 그 중 하나만 어겨도 정죄를 받는다는 겁니다. 성도들이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았어도 뭡니까?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요 가난한 자를 업신여김도 역시 죄가 된다는 겁니다. 여기 <범하다> 헬라어 <프타이세>는 <과오와 죄를 범하다>는 의미거든요 신27:26절에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예수님 오셔서 율법의 완성을 이루었지 절대로 율법을 폐하려 오시지 않으셨음을 알리셨잖아요. 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하나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이것은 최고의 법이니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업신여기기보다는 형제로서 존중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2~13절을 보시자구요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여기 <자유의 율법> 완성된 율법,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자유의 율법이라는 거지요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행하지 않으면 정죄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알고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겁니다. 만약 이렇지 않으면 자유하는 율법이 너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 없으므로 너희가 긍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휼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거고 반대로 긍휼을 행한다면 예수 있는 자이니 장차 하나님 심판대 앞에서 그 심판을 이기게 되고 이를 자랑하고 즐거워하게 되리라는 겁니다 행하는 믿음 어떤 것입니까? 주의 사랑을 이웃을 사랑하되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본질로 한 형제로 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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