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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9:1~5절 “바울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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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7-06 12:17    조회 651    댓글 0  
 
롬9:1~5절 “바울의 고뇌”  2022.7.6.
1절을 볼까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지금 바울의 이 탄식은 자신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과 은혜를 유대인들인 자기 동족이 함께 누릴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거거든요 하나님께로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백성이건만 이 특별한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신득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이 백성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거지요 지금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을 말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여기 ‘참말’ 헬라어 ‘알레데이안’은 ‘진리’라는 의미라는 거지요 바울이 참말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어 ‘엔 크리스토’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하나 된’이란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의 참말이라는 권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바울을 본다는 겁니다. 내 말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스도와의 연합됨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는 거거든요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동족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믿지 않는데 있는 거지요 여기 ‘근심’ 헬라어 ‘뤼페’는 ‘슬픔’ 또는 ‘고뇌’라는 의미거든요 인간에게 뤼페가 온 이유가 뭡니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왔다는 거지요 그래서 창3: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임신하는 고통, 수고하고 자식을 낳음, 다스림을 받음 등은 ‘뤼페’ ‘근심’이었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바울은 이신득의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는 동족의 불신앙으로 인해 ‘뤼페’ ‘근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근심하는 이들이 아니라 믿어야할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는 상태를 보며 근심하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하여 이런 처지의 민족을 향해 슬퍼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그렇지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사랑하여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또 하나 ‘그치지 않는 고통’ 헬라어 ‘아디알레입토스 오뒤네(고통)’는 ‘불타는 듯이 타는 아픔이나 괴로움’이란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뭡니까?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의 동족의 영혼구원을 위해 불타는 듯이 타는 아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했고 바라봤고 판단했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구원이 먼저였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이 세상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민족이 통로가 되어주어야 하는데 통로가 되기는커녕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밀어내고 있더라는 거지요 극심한 아픔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거고 심지어는 자신이 저주를 대신 받고 이스라엘백성이 구원 받았으면 하는 마음까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증거한다고 말하는 거지요 죄 된 상태에서 양심은 올바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성령 안에서는 양심이 그 기능이 진실한 쪽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양심의 소리가 진실과 진리 그리고 정의에 일치하려면 오직 성령 안에서만 통제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 안에서 우리의 양심이 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꼭 기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바울의 솔직한 심정이 무엇입니까? 자기 민족을 위해 대신 저주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내가 저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져서라도 내 민족이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리라는 겁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지요 막10: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처럼 제물로 드려 자기 백성을 구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역사에 멀어져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구원 얻는다면 내가 저주 받아 끊겨져도 괜찮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식이 아플 때 자식을 대신해 내가 아프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은 겁니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소원이잖아요. 그렇다면 바울은 자기 동족의 영혼구원에 대해 정말 애틋한 사랑으로 가득했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바울은 자기 동족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나의 ‘형제’ 헬라어 ‘아델포스’는 ‘같은 자궁에서 태어난 자’란 의미이고 그리고 골육의 친척이랍니다. 뭡니까? 뼈와 살을 같이한 친척이라는 거지요 여기 ‘친척’ 헬라어 ‘슁게논’은 ‘같은 혈통’ 또는 ‘같은 후손’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형제요 골육의 친척인데 ‘나의’ 헬라어 ‘무’를 사용함으로 그 사랑이 애틋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겁니다.
4절을 보자구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지금 바울은 나의 형제, 나의 골육의 친척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사람’이라는 거지요 이스라엘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특권으로 얻은 것이 먼저 ‘양자됨’ 헬라어 ‘휘오데시아’는 ‘아들로 삼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이는 어떤 의미입니까? 아들이 아니었었는데 아들로 삼은 것을 말하잖아요. 출4:22절에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저들을 향하여 요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신약의 우리가 그렇지요 우리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엡2: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러나 예수를 주로 믿음으로 이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인 양자를 삼아주신 거지요 롬8: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자 이스라엘은 특권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예수를 거부함으로 자녀로 특권을 누릴 기회를 상실한 겁니다. 그리고 영광이랍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을 누가 보았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보았습니다. 그 영광의 하나님이 빛이신 하나님으로 말씀이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영광의 주님을 배척함으로 특권을 누릴 기회를 상실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언약이랍니다. 모두 네 가지인데 제일 첫 번째가 노아와의 언약이고 둘째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요 셋째가 시내산언약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언약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을 주셨다면 유대인 모두는 이 언약 안에 들어와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를 거절하므로 특권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인데 자기 백성에게 주신 율법의 완성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잖아요 이또한 이스라엘백성들은 거절하므로 이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것에 기회를 상실했다는 거지요 예배 역시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인데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성공적 예배를 드리는 기회를 상실했고 모든 약속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인데 이 약속을 누리는 것까지도 예수를 거부함으로 상실했다는 겁니다. 5절에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조상들 이스라엘백성의 것이고 조상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백성으로 오셨는데 그가 누구세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는 건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으니 이스라엘이 누구냐 특권을 상실한 백성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예수 믿고 저들이 상실한 것을 누리는 자들이 된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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