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삼상17:4~7 “다윗과 그의 할머니 룻에게서 군선교를 봅니다”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작성일 21-07-29 10:19    조회 1,097    댓글 0  
 
삼상17:4~7 “다윗과 그의 할머니 룻에게서 군선교를 봅니다” 2021.7.29.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여기 본문의 다윗이 등장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룻1:14~18절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나오미가 홀로된 두 며느리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중에 나오미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해서 결혼 시켰던 두 며느리에게 이제는 너희 남편들도 죽고 없으니 너희 백성과 너희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강권하더라는 거잖아요 이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서 더 이상 희망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모압의 신 그모스가 있는 모압으로 돌아갑니다. 룻은 하나님 신앙으로 오르바는 모압의 우상 그모스를 따라서 길이 나뉘어졌다는 거거든요
이렇게 룻은 베들레헴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랐고 거기서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는 겁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룻의 증손이 다윗이라는 거지요
다윗이 이 상황 바로 직전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삼상17:26절에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참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는 다윗을 봅니다. 그런가하면 다윗의 할머니 룻도 가장 안 좋은 환경 더 이상 나오미를 통해서 남편을 얻을 수 없는 절망적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룻은 거기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찾을 때 당시 상황에 대해 삼상17:24절에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이럴 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다고 할 때 삼상17:33절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임금은 다윗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뭡니까? 너무도 안 좋은 환경이요 절망적 상황이지만 그 할머니에 그 손주입니다. 다윗은 삼상17:36절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할머니 룻이 소망이 없는 중에 하나님께 소망을 둔 것처럼 손주 다윗 역시 하나님께 소망을 두잖아요.

그러면 오늘 본문 골리앗의 이 모습은 상대에게 크게 위압감을 주는데 골리앗의 머리는 놋 투구로 몸은 비늘갑옷으로 다리는 놋 각반으로 어깨는 놋 단창을 매고 거기다가 방패든 자가 앞에서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최고의 공격무기 방어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골리앗에게 틈이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 틈이 없습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비대한 몸과 공격력과 방어력을 믿고 얼마나 큰 소리를 치는 지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 군대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반면에 다윗은 목동의 차림 그대로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상대가 안 되는 두 모습입니다 마치 세상 군대와 우리 군선교회의 모습이잖습니까?
그러나 골리앗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뭡니까? 구원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지혜를 빌리고 능력을 빌려서 당신의 일을 하시지 않잖아요 하나님은 군선교회처럼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바로 그 믿음에 당신의 능력과 지혜를 부으셔서 구원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다윗의 할머니 룻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하나님께로 몸을 의탁할 때 그녀가 바라보는 것이 육신적인 것이 전부라면 아마 베들레헴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그녀에게 나오미에게 없을 수 없는 그 것을 보아스를 예비하사 룻을 구원하시잖아요 구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 군사력의 뛰어남을 내세우는 현실에서 군선교회에서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귀한 진리를 계속해 보여주시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2:17절에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그리고 삼상17:50절에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여기서 무엇을 깨닫게 되나요 다윗이나 그 할머니 룻은 가장 연약한 중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삼상17: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아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어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야 그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해결은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 때문에 너무 신경 쓰며 약해지지 말자구요 2미터86.7의 신장을 모두 가리고 있는 골리앗을 아무런 무장도 없이 짐승을 대하던 물매와 돌로만 나간 다윗이 이마와 이마사이 3센티미터나 될까요. 그곳을 적중시키잖습니까? 아마 군선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치명적 영향이 되어 거구의 골리앗이 쓰러지듯 쓰러지는 모습에서 양진영의 군사들 모두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본 것처럼 군선교도 그렇게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넷살이 큰 우상을 보았고 뜨인 돌, 살아있는 산돌이 나타나 우상의 죽은 것이잖아요 그 죽은 것의 발가락을 치니 우상이 깨어진 것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으니 마지막 때 예수님은 뜨인 돌로 나타나 우상으로 표현된 세상을 향해서 날아가 발을 쳐 그 죽은 우상이 무너져 굴복하고 세상에 구원 받은 영혼으로 가득하게 하신다는 것이니 오늘날 흰돌이요 뜨인 돌이며 산돌이신 예수 믿는 것이 복이고 능력이라는 걸 배웁니다.
우리에겐 예수님이라는 돌이 있지요 믿음으로 기도로 말씀으로 던지자고요 다윗은 세상의 투구도 갑옷도 칼도 다 내려놓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나가잖아요 우리도 모두 주님만을 원하고 더 원하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죽은 것이고 무엇이 산 것일까요? 눅15:24절에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탕자의 아버지가 생각하는 죽은 것은 뭡니까? 아버지재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날 때 이미 죽었다 이미 잃어버린 자라고 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산 것일까요? 탕자가 아버지를 향해서 돌아 왔을 때 살았고 찾았다는 말씀이지요. 이 원리대로라면 마지막 때 일곱 교회 중 하나 계3:1절에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뭡니까? 사데교회의 성도들의 삶이 교회라는 이름은 있지만 삶의 방향과 중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세상입니다. 다윗의 할머니 룻은 나오미를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잖아요? 그것이 산 자의 모습이에요 이스라엘군대 모두가 다윗의 형들조차도 이스라엘의 임금조차도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죽은 세력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는 죽은 자들에게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여 있는 산 자 다윗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양 진영의 군사들 모두에게 보인 것처럼 우리 군선교사님들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산 자들이기에 우리 군대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늘 보이는 군복음화를 이루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4월 28일 주일 예배 영상
고린도후서 4:7~15 김용우 목사
2024년 4월 28일
교회앨범
봄맞이 교회 대청소 및 새단장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진수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