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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19~20절 “살이 뼈에 붙어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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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10-20 16:52    조회 419    댓글 0  
 
신30:19~20절  “살이 뼈에 붙어있듯이”  2023.10.22.
독수리는 태풍이 몰려올 때 본능적으로 위기임을 알아차린다고 하네요. 그리고 폭풍이 오기 전, 바람이 몰려오는 방향을 향해 날개의 각도를 조정하고 폭풍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 바람은 독수리를 떨어뜨리거나 쓸어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르게 만들어 준답니다. 독수리가 알맞은 각도로 날개를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바람을 역이용해서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것이지요. 독수리가 높이 오른 창공에는 그 어떤 폭풍의 위력도 미치지 못하고 독수리는 그 광경을 유유히 내려다본다고 합니다.
19절을 보시지요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여기 <내가 불러 증거를 삼노라> 히브리어 <하이도티>는 <~를 증인으로 초청하다>란 의미인데 그 초청된 증인이 누구라는 겁니까? <하늘과 땅>이라는 거지요 인간은 어떻습니까?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데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는 거짓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하늘과 땅은 인간과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변함이 없다는 거 그리고 확실하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그렇게 변하지 않고 확실하다는 겁니까?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다는 거거든요 여기 <네 앞에> 히브리어 <레파네카>는 <네 얼굴에> 또는 <네 얼굴 쪽으로>라는 의미로 <보라> <레에>는 <잘 생각해 보라는>겁니다. 이제 선택은 네가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는 거 아닙니까? 언제? 히브리어 하욤, 오늘이라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에겐 내일이 없으니까 내일이면 이미 늦어버리니까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저주냐 오늘 결정해야 지 내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에 국가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사형받기 위하여 기둥에 묶여 시계를 쳐다보니 사형집행까지는 정확히 5분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천금 같은 5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한 그는 2분은 자신을 찾아준 귀중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데에 쓰고 2분은 자신이 살아온 28년 동안의 생을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쓰고 마지막 남은 1분은 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둘러보는 데에 쓰기로 했습니다. 2분 동안의 인사를 마친 그는 지나온 생을 회고하면서 <나는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려 할 때 탄환을 장착하는 소리가 철커덕하고 들려옵니다.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면서 기둥에 매달린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옵니다. 바로 그 순간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면서 형장으로 달려들어 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총살형 대신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던 겁니다. 그는 늘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면서 오늘이란 시간을 아낄 때 매우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는 거지요
오늘 우리 모두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기억하자구요. 하나는 <레파네카, 네 얼굴 앞에> 무엇을 생각하며 바라보느냐 하는 것과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하욤, 오늘> 오늘을 놓치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볼 수 있도록 저들의 얼굴 앞에 오늘 제시된 것이 무엇이랍니까? <생명> <하임>과 <복> <토브>랍니다. 그런데 복으로 번역하고 있는 <토브>는 <선>이란 의미거든요 그리고 생명의 상대 단어가 <사망> <마웨트>잖아요. 그리고 <저주>로 번역하고 있는 <라>는 <악>이란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생명과 선, 사망과 악 이제 맞아 떨어집니다. 그런데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받지 않느냐는 것은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뭡니까? 사느냐 죽느냐 둘 중에 하나가 된다는 거 아닙니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교황의 박해를 피해 비텐베르크 성에 숨어있는 동안에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대과업을 완성했다는 거지요. 그가 성경을 번역하던 방의 벽과 기둥에는 지금까지도 잉크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는 겁니다 차라리 교황과 타협하여 좋은 자리를 얻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하는 유혹이 마음속에 생길 때마다 루터는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외치며 잉크병을 벽이나 기둥에 던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루터가 사탄에게 'No'하는 순간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Yes'하는 순간입니다. 우리 역시 말씀 앞에서는 Yes' 반대로 유혹 앞에서는 'No'라고 할 수 있는 선택에 있어서 용기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너와, 앗타/ 네 자손이, 자르에카>인데 자손으로 번역하고 있는 <자르에카>는 <씨>라는 의미거든요 씨가 가진 의미는 계속적인 번성에 있잖아요. 나와 더불어 번성하여 내려갈 자손들에게 번성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살기 위해서 생명과 선을 선택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절을 보시지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여기 <의지하라> 히브리어 <따바크> 누구를 <그를>이니까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거지요 이 의지하라 <따바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살이 뼈에 붙어 있는 것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을 뜻한다는 겁니다. 뭡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 들어가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는 거지요 이렇게 산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왕하18:6절에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기 <연합하여> 히브리어 <와이드바크>의 원형이 <따바크> 살이 뼈에 달라붙어 있듯이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연합하여> <따바크>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결코 떠나는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히스기야가 앗수르가 1차 침공했을 때 왕하18:15~16절에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너무 안타깝지요. 하나님께 연합하여 살이 뼈에 달라붙어 있듯이 했던 히스기야가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되자 물질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물질에 맛 들린 앗수르가 2차 침공을 해 온 겁니다. 그러면서 너희와 같은 민족인 북쪽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만 우리를 당해내지 못하고 무너지지 않았느냐 그러니 괜히 힘들이지 말고 항복해 신은 앗수르의 신 니스록이 최고의 신이지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도 지키지 못하고 우리에게 망했어 예루살렘도 역시 망할거야 이에 대해 히스기야는 뭘 깨달았습니까? 물질로 해결은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하나님과 연합된 따바크의 히스기야는 비로소 왕하19:1절에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진작 이랬어야지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35절에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을 비웃고 거칠게 몰아붙였던 산헤립은 어찌되었을까요? 37절에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뭡니까? 물질로 안 되던 문제가 하나님이 하시니까 문제가 쉽게 그 근원까지 해결되더라는 겁니다. 어느 바다사나이의 말입니다. 인생은 표류하는 인생이라고 표류하지 않는 인생이 되려면 그렇다면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물질도 치밀한 계획도 아닌 하나님과의 연합 <따바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뭘 말씀하셨습니까? 요15:4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 우리 연합하자고 하시잖아요. 따바크, 마치 뼈에 살이 붙어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 말씀처럼 그렇게 하자구요 그러면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연합이 주는 축복, 많은 열매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절 본문으로 돌아갈까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따바크, 살이 뼈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의지하고 연합된 삶이 필요한 걸까요? 왜냐하면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라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장수> 히브리어 <오레크 야메카>는 <네 날들의 길이>란 뜻이거든요 하나님과 연합되어진 영혼 역시 복된 측면에서 영원이 보장 되는 거잖아요 생명 역시 하나님 여호와께서 생명의 원천이시니 그분과 연합되어진 심령 또한 그분의 생명으로 충만할 것은 당연하다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하나의 연합이 필요한 이유가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된다는 겁니다. 마11: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하고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빼앗는다는 거지요 이 말씀에서 무기를 준비하고 힘을 기르고 전술을 익히는 것인가 또는 두려움을 없애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지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사는 거라는 겁니다. 요14: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 너희가 누굽니까?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 아닙니까?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으실 때 우리의 정과 욕심도 함께 달렸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 또한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음을 믿습니다. 이렇듯 자신과 연합된 우리에게 약속의 땅 천국을 예비하셨고 우리로 들어가게 하사 당신과 영원히 거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입니다. 어느 정도로 연합되었습니까? 살이 뼈에 붙은 것처럼 연합되었습니다. 언제 연합되었습니까? 오늘이라는 믿을 때 믿음의 순간 연합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됨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레크 야메카 영생의 자리까지 영원한 장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 약속의 땅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이 이루어졌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들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오늘을 약속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항상 생명과 선을 선택하며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복된 많은 열매를 맺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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