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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2:1~10절 “주가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약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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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3-07-14 13:44    조회 445    댓글 0  
 
고후12:1~10절  “주가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약함입니다.”  2023.7.16
금과 보석은 반짝이며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반짝인다고 다 금이나 보석은 아닙니다. (All is not gold that glitters) 깨진 유리조각도 불빛에 반짝일 수 있으며 함석지붕도 햇살을 받으면 반짝이며 빛을 낼 수 있으니까요 오늘 진짜 보석이면서도 약함을 자랑했던 사도바울을 생각하면서 “주가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약함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볼까요.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모세오경과 선지서 그리고 시가서가 전부인 구약성경과 예수님의 행적과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이 전부였던 때 거짓사도들은 환상과 계시를 과장을 해서 스스로를 자랑하고 사도바울의 사도권 (使徒權)에 대해 공격을 해옴으로 복음이 아닌 무익한 것 자신이 경험한 주의 환상과 계시를 부득불 어쩔 수 없이 자랑하겠다고 말하고 있음을 본다는 거지요 여기 <환상> 헬라어 <옵타시아스>는 <나타나다> 또는 <보여지다>란 의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것과 신비한 현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는 겁니다. 바울이 본 환상 가운데 하나 행16:9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그리고 <계시> 헬라어 <아포칼륍시스>는 <덮거나 가리운 것을 벗기다>는 의미인데 행9:3~5절에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이 체험한 계시 가운데 하나라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주의 환상과 계시>라고 말하는 거지요 뭡니까? 그리스도께서 바울사도로 하여금 보게 한 환상과 계시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깊게 흐르는 물이 소리가 나지 않듯이 전혀 환상과 계시를 드러내지 않았던 이것이 바울의 모습이었다는 거고 반대로 빈 수례가 요란하다잖아요. 이것이 거짓사도들의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2절을 보시자구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여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 헬라어 <안드로폰 엔 크리스토>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뭡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말하는데 그를 안다 면서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 여기 <이끌려가다> 헬라어 <하르파겐타>는 <잡아채다> 또는 <강제로 빼앗아가다>는 의미로 살전4: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 <끌어올려> <하르파겐타> 잡아채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셋째 하늘에 올리어 갔다는 거거든요 유대인들의 하늘의 개념은 세 가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첫째 하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천체망원경으로 보게 되는 둘째 하늘, 그리고 엡4:10절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모든 하늘 위의 하늘 삼위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과 천사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 셋째 하늘인데 바울이 이 곳에 <하르파겐타> 이끌려 갔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바울이 이 체험을 언제 했답니까? 14년 전이라는 거지요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당시가 주후55년경으로 본다면 주후41년 쯤이라는 건데 시기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뭡니까?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구약의 에녹과 엘리야처럼 영혼이 몸 안에 있는 채로 올리어 갔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처럼 몸은 남겨진 채로 영혼만 올리어 갔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이를 3절에 한 번 더 반복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뭡니까? <나는 모르는데> 헬라어 <우크 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데오스 오이덴> 우리도 그렇잖아요. 나의 앞길, 내가 겪는 지금의 문제들 우크 오이다, 나는 몰라 우린 알 수가 없어 그러나 데오스 오이덴 하나님은 모두 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자구요 하나님을 의지하자구요 그런 하나님을 가까이 하자구요
그리고 4절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이 이끌려간 셋째 하늘이 어디랍니까? 낙원이랍니다. <낙원> 헬라어 <파라데이소스> 영어는 <파라다이스> 예수 믿음으로 가는 곳 같이 십자가에 달린 회개한 강도가 간 그 낙원은 환상의 나라가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구나 하는 걸 깨닫잖아요. 모든 수고를 마치고 우리 모두가 가야할 곳 셋째 하늘, 그곳이 낙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6절을 보시지요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고후11:30절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것이 거듭 되는 바울의 고백이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뭡니까? 큰 은혜를 경험할수록 참말을 하되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거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움직임을 보인다는 거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7절을 보세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 <자만하다> 헬라어 <휘페라이로마이>는 <위로 들어 올리다>란 의미거든요 스스로를 위로 올렸던 사탄처럼 버리운자가 될까봐 하나님이 바울에게 육체에 가시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가시>란 뭘까요? 여기 <가시> 헬라어 <스콜롭스>는 <말뚝> 또는 <나무조각>이란 의미로 성경에서 가시란 주로 끝이 뾰족한 날카로운 것을 의미하거든요 이것이 어디에 <육체에> 헬라어 <테 싸르키>는 <육체 안에>란 의미거든요 갈4:13~14절에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그러면서 계속된 15절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여기서 바울사도의 육체에 <가시> 헬라어 <스콜롭스>는 바로 눈에 생긴 질병인 <안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사단의 사자는 뭘까요? 사단의 사자란 사도바울을 쓰러뜨리려고 수도 없이 대적하는 자들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을 휘페라이로마이 자만하지 않도록 하는 두 가지로 그 하나가 그의 육체 안에는 뾰족한 나무 조각으로 찔러대는 가시인데 오히려 聖化(성화)를 이루게 하였고 다른 하나는 사단의 사자 역할을 하는 대적자들로 인해 바울의 인격이 오히려 성숙해 질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아픔을 통해서도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육체에 찌르는 가시와 사단의 사자가 나를 쳤다는 겁니다. 여기 <쳐서> 헬라어 <콜라피제>는 <주먹으로 강타하다>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마26:67절에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여기 <주먹으로 치고> <콜라피제>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바울이 안팎으로 겪는 마치 주먹으로 강타당하는 것을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에서 모두 겪으셨다는 거 아닙니까? 히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리고 <쳐서> <콜라피제>의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에 가시 그리고 사단의 사자는 한번으로 끝이 난 게 아니라 계속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보통 거짓사도들은 콜라피제의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피해 도망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바울은 계속되는 이 주먹으로 강타당하는 콜라피제로 인해 주님이 먼저 겪고 이기신 것을 그도 고스란히 받으면서 이기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의 고백은 놀랍게도 뭡니까?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겸손한 사도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사랑의 장애물을 앞에 두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주먹으로 계속 쳐대는 콜라피제의 현실 앞에서 바울은 기도하게 되더라는 거 아닙니까? 몇 번 기도 했대요? 세 번이랍니다. 십자가의 잔이 비켜나가도록 예수님 몇 번 기도하셨습니까? 세 번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예수 무엇을 아뢰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다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바울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기도의 응답이 바울이 원하는 대로였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의 뜻대로였습니다. 여기 <이르시기를> 헬라어 <에이레켄>은 이미 완료된 말씀이라는 거거든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헬라어 <카리스 무 소이 아르케이> 내가 원하는 기도응답이 아니라하여도 내게 하나님의 큰 지혜와 보다 나은 방식으로 당신의 백성을 더 낫게 이끄시고 돌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 은혜> 헬라어 <카리스 무>는 어떤 의미일까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잖아요 예수를 핍박하던 자 그를 예수를 위해 사는 자로 세우심이요 세상 자랑할 것이 많은 자를 주 예수만을 자랑하고 자신의 자랑은 먼지처럼 여기게 하심이요 더 나아가 고후6: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셨음이 바울이 받은 그리스도예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뒤나미스> <능력>이 인간의 약함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거지요 반대로 인간의 능력이 강한 데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먹으로 강타하는 콜라피제에 오히려 자랑하겠답니다. 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헬라어 <에피스케노세>는 <장막을 치다>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머무름처럼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는 동안 내 장막에 주의 능력이 머물 거라는 고백이라는 거지요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여기 헬라어 <훼페르 크리스투>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렇습니다 우리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나의 약함이 그리스도의 강함과 위대함으로 그리고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래서 최상으로 아름답게 하시는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원하며 지금도 고난과 은혜 두 날개로 우리를 이끌어 가심을 기억하고 <훼페르 크리스투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늘도 인내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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