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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3:33~43절 “십자가, 무관심한 자 조롱하는 자 그리고 믿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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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4-07 17:56    조회 1,973    댓글 0  
 
눅23:33~43절 “십자가, 무관심한 자 조롱하는 자 그리고 믿는 자” 2022.4.10
새는 자신의 몸에 비해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날 수가 있잖아요. 황포돛배에 달린 돛은 무겁기 그지없지만 그것으로 바람을 이용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지요 우리에게 없어도 될 것 같은 자기십자가가 때론 아프고 짐이 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십자가 때문에 기도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마침내는 천국까지 이르게 한다는 거 아닙니까? 오늘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통해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33절을 볼까요.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여기 해골이라는 곳이랍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였거든요 그래서 이곳을 ‘해골’이라는 의미의 단어 아람어로 ‘골고다’라고 불렀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골고다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섰음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못 박힌 십자가요 또 예수님 우편과 좌편에 두 행악자도 십자가에 못 박혀있더라는 거지요 여기 ‘행악자’ 헬라어 ‘카쿠그루스’가 다른 복음서에서처럼 ‘강도’인지 모르지만 강도가 십자가형의 극형을 받지는 않는다고 볼 때 이들은 그야말로  로마를 대항하여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래서 모질고 나쁜 짓을 일삼는다 해서 행악자라고 불렀을 거고 십자가형으로 다스리게 되었던 거지요 뭡니까? 행악자가 달려야 할 그 십자가에 빌라도총독도 찾지 못한 죄 없는 예수님을 못을 박아 처형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종교지도자들이란 사람들 참 말도 안 되는 일을 했구나 순전히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맞지 않는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의 생명을 무책임하게 끊어내고 있음 본다는 거지요 하나님의 생명인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성전미문에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한 베드로가 이 기적을 보고 모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행3:15절에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악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인 예수님이 누구셨다구요? ‘생명의 주인’이었다는 거지요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이들을 향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구요 34절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뭡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그 고통을 당하시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로써 하나님께 부탁하더라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은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본다는 겁니다. 여기서 뭘 발견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이요 이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실현되는 순간이라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롬3:25~26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지금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뭡니까? 용서의 실현입니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뭡니까 믿는 자에게 죄가 용서 받았으니 의가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이루어 내시고 계신다 그래서 그동안 죄로 하나님과 막혀 있던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시고 계신다는 거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고 있는 로마병사들의 모습에서 유대인들이라면 시편 말씀을 깨달아야하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구약성경에 능통한 율법사도 있었잖아요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시편22편에서 메시아의 옷을 나누는 모습을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었을 텐데 어떻게 예언되고 있었습니까? 시22:18절에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그럼 알았어야지요. 분위기에 묻혀 하나님의 말씀마저 묻혀버리고 있음을 본다는 거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분위기와 상황에 휩쓸려 기억나고 붙들어 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5절을 보자구요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골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는 백성들에 대해 기록하기를 ‘서서 구경하는데’라고 말씀하심으로 마치 방관자들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거지요 이 모습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잖아요. 예수 십자가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요 그런 이유로 방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방관한다 해서 무관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들 모두 아닌 척 해도 죄 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잖습니까? 롬3:10절에 뭐랍니까?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23절에서는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다면 지금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올리는 예수님의 용서가 못을 박고 있는 이들 못을 박게 하는 이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 모두에게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그렇잖아요. 마치 예수님과 무관한 것처럼 교회에서 고난주간이래지 부활절이래지 바라만 보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요16: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이 이를 말씀하셨지요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이야기도 되잖아요. 죄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여전히 심판과 사망에 있을 거라는 거 아닙니까?
또 이번엔 같은 35절에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여기 관리들로 분류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인데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나요? 멸시하고 조롱하기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라면 너 자신도 십자가에서 구원하라는 거지요 뭡니까? 메시아는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어야 된다고 그래야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예언하고 있잖아요. 사53:4~6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를 없이하려고 어린양이 되어 죽으려고 오신 건데 내려오라니요 그래서 널 구원하라니요 주님이 구원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잖아요. 구원하셔야할 구주시라는 거거든요 자신이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죽는데 내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를 요1서4:9절에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 당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는 이들은 누군가 살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으로 봤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누구라는 겁니까? 구원하시는 자라는 거지요 그러나 그 당시 관리들은 그걸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거든요 이걸 베드로가 증거하기를 행3:17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방송인이자 개그맨인 이경규씨가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할 때인데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마라’ 지고 가는 가방이 너무 무거워 벗어 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서 배낭을 열어보니 먹을 것이 가득하더라는 이야기로 대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내려오시지 않은 이 일을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9절을 보시지요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그러나 같은 사건을 똑같이 보면서도 다른 한 강도를 보자구요. 42절에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다른 한 편의 강도는 믿을 수 없는 환경 중에서 믿음의 역사가 발휘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로 죄 사함과 용서가 선언되었고 구원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매우 즉각적임을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행악자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과 그뿐만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구원은 그가 행악자든 아니든 그가 누구이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이 임함을 발견하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만인에게 공개된 십자가에 달린 예수 우리를 위해 용서하시는 예수 믿기만 하면 죄 사함과 용서를 동시에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낙타는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거고 그러면 주인은 낙타의 등에서 짐을 내린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하루를 시작할 때 낙타는 역시 주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건데 그러면 주인은 낙타의 등에 짐을 얹는다는 거지요 이때 낙타는 주인이 얹어주는 대로 짐을 다 실고 등에 얹은 채로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납니다. 아무런 불평이 없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주인은 항상 자신에게 적당한 짐을 얹어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도 똑같아서 내가 감당할 만큼의 십자가를 지워 주신다는 거지요. 우리 주님 십자가는 너무도 가혹한 십자가를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위해서 지셨음을 기억하면서 내게 어떤 짐의 무게가 힘들게 할지라도 기쁨과 감사로 이겨내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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