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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11~18 “육체의 모양을 자랑하는 자와 예수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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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3-31 13:16    조회 1,751    댓글 0  
 
갈6:11~18  “육체의 모양을 자랑하는 자와 예수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  2022.4.3.
이제 사순절을 두 주 남긴 사월 첫째 주를 맞이했네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사이에서 절대로 갈팡질팡하지 않잖아요. 이는 흑도 백도 아닌 어중간한 회색지대에서 어슬렁거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항상 여호수아가 외쳤던 수24:15절이지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오늘날은 여호수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악하잖아요. 그렇다면 더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1절을 보시지요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바울의 대부분의 다른 서신들은 바울이 불러주면 다른 이가 대필을 하고 그 끝에 바울 자신이 서명을 함으로 자신의 서신서임을 알렸었거든요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다른 서신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썼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안질로 인해 눈이 불편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 글자로 기록했다고 알리고 있는 거지요 그러면 12절을 볼까요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여기 ‘육체의 모양’이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걸까요? 유대인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지금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억지로 받게 하려는 ‘할례’를 말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뭐랍니까?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 때문에 생기는 박해를 면하게 하려는 이유라는 거지요 할례를 받으면 박해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게 무슨 말일까? 복음의 핵심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잖아요 갈3: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십자가가 뭐냐 우리가 달려서 저주를 받아야 할 대신에 예수께서 달려 저주를 받으셨기에 내가 구원 받았다는 증거물이라는 거 아닙니까? 이거면 되지 다른 뭐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갈라디아교회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겁니다. 왜 그랬다구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했다는 거지요 무슨 말씀인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행21:19~20절에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했다는 거고 여기 예루살렘교회는 이미 예수 믿는 유대인이 수만 명이 있다는 거 그리고 그들은 율법에도 매우 열성이 있다는 건데 이들이 바울에 대해 어떤 사실을 들었답니까? 행21:21절에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예수 믿는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도 되 그런 말을 듣고 바울 너를 벼르고 있다는 겁니다. 행21:30~31절에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뭡니까? 터질 것이 터진 거지요 십자가 예수 믿으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 받는다 외치는 바울과는 다르게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율법에도 열성이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더불어 부딪히고 있었구나 그래서 마침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음을 알고 달려와 바울을 잡아 끌고 나가 죽이려 하였다는 거 아닙니까? 이제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박해 받지 않으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갈라디아 교회 유대인들이 갈라디아 이방인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바울은 이들을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들의 박해뿐만 아니라 함께 예수를 믿는 율법에 열성이 있는 자에게서도 박해를 받아야 하는 이중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할례가 뭐 어렵습니까? 할례 받으면 되지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예수 십자가 복음이 어떻게 됩니까? 십자가 예수 믿어야 하지만 더불어 할례도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어가 된다는 거잖아요 그럼으로 바울이 이신득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이신득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을 지켜내려했구나 그래서 이진리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제대로 세워질 수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하마터면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예수, 부활의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 데서 율법의 핵심이지요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할 뻔 했다는 거 아닙니까? 13절에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예수 믿으면서도 율법의 핵심인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 예수 믿는 자들의 문제점이 뭐라는 겁니까? 자기도 제대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의 핵심인 할례를 받게 하는 행위는 단지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를 가진 것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게 즉 육체를 자랑하게 하였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자랑할 것이 뭐랍니까?

14절을 보자구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단호하잖아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것으로 절대로 이루어지 않아 그러므로 할례 받았다고 자랑하지 마,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하나 예수 십자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십자가로 구속된 자는 세상과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답니까? 여기 ‘세상’은 헬라어 ‘코스모스’ 즉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지만 여기 본문에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신앙적이고 악한 세계’를 말한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뭡니까? 예수 십자가로 구속받은 자는 이 불신앙적이고 악한 세계와도 십자가에 못 박힌 관계가 되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나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신앙적이고 악한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이미 끝장이 났어’라고 선포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이 뭡니까? 빌3:8절에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초대교회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수 만의 유대인 예수 믿는 자들이 내세웠던 복음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율법의 핵심인 할례를 동시에 다 가져야 한다는 것은 뭡니까? 두 주인을 섬기라는 거잖아요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유대인 믿는 자들이 박해에서 이기려면 율법의 핵심도 받아들이라고 유혹한 것처럼 예수 십자가 물론 있어야지 그러나 사는데 있어서 그래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편하게 믿자는 타협신앙에서 오로지 예수 십자가외에는 없어하고 예수 십자가만 자랑하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절을 보시지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할례란 지금의 세례잖아요. 군대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어도 죽을 때까지 십자가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지요 그러나 세례 받지 못했어도 우리 예수 십자가 믿으면 멸망에서 사망에서 죄에서 구원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세례 받지 말라는 거 아니지요 세례가 뭡니까? 죄 씻음의 표거든요 일종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대한 신앙고백인 겁니다. 그러므로 할례 받았느냐 할례를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나는 거고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을 때 새로운 피조물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6절을 보자고요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여기 ‘이 규례’가 뭡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거든요 여기 ‘규례’ 헬라어 ‘카논’은 ‘지팡이’ 또는 ‘갈대’라는 의미니까 인간이 의지할 법이고 길이를 재는 자의 역할을 하는 갈대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의 법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누굴 말하는 걸까요? 율법의 핵심인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외치는 혈통적 이스라엘을 말하는 걸까요? 아니지요 예수 믿고 영적이스라엘이 된 구원받은 자를 말하는 겁니다. 갈3:29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가 예수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 자손이 되어 약속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규례를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들에 따르는 것이 뭐랍니까? ‘평강’ 헬라어 ‘에이레네’와 ‘긍휼’ 헬라어 ‘엘레오스’랍니다. 그런데 이 평강과 긍휼은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이 아니지요 어째서인가? ‘있을지어다’ 헬라어 ‘에프’거든요 또 이스라엘 ‘에게’는 헬라어 ‘에피’인데 둘 다 똑 같이 ‘위에’라는 ‘전치사’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하나님이 새로이 정하신 규례인 십자가 예수를 믿는 자와 그래서 영적이스라엘이 된 자에게는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뭐가 내려온다는 겁니까? ‘평강’ ‘에이레네’와 ‘긍휼’ ‘엘레오스’가 내려오게 되니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7절을 보자구요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마라’ 뭡니까?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오직 예수십자가로 구원 받는다는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함으로 바울을 괴롭게 하였다는 거지요 여기 ‘괴롭게’ 헬라어 ‘코포스’는 ‘베다’ 또는 ‘꺾다’는 의미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살을 베고 뼈를 꺾는 것 같은 괴로움을 주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 이 말은 뭘 말하는 걸까요? 여기 ‘흔적을’ 헬라어 ‘스티그마타’는 ‘잘린 자국들’이라는 의미로 노예의 몸에 주인의 소유를 나타내 찍는 낙인을 말한다는 거지요 고후11:23절에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그 다음 24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그 다음 25절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바울은 예수의 종이라는 낙인, 흔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이 뭡니까? 세상의 흔적들은 안개 같이 사라져도 예수님을 믿다가 생긴 흔적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더 나아가 주님 앞에서도 이 흔적은 칭찬이 되어 영원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 때문에 피한다면 그래서 복음의 핵심과 율법의 핵심 두 주인을 섬긴다면 편안은 하겠으나 예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18절을 보시지요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 ‘형제’ 헬라어 ‘아델포스’는 십자가 예수를 믿어 영적인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이지요. 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이신득의, 이신득구 그래서 하나님과 화평을 갖게 하신 은혜를 말하지요 이것이 어디에 ‘너희 심령’에 심령은 하나님이 계신 우리 마음의 자리잖아요. 그러면서 아멘, ‘아멘’ 역시 ‘믿는다’는 거잖아요. 교회 안에 육체의 모양을 자랑하는 자와 예수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인데 적당히 둘다 사랑하는 자가 아닌 오직 십자가 예수만 자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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