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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1:11~17 “여호와의 얼굴 앞에 항상 머물게 되기를 구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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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2-05 21:23    조회 1,922    댓글 0  
 
욘1:11~17  “여호와의 얼굴 앞에 항상 머물게 되기를 구하자고요”  2022. 2. 6
1846년 목사를 지원한 한 젊은이는 병원에서 너무나 병약해서 목회는 1년 이상 견디기가 어려울 거니 포기하라는 의사의 절망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1년이라도 복음을 전하다 죽으리라 했는데 자그마치 84세까지 복음을 위해 살았다는 거거든요 그가 말년에 말하기를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의사를 버렸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지 그 믿음이 나를 이 나이가 되도록 지켜주었다’ 이렇게 말한 그 젊은이는 군세군 창설자 윌리엄부스입니다. 그런데 윌리엄부스완 달리 회개의 복음을 거절하고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도망을 가고 있는 요나선지자, 그가 탄 배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지요 4절에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심각한 위기를 만난 겁니다.

11절을 볼까요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여기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히브리어 ‘홀레크’ ‘점점~한지라’ 그리고 ‘웨쏘에르’ ‘흉용’했다는 겁니다. 뭡니까? 자연과 바다는 사람의 통제 밖에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반대로 이 자연과 바다는 하나님의 통제 하에 ‘홀레크  웨쏘에르’ ‘점점 더 흉용해졌다’는 거지요
그래서 배를 탄 무리들이 요나선지자에게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는 거고 요나선지자가 12절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곤충학자가 불이 났을 경우 개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보고자하여 나무젓가락에 불을 붙여 개미들이 몰려있는 입구에 놓았더니 너무도 뜻밖에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처음 불을 발견한 개미가 놀랍게도 불에 자신의 몸을 던지더라는 거지요 다음 개미도 그 다음 개미도 그러자 불꽃이 점점 약해지더라는 건데 원인인즉 개미를 이루고 있는 키틴질이라는 요소가 불꽃을 저지시키는 소화물질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런 개미의 희생은 자신을 던져 많은 개미를 구하는 일이 되지만 여기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뭡니까? 내가 죽는 희생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되는 일이지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시면 요나의 희생도 헛것이 되고 배에 탄 모든 무리도 죽는 거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깨닫는 것은 요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막10: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예 처음부터 대속제물로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시려고 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몸을 바다에 던지라’는 요나선지자에게서 뭘 봅니까?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외쳐 주민 12만 명을 구원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는 거 아닙니까? 단지 나만 하나 없어지면 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회개하는 요나선지자를 원하고 계신 거지요. ‘잠시 시간을 주시오 배 밑창에 들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부르짖어 다시 하나님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일을 수행하리라 내가 돌이키면 바람과 바다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즉시 바다를 잔잔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콜롬비아 북쪽에 사는 꼬아지로 인디언 성경에서 회개는 죄를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회개는 죄가 지나가고 다시 머무르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리고 아이보리해안의 빠울라족은 회개는 ‘죄를 떠나게 하는 것’이라 했고 멕시코의 후이촐족은 회개는 하나님께서 죄를 취해 가시는 것이라 했다는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앉아서 시편51:7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리도 인생의 바다가 ‘홀레크 웨쏘에르’ ‘점점 흉용해지는’ 때 나 한 사람 죽는다는 거 없어지면 돼지라고 말하기 보다는 회개의 자리로 나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절을 볼까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나 때문이다 나 한 사람 바다에 던지면 돼, 이 말에 감동 받은 무리들이 힘써 노를 저어 육지 쪽으로 배를 대기 위해서 애썼지만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해졌다는 거고 그래서 그 시도를 포기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그 원인을 바로 찾는 것이지요. 우리가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잖아요. 그럼 병원에서는 일단 검사부터 하잖습니까? 피검사는 기본이고 심전도, CT찍고 안되면 MRI까지 찍잖아요. 가뜩이나 아파서 갔는데 검사하느라고 시간 보내고 진이 다 빠지지만 그래서 라도 원인을 찾잖습니까? 그래야 치료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요나 선지자가 만난 풍랑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3절이지요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이 한 절에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라는 말이 두 번이나 기록되고 있다는 거지요 그 정도로 자기 생각이 앞서고 자신의 고집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섰기 때문이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주신 사명을 등지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지금 요나선지자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뭡니까? 당연히 피했던 여호와의 얼굴을 다시 찾아야 했다는 거지요 시27:8~9절에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다윗처럼 요나선지자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풍랑이 생겼다는 걸 기억하고 제일 먼저 그가 할 일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야 했다는 거지요 예를 들면 왕하19:14절에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뭡니까? 앗수르왕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가 히스기야에게 전해졌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그 편지를 펴놓았다는 겁니다. 여기 ‘여호와 앞에’ 히브리어 ‘리프네 예흐와’는 ‘여호와의 얼굴 앞’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요나선지자는 자신을 집어 바다에 던지라는 말보다 더 급한 것은 바로 ‘리프네 예흐와’ ‘여호와의 얼굴 앞에’ 서야했었다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자손을 축복하라고 하셨을 때 민6:25~26절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호와의 얼굴 앞에 선다는 것은 뭡니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또, 평강을 주시기 원합니다. 남편이 바람이 나면 아내 얼굴을 안 보려고 하잖아요 거기에 평강이 깨지고 은혜로움이 사라지잖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삶에 우선순위를 두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15절을 볼까요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배에 탄 이방인 무리들이 여호와를 찾고 있는 거지요 누가 찾아야 합니까? 정작 선지자 요나는 그때까지도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고 있잖아요. 여기서 뭘 깨닫습니까? 우리 믿는 자가 자기 고집에 붙들리고 자기 생각이 우선 될 때 얼마나 악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날 바다에 던지라’ 뭡니까? 곧 죽어도 고집을 꺾지 않겠다. 그래서 회개의 자리로 나가지 않고 있는 뿌리 깊은 악한 모습을 요나선지자에게서 본다는 겁니다.
배에 탄 저들의 기도내용이 뭡니까? 지금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무죄한 자의 피라는 거고 그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말라는 거지요 자신들에게 해가 될까봐 염려하는 기도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주의 뜻대로 행하세요’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뭘 발견합니까? 우리의 구주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어주시고 온 인류를 사망의 바다에서 구원하시잖아요.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시기를 구하시지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속을 완성하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요나선지자의 이 사건은 무엇에 대한 그림자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그림자지요 그래서 마16: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는 불순종으로 인해 억지로 바다에 던져진 사망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잔잔해지는 그래서 배 위에 사람들이 사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사망 당하심은 히5:8~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배 위에 무리들이 16절에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이방인들이 구속의 그림자를 보고 예배자가 되잖아요. 우리 이야기지요 구속자이신 예수님 때문에 예배자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7절을 보시지요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여기서 회개가 일어나지요 2:4절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찾기 시작하잖아요. 주의 얼굴을 찾을 때 하나님이 왜그랬느냐고 책망하시거나 용서하실 때 토를 달던가요 아니요 그저 그분 앞에 앉는 순간 다시 밀려오는 은혜 다시 찾아오는 평강을 경험하잖습니까? 하나님의 얼굴 앞에 머무는 삶이 사망을 끊어내고 풍랑을 끊어내는 비결이 됨을 기억하시고 항상 주의 얼굴 앞에 머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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