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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7:10~14 “하나님의 손은 위기를 넘기게 하는 도움의 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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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2-02-05 21:22    조회 1,818    댓글 0  
 
삼상7:10~14  “하나님의 손은 위기를 넘기게 하는 도움의 손입니다”  2022. 1. 30
헬라어는 알파로 시작해서 오메가까지 모두 24개의 알파벳으로 되어있는데 4번째 알파벳이 델타이고 15번째 알파벳이 오미크론이거든요 코로나19 변형된 바이러스 이름들이 바로 헬라어 알파벳으로 붙여졌음을 알게 되지요 지난주엔 소상공인들이 눈물의 삭발식을 하면서 더 내려갈 바닥도 없는 안타까움을 알렸었거든요 우리 이런 때 헬라어 ‘아나스타시스’ ‘다시일어서다’ 또는 끊어진 것을 다시 잇다는 의미로 부활이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지금 이 시점이 전 세계에 아나스타시스 부활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갖습니다. 
이스라엘자손이 미스바로 모였고 거기서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졌었거든요 그런데 이 소식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블레셋 귀에까지 들렸다는 거고 블레셋이 ‘그것들이 미스바에 모였단 말이지 아벡전투에서 대승을 한 것처럼 이번에도 손 좀 봐줘야겠구만’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러 왔다는 거지요 아벡전투에서 워낙 쓰라린 대패를 했던 이스라엘자손들은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엘선지자에게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구원하시도록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이 요청에 사무엘선지자가 먼저 한 행동이 뭐냐 하면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로 드렸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거지요
 
10절을 볼까요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여기 ‘가까이 오다’ 히브리어 ‘나가쉬’는 ‘가까이 접근하다’는 의미거든요 이처럼 가까이 접근 했을 때 그 결과가 이스라엘 앞에 ‘패했다’는 거지요 여기 ‘패했다’ 히브리어 ‘나가프’는 ‘치다’의 의미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침을 받았다는 겁니다. 4장에 나오는 아벡전투에서 이스라엘민족이 블레셋에 패한 이유가 7:3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스라엘자손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4절에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런 때 접근한 블레셋을 쳐서 부숴버렸다는 건데 이는 ‘나가프’ 하나님이 심판의 차원에서 저들 블레셋을 치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 진리는 오늘 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잖아요. 벧전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누가 마귀의 밥이 됩니까? 근신하지 않는 자 깨어 있지 않은 자랍니다. 그러나 근신하고 있으면 깨어 있으면 오히려 마귀가 가까이 왔다가 하나님이 치심으로 패하여 도망가게 된다는 거잖아요. 오늘날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하면 마귀가 ‘나가쉬’ ‘가까이 접근해서’ 우리를 ‘나가프’ 치게 될 거지만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서면 아무리 악한 마귀라도 ‘나가쉬’ 접근했다가 오히려 마귀가 나가프, 치심을 당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이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셨다는 거고 그들이 어지럽게 되어 패했다는 겁니다 여기 ‘어지럽게’ 히브리어 ‘와예훔멤’은 ‘혼란스럽게’ 또는 ‘불안하게’되었다는 거지요 큰 우레 소리를 들으면서 블레셋 사람들이 한 결 같이 똑같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뭐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 전쟁에 개입했구나 그래서 혼란스러움과 더불어 불안해졌다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하면 위기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패를 맛보지만 반대로 우리가 바로 서서 살면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절을 보시시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여기 ‘추격하여’ 히브리어 ‘라다프’는 ‘박해하다’는 의미니까 단순한 추격이기 보다는 전쟁에서 패해 도망가는 블레셋 군사들을 아주 바짝 압박을 가하면서 이스라엘이 완전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는 거지요 여기 ‘벧갈’은 ‘어린양의 도시’로 블레셋진영에 있는 도시니까 블레셋진영 깊숙이까지 이르는 아주 큰 승리였음을 깨닫게 한다는 겁니다. 12절을 보시지요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선지자는 승리 자체에 그 가치를 두기 보다는 뭡니까? 이 승리가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데 핵심가치를 두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사무엘이 뭐랍니까?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거지요 ‘여기까지’ 히브리어 ‘아드 헨나’는 장소에서도 종결을 시간에서도 종결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전 아벡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으므로 패배하게 하셨지만 지금 여기 미스바에선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이기게 하셨다는 장소적 종결을 말씀하는 거고 시간적 종결이라면 전쟁을 시작해서 지금 적진 깊숙이까지 이른 시간까지를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배신행위에 전쟁의 실패를 통해 이스라엘자손들을 돌아오게 하셨다는 거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는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셔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엘선지자는 승리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왔음을 선언하면서 돌을 세워 기념하기를 ‘에벤에셀’이라고 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에벤에셀’의 의미는 ‘도움의 돌’이거든요 그런데 4:1절을 보세요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여기도 에벤에셀이 나오네요 똑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장소로 이스라엘자손들은 에벤에셀에 진쳤고 블레셋사람들은 아벡에 진을 쳤고 그런데 이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자손이 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지명 에벤에셀이지만 아벡전투에서는 지고 미스바전투에서는 승리했다는 거잖아요 아벡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법궤까지 앞세웠었는데도 졌다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전적 헌신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거거든요 하나님도 섬기면서 이방신을 섬기고 아스다롯을 섬기니 한마디로 전적헌신이 결여된 가운데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운 의식은 오히려 언약궤를 빼앗기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더라는 거 아닙니까?
과거에 도움의 돌 에벤에셀을 경험했었지만 현재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온전한 헌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의식만 있는 신앙에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시니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뭡니까? 과거에 자랑할 만한 내 신앙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요 지금이 중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만약 전적인 헌신이 이루어졌다면 에벤에셀이 에벤에셀이 되었을 겁니다. 미스바에서 이방신과 아스다롯을 제거하는 회개와 어린양을 하나 잡아서 번제로 드리는 전적 헌신에 9절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그리고 도움의 돌을 세우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에벤에셀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회개와 전적인 헌신만이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절을 볼까요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여기 ‘막으시매’ 히브리어 ‘왓테히’는 ‘대항해서 서 있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을 대항하여 서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 ‘야드 예흐와’ ‘여호와 손’이 서 있다는 것에 대해 블레셋 사람들은 큰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거든요 거기에 비해 14절에 ‘블레셋 사람들의 손’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허용하실 때만 힘을 쓸 수 있는 손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블레셋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손을 볼까요 삼상5:6절에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그 다음 절에선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왜 그렇습니까? 블레셋의 우상 다곤 신의 목을 쳐 머리를 동강내셨고 팔 다리를 절단 내셨거든요. 또 삼상5:9절에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이번엔 이스라엘 자기 백성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손은 뭘까요? 삼상12:15절에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그래서 아벡전투에서 하나님의 손이 저들을 치셨다는 거지요 그러나 회개하고 온전한 헌신의 삶을 보일 때 하나님의 손은 대적을 향해 서서 대적이 꼼짝 못하게 대적의 손이 무력해 지게 지켜내시는 것이니 우리 모두 이왕이면 하나님의 징계의 손이 아닌 도움의 손으로 인해 위기를 넘겨 도움의 돌 아벤에셀을 소유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프리카의 최 전초선교기지에서 봉사하고 있던 한 여선교사님이 위독한 병에 걸렸는데다가 한 달 동안 생활비도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매일 보리죽과 깡통에 든 분유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는 건데 이때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심했던 질병이 사라져 건강이 회복되었고 생활비도 다시 도착하여 식량을 구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거지요 그리고 여러 해 후 안식년으로 귀국한 이 여선교사님은 교회에서 당시 힘들었던 경험을 간증했는데  예배가 끝나자 의사인 성도가 그 질병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말하기를 '선교사님에게 생활비가 제때 왔더라면 선교사님은 오늘 살아서 저와 대화를 하지 못했을 뻔했을 겁니다. 이런 소화 장애 질병은 30일간 보리죽 처방을 해야 낫는 병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제야 여선교사님은 선교비가 오지 않게 하심으로 날 고치셨구나 하나님의 도움 에벤에셀의 역사가 지금도 회개와 온전한 헌신에 있음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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