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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6:1~12 “내 발이 평탄(베미쇼르)한 데 섰사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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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3-07 10:32    조회 6,567    댓글 0  
 
시26:1~12    “내 발이 평탄(베미쇼르)한 데 섰사오니 ”    2020.3.8.
본 시편은 표제에서 다윗의 시라고만 밝히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신앙인으로서 지금까지 부끄럽게 살지 않았는데 의외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악인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모두 다  아신다는 겁니다.

1절을 볼까요.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기 ‘나의 완전함’ 히브리어 ‘베툼미’는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한 완전함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완전함이라는 겁니다. 사실상 인간의 완전함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롬3:10절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잖아요 다윗이 오늘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를 완전하다고 여겨주신 겁니다. 이 사실을 신약성경에서 말씀하시지요. 롬3: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렇구나 다윗이 완전함에 행했다는 건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는 믿음으로 살았다는 거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다는 거였구나 그래서 다윗이 한 이야기가 뭡니까?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다’는 거잖아요 창6:9절에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여기 완전한 자 히브리어 ‘타밈’이거든요 행위가 완전해서가 아니지요
의인과 완전한 자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이 모든 조건이 뭡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들이잖아요 창17:1절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뭡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온전하게 믿음으로 따르는 삶을 살라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은 본문1절에서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였다’고 한 거지요
그러면서 2절에서 뭐랍니까?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여기 ‘살피시고’ ‘뻬하네니’는 ‘감찰하다’ 또는 ‘분변하다’거든요 우리 하나님이 지금 우한 코로나바이러스로 갑작스럽게 달라진 한국의 상황을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살피고 계실 겁니다. 기업이 붕괴되고 늘어가는 국민들의 불안감 북한 김여정의 막말과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백여 국가가 한국인 입국을 막고 이런 와중에도 정치권의 피 터지는 싸움들 거기에다가 교회의 예배는 중단되고 모르긴 해도 본문의 다윗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보다는 무너뜨리고자 하는 세력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있으면서도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하는지를 감찰하시고 내 뜻과 양심이 오직 믿음으로 행할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하여 주시라는 겁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 마음을 살피소서 할 수 있을까요? 다윗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작금의 사태가 내 뜻과 내 양심이 오직 믿음으로 살고자 단련하는 기회로 삼는 신앙의 모습이 하나님의 시험 테스트에서 그렇게 비쳐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로 4절을 볼까요.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우리말 성경에선 왜냐하면 이라는 이유접속사 ‘키’가 없지만 원문에는 있다는 거지요 내가 완전함에 행하고 믿음으로 행하는지 날 살펴주세요 ‘왜냐하면’ 주의 인자하심이 내 눈 앞에 있기 때문이라는 거거든요 뭡니까? 날 사랑하시는 주님의 인자를 내가 보고 있는데 내 어찌 완전함과 믿음으로 행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말이지요. 그러면서 다윗이 완전함에 행할 수 있는 있는 근거가 ‘주의 진리’ 가운데 행하는데 있다는 겁니다. 내 눈에 주의 사랑을 보고 내가 진리가운데 행하므로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았다는 거지요 유대인들의 ‘같이 앉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함께 한다는 거거든요 ‘같이 앉는다.’ 히브리어 ‘야솨브티’거든요 여기에 강한 부정사 ‘로’가 더하여 ‘로야솨브티’ 허망한 사람과 ‘절대로 같이 앉지 않는다.’는 거지요
여기 ‘허망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기대와 다르게 보람이 없고 허무하다’는 거고 신앙적 의미는 ‘생각과 행위가 전혀 무가치하다’거든요 이 허망한 사람에 대해 시53: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반면에 시편1편1절에 복 있는 사람이 누구냐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라는 거잖아요
또 다윗은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여기 ‘간사한 자’의 의미가 ‘숨기는 자’래요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자’랍니다. 그러니까 외식하는 자라는 거지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하고 동행 즉 교제해봐야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게 다윗의 신앙 모습이 아닙니까?
5절을 보시지요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지금 다윗이 미워하는 것이 ‘행악자의 집회’랍니다. 이 반대의 모임이 의인의 회중이잖아요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했다는 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거거든요 뭡니까? 하나님을 믿는 진리를 행하는 자로서 구별된 삶을 약속하는 거지요
이번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치사율은 높지 않지만 감염율은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이젠 전 세계를 두렵게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이 씻고 그러면서 감염예방을 하고 있습니다만 죄악의 바이러스는 마스크나 손 씻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잖아요. 죄악의 바이러스는 감염율도 높고 치사율도 백프로니까 정말 경계해서 우리가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되잖습니까? 그런데 이 구별이 뭘로 이루어지나요?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어내잖아요. 죄악의 전염율 사망의 점염율을 백 프로에서 영 프로 대로 만들잖아요. 벧전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6절과 7절을 볼까요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여기 손을 씻는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나가기 전에 정결예식을 말한다는 거거든요 옛날 제사장들이 제단을 두루 다니기 위해서 먼저 선행 되는 것이 성전 뜰에 있는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었다는 거거든요 그러므로 다윗의 손 씻음은 주의 제단을 두루 다닐 수 있음과 연결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간 다윗이 주의 제단에서 뭘 하겠답니까?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이는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는 거고 또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겠다.’는 건 하나님의 창조사역 하나님의 출애굽의 구원 역사 그리고 다윗 자신을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행하신 기이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고함으로서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거지요 이 모든 것이 예배잖아요 ‘다윗이 예배에 집중’하고 있구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예배자로서 자신이 서 있기 때문에 뭡니까? 이런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이 지키실 거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8절로 9절에 뭐랍니까?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주께서 계신 집을 사랑하고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거지요 우리는 하나님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잖아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사랑을 표현했다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원수들로 인한 자신의 곤고함보다도 하나님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사랑에 빠진 다윗을 보고 있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 사실이 우리에게 재확인이 되고 있다는 거지요 마22:37~3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하나님을 먼저 최 우선순위로 사랑하는 자 다윗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삶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10절로 12절까지 볼까요.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여기 ‘사악함’ 히브리어 ‘짐마’는 ‘매춘이 곁들인 우상숭배’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거든요 그리고 ‘뇌물’은 ‘재물에 대한 탐심’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성적욕구와 재물에 대한 욕심은 악한 자들 부추기는 대표적인 죄의 본능이라는 거 아닙니까?
본능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에 대해 표현한 것이 손이요 또 오른 손이라는 거지요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6절에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들어가는 다윗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하는 걸 보잖아요 우상을 숭배하는 자의 손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손이 다른 것은 더러움과 거룩함으로 나타난다는 거지요
그리고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겠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는 거잖아요 이런 다윗이 1절에서는 나는 완전함에 행했다고 지난 세월 동안의 삶과 현재의 삶에 대한 믿음의 의지를 이야기한 거라면 11절에서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앞으로도 믿음으로 살겠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뭡니까? 다윗은 과거 현재 미래까지 모두 하나님이 보시는 완전함 곧 뭡니까? 믿음으로 살겠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나를 속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라고 말합니다. ‘나를 속량하시고’ 히브리어 ‘페데니’는 구속, 구원, 대속이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있으면서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다 또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소유권을 이전하다는 의미거든요 신약시대에 우리 믿는 자들의 대체물이 예수 그리스도시잖아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죄인들인 우리들 대신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로 사신 거지요 그런데 여기 본문의 속량은 하나님의 백성다윗의 어려움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말하는 것이 뭡니까? 은혜를 베풀어 주시라는 거잖아요. 왜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버티고 견디게 하시잖아요. 이 은혜를 깨달은 이들은 교만할 수가 없지요
그러면서 마지막 절에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지요 자신이 평탄한데 섰다는 겁니다 ‘평탄’ ‘베미쇼르’ 문제해결 받은 완전한 성취의 자리를 의미하는 겁니다. 평탄한데가 어디라는 겁니까? 성도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송축하는 바로 그 예배의 자리가 ‘베미쇼르’ 평탄한 곳이라는 거지요 우리의 불안한 마음과 병든 육체와 전염병으로 흔들리는 사회가 있을 가장 안전한 ‘베미쇼르’ 평탄한 곳‘은 손을 씻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의 자리인 걸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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