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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22:9~18절 “예수님 오시기전 일천 년 전 다윗을 통해 우리구주 예수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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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0-01-31 19:22    조회 6,755    댓글 0  
 
시22:9~18절 “예수님 오시기전 일천 년 전 다윗을 통해 우리구주 예수님을 봅니다”2020.2.2.
 아이엘레트는 암사슴이라는 의미이고 솨아르는 새벽이란 의미로 이 둘이 합쳐져 ‘아엘렛샤할’ 새벽의 암사슴이라는 의미가 되었고 그 당시 ‘새벽의 암사슴’이라는 유행하고 있었던 노래에 본 시를 그 곡조에 붙여서 불렀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엘렛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했다는 거지요 이 시는 다윗의 무고한 고통을 통해 천 년 후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대로 예언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겁니다.

9절을 볼까요.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1절로 8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조롱 받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그 중에 ‘엘리엘리 라마 아브자타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다윗의 외침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브자타니’라는 히브리어를 ‘사박다니’라는 아람 말을 사용하셔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받음을 나타내셨다는 거였지요.
이번엔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다’ 여기 ‘모태’ 히브리어 ‘빼텐’은 ‘어미 뱃속의 태’거든요 어미 뱃속의 태로부터 나를 나오게 하신 분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주를 의지하게 하셨답니다.’ 사실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잖아요. 갓난아이의 철저한 의지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기 보다는 자신을 잉태하고 낳아준 엄마지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고백하였을까? ‘넌 버려진 존재 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야’ 오히려 엄마의 태속에서부터 젖 먹을 때부터 하나님의 손길에 보호 받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거지요 뭡니까? 그만큼 자신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거거든요
사실 젖을 먹는 갓난아이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어머니의 젖을 먹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이루지요 동방박사의 경배로 시작된 헤롯왕의 시기심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없애고자 했을 때 그 손길을 피하게 하사 애굽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하심이 뭐라는 겁니까?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성자 예수님의 성부를 향한 의지함 때문이라는 거 아닙니까? 인류의 죄를 지시고 하나님께로 버림받기를 위해 오셨지만 뭡니까? 예수님은 잉태와 젖 먹이 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시잖아요. 요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0절을 보세요.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9절을 반복하고 있음을 보지요 여기서 다윗은 잉태할 때부터 맡겨졌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엘리’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사이는 모태에서도 모태에서 나왔을 때도 하나님의 손에 있었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건 매우 친밀한 관계라는 거 아닙니까? 다윗은 이런 표현을 통해서 천 년 후 인간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잖아요. 하나님이 독생자로 오셔서 성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엘리’였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잉태하실 때는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뭘 말씀하셨나요? 눅1:35절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태어나서는 요? 눅2:10~11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렇습니다. 육신으로 오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이 잉태할 때도 태어나실 때에도 성부하나님은 ‘엘리’ ‘나의 하나님’이셨던 거지요

11절을 볼까요.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다윗은 환난이 가깝게 다가오지만 도울 자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를 멀리하지 마시라는 거거든요 여기 ‘환난’ 히브리어 ‘차라’가 가진 의미대로 ‘고통’ 또는 ‘괴로움’이 심각한 이유가 뭡니까? ‘가깝다’는 거지요 ‘케로바’라는 ‘가깝다’의 의미가 ‘바로 옆에’라는 거거든요 공간적으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정도로 환난이 심각했다는 겁니다.
이 구절을 칼빈이 주해하기를 ‘가깝게 느껴지는 환난과 멀리만 느껴지는 하나님 사이에서 절망적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뜨겁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말한 거지요 또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이 이토록 심각한 또 다른 이유가 뭐랍니까?
‘같은 공간에 붙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도울 자가 없다’는 거지요 여기서 다윗은 도울 자가 없지만 전혀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거거든요 왜입니까? 자신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121:1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에서 도움이 어디서 오는 지를 답하잖아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독생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이 되고자하심에 시시각각으로 이젠 옆에 붙어 있는 정도로 고난이 가깝게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만이 도움이시지만 하나님은 죄를 짊어지고 계신 예수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을 다윗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겁니다. 이 ‘멀리’ 히브리어 ‘티르하크’는 ‘아자브타니’ 버리심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잖아요. 더군다나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이 아닌 온 인류 이방인까지 포함하시는 죽음이시기 때문에 히브리어 ‘아자브타니’ 대신에 ‘아람어 ‘사박타니’를 사용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12절을 보세요.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많은 대적을 많은 황소로 표현하며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는 거고 강력함과 흉폭한 대적들을 바산의 힘센 소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나를 둘러쌌다는 겁니다.
여기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 못을 박으라고 외쳐대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마치 많은 황소 떼에 에워싸이시고 가히 폭력적이고 긍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바산의 소 같은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본다는 거지요 마27:23절에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그 다음 절 24절에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에 몸서리치지만 우리 예수님은 연약해서 이 에워쌈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칼을 휘둘러 예수님이 잡혀가는 가는 것을 막아보려고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쳐 떨어뜨렸을 때 마26:54절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그가 스스로 연약해진 자리에 들어서시는 이유가 뭡니까? 오직 성경의 성취를 위해서잖아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거지요 13절에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이 모습이 바로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못 박을 때 사람들의 모습을 어쩌면 이렇게도 잘 표현했을까 이처럼 예수님 오시기 천 년 전에 다윗은 이런 경험을 통해서 천 년 후 장차오실 그리스도가 겪을 일을 보이고 있었다는 겁니다.

14절을 볼까요.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여기 ‘물’ 히브리어 ‘마임’이거든요 몸속으로부터 쏟아졌답니다. 극심한 탈수로 인한 탈진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13절까지는 외부로부터 겪는 고통이었다면 본 절부터는 뭡니까? 자신 스스로가 겪는 고통을 말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예수님에게서 현실적으로 이 구절이 성취되지요 요19:34절에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28절에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왜요? 몸속으로부터 쏟아져 내린 물과 피 때문이지요.
그리고 ‘내 모든 뼈가 어그러졌다’답니다. 여기 뼈는 실제로 뼈를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다윗의 몸 전체가 어긋나버렸다는 거거든요 여기 ‘어긋나다’ 히브리어 ‘파레두’는 ‘박살이 나다’ ‘깨뜨려지다’인데 다윗이 몸으로 겪는 극심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밀납처럼 녹았답니다.’ 녹는다는 것은 형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의 환난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모두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 생명이 위태로움에 있지만 자신의 생명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9절과 10절에서 자신의 생명의 시작부터 태어나 양육되는 모든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말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윗은 지금 자기가 겪는 고통에서 타개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깝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는 거지요 그래요 맞습니다. 제일 먼저 순서가 문제가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 멀어졌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겪어야 하는 고통 모두가 죄로 인해 멀어진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잇게 하고 가깝게 하되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게끔 하는데 있었다는 거지요
15절을 보세요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뭡니까? 다윗의 고통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잖아요. 물과 피를 쏟아내 모든 힘이 빠진 육신과 질그릇처럼 깨어지는 육체 그리고 탈수로 인해 혀가 입천장에 붙고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죽음의 진토로 내려가시는 예수를 본다는 거지요 16절을 보시지요.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 말씀은 영락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입니다. 요19:18절에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그리고 17~18절을 볼까요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말씀이 천 년 후에 그대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요19:24절에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사람들이 하는 것 같지만 뭡니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겪은 이 험하디 험한 환난과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의 완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구나. 우리도 우리가 겪는 하나, 하나의 어려움에서 예수님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됨을 믿으며 우리도 다윗처럼 고난 자체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가까움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이 나를 향한 깊은 뜻이 있음을 기억하며 여전히 하나님께 신뢰를 보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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