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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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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3절 “‘아쉬레’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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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19-08-23 17:35    조회 6,416    댓글 0  
 
시1:1~3절  “‘아쉬레’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들”  2019.8.24.
1절을 볼까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 ‘복 있는 사람’에서 ‘복 있는’ 히브리어 ‘아쉬레’거든요 ‘아쉬레’는 ‘에세르’의 복수이니까 사실은 ‘복들’이지요 ‘에세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뭐냐 하면 ‘똑바로 걷다 또는 곧다’니까 복들이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거지요 또 ‘에세르’의 다른 의미는 ‘번영하다 또는 성공하다’니까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은 그 자체가 복들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을 번영하게 하고 성공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것이 복들임을 알아요, 몰라요? 모르지요
그래서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걷지 않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말하잖아요. 그 대표적인 세 가지가 뭐래요?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 그리고 오만한 자들의 앉는 자리랍니다. 여기 악인들의 ‘꾀’ 히브리어 ‘빠아차트’는 ‘모략’인데 주로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이루려는 인간의 계교를 말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생각이 앞서지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지요. 뭡니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라는 생각이잖아요. 이 말은 ‘이기는 놈이 장땡’이라는 말과 잘 통하지요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시편기자는 ‘악인들’이랍니다. 그러나 ‘아쉬레’ ‘복들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서 걷는다는 거지요 왜? 이루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는 또 다른 길이 있는데 죄인들의 길이라는 거지요 여기 ‘죄인들’ 히브리어 ‘하타임’은 ‘빗나간 사람들’ 또는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의미거든요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고 빗나가고 벗어난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없이 복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서 가는 사람을 하타임 빗나가고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아쉬레’ ‘복들이 있는’이라는 이 단어 자체가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걷는다는 거잖아요 무엇이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요?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는 것이지요. 무엇이 죄인가요?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벗어나고 빗나간 것이 죄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죄인은 도덕적인 죄를 범해서만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목표로 두지 않는 자가 죄인이고 이런 사람을 하타임 죄인이라고 부른다는 거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는 또 다른 길이 있는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거라는 겁니다. 여기 ‘오만한 자들’ 히브리어 ‘레침’은 그 원형이 ‘루츠’인데 이 의미가 ‘입을 삐쭉거리다’거든요 여기서 파생된 것이 조롱이라는 말이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걷는 자들을 비웃는다는 겁니다. ‘교회 간다고 떡이 나오나 돈이 생기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쉬레’ ‘복들이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해 입을 삐쭉거림이 어디서 시작이 되었나요? 사단이잖아요 그렇다면 ‘레침’ 오만한 자는 사실 누구의 하수인이라는 겁니까? 사단이지요. 사단은 사실 모든 걸 똑바로 보질 않고 좋은 말을 하지 않지요. 그래서 사람들로 감사를 잃어버리게 하고 도리어 불평하게 하고 비난하게 하잖아요. 구 한 말에 선교사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니까 그 당시 양반들이 하는 말이 ‘아니 왜 저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을 한다니 비싼 밥 먹고 되게 할 일이 없나보다 아니 저런 힘든 일은 하인이나 시키고 구경이나 하면 될 텐데’ 하면서 혀를 차며 비난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교회 가면 웬 떡이 생기지요 교회가면 돈보다 더 귀한 보물을 얻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 따라가면 영혼이 구원 받고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곁눈 안 팔고 ‘아쉬레’ 그분만을 목표로 걷다보면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는 복들로 채워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절을 볼까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기서 ‘토라’ 율법이 주는 기능이 하나님을 향하여 목표를 밝혀주기 때문에 ‘아쉬레’ 하나님을 향하여 걷게 한다는 거거든요 실제로 율법 ‘토라’는 화살이나 돌을 던져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킨다는 야라에서 온 말로 그 의미가 뭐냐 하면 ‘바른 방향을 지시하는 올바른 규범’이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율법’ ‘토라’를 모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지요. 축구선수들이 뜨거운 날씨에 전후반 90분을 뛰거든요 땀은 비 오듯 하고 숨은 가쁘게 헐떡이고 후반전이 끝나고 승부가 가려지지 않으면 연장전에 들어가는 데 이 연장전에서는 정신력으로 뛴답니다. 그런데 축구선수들이 그 누구도 고욕이고 지겹다 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 하는 말이 뭐냐 하면 ‘그냥 열심히 즐기도록 하겠다’는 거지요
‘아쉬레’ ‘복들이 있는’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걷는 것이 복들인데 이 방향을 알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평상시는 물론 지독히 힘들고 어려울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왜?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복들이 있는 자들은 세상 것에서 문제해결을 얻기 보다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마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축구선수들이 경기를 즐기는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즐겁게 살므로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진정한 쉼을 진정한 승리 진정한 영광 진정한 축복을 누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들이 ‘아쉬레’ 복들이 있는 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여기 ‘묵상’ 히브리어 ‘예흐게’는 ‘중얼거리다 또는 깊이 생각하다’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은 죽지 않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중얼거리고 묵상하고 내게 주신 말씀으로 삼으면 그대로 되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는 말도 성취하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뭐라고 합니까? ‘입바른 소리 하지 말라’고 또는 ‘말이 씨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겠어요? 겔12:25절에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3절을 볼까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아쉬레’ 하나님을 향하여 걷는 복들이 있는 사람은 무엇과 같아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랍니다. 여기 ‘심은’ 히브리어 ‘샤툴’은 ‘옮겨심긴’걸 의미하거든요 우리도 예전엔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향해 입을 삐쭉이던 자리에 앉아있었잖아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리는 빗나가고 벗어난 자들 ‘하타임’들이었지요 그랬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님이시지요 롬3: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 뭐예요? ‘하나님의 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롬11:17절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신분이 뭐예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 감람나무 불에 태울 장작으로 쓸 멸망당할 지옥 갈 우리들이었는데 참 감람나무의 가지들인 유대인들이 믿지 않아 꺾인 그 자리에 대신 돌 감람나무인 우리를 옮겨서 접을 붙였다는 거지요 그래서 참 감람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사는 ‘아쉬레’ ‘복들이 있는’자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시냇가에 심은’도 마찬가지라는 거잖아요 원래부터 시냇가에 있었던 나무가 아니라잖아요. ‘샤툴’ ‘옮겨심긴’ 나무라는 거지요 뭡니까? 복들이 있는 ‘아쉬레’가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복들이 있는 자들이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곧 ‘아쉬레 복들이 있는’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목표하고 걷는 거잖아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의 뿌리가 목표가 어디로 향하여 나아갑니까? 흐르는 물이 있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얻는 것 세 가지를 말씀하지요 첫째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다는 것과 둘째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 셋째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두 종류가 시내가 있다는 거거든요 하나는 간헐천으로 우기 때는 시내에 물이 흐르지만 건기 때는 물이 한 방울도 없는 마른 천이 되는 시내 ‘와디’가 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건기 때도 여전히 물이 흐르는 시내 ‘팔르게 마임’인데 오늘 본문에 시내는 ‘팔르게 마임’이라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팔르게 마임’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거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벗어나 곁길로 가면 우리는 ‘와디’를 만나게 되지만 우리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살면 그분은 ‘팔르게 마임’이 되기기 때문에 첫째 철을 따라 열매 맺고요 둘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요 셋째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팔르게 마임’ 마름이 없는 철철 흐르는 시냇물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뭐라고 하셨나요? 요7:37~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그래서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아쉬레’ ‘복들이 있는’자들이 되어 우리 행할 길이 환해지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어 만사형통이 따라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팔르게 마임’이 되시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만 목표로 향하여 걷고 또 걸어가는 ‘아쉬레’ ‘복들이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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