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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9:14~29절 “예수 소망 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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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5-11 00:00    조회 5,471    댓글 0  
 
마가복음9:14~29절          “예수 소망 둔 아버지”         2013. 5. 12
자식의 영적상태를 점검하라
여기 본문에 자식의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한 아버지를 봅니다.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 이 아이가 예수 만나야 살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귀신에 붙들려 살 수밖에 없음을 아이에게서 봅니다.
19절에 예수님도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을 끊어내고 생명 있는 삶을 살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자신밖에 없으심을 아시니까 내게로 데려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1서5: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자식의 영적 상태를 보자 아들 예수가 그 속에 계신지 안 계신지 아니 계시다면 큰일이다 죽어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아이처럼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죽어 있는 것이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라면 이도 문제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계3:16절에 토하여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를 보자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계셔야할 예수님은 안 보이시고 제자들이 있고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능력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사람만 모인 곳에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엇만 있습니까?
사람의 소리만 있습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옳고 그름을 다투고 있는 변론말싸움만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뭡니까? 예수 계신 곳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빈들이었지만 그곳에 예수 계시까 아무리 큰 대형 음식점도 할 수 없는 오천 명, 사천 명이 먹을 수 있는 풍성한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밤 새 수고해도 거둔 것이 없는 지쳐버린 삶에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그리고 거둘 수 있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계신 곳은 언제나 어둠과 저주가 물러가고 사람들 심령마다 축제와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에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에 진정으로 드려지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없는 예배, 기도, 찬양, 모임에 많은 소리 사람의 소리만 될 뿐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살아야 자식도 산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형편이 어려워지자 구조조정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래서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이 나이에 딱히 벌어놓은 것도 없는데 실직이 된다면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 공부며 뒷바라지가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도 기도합니다.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 도와주시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와는 다르게 우려한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실직이 된 것입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버지 교회 가자고 밖에서 기다립니다. 아버지는 밖에서 기다리는 식구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없어, 그래서 난 이제부턴 교회 나가지 않을 거야” 라고 선언합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교회 가야되지 않겠느냐고 하나님이 화를 복으로 바꾸실 것이라고 설득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예 거리로 나가버렸습니다. 그 거리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전도 나온 청년이 마음이 상한 아버지에게 전도지를 내밉니다. 마음이 몹시 상한 아버지는 “하나님은 없어”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빠른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계속 따라오면서 “아니에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아저씨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세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도 청년이 전해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 겁니다. “아니예요, 하나님 살아계셔요, 하나님이 아저씨와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세요” 귀를 막아도 들리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들리고 아버지는 마침내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은 어느 덧 울음으로 울음은 회개로 바뀌고 나중엔 통곡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아버지의 마음은 더 이상 이전의 하나님을 원망하던 모습은 없고 왜 그런지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이 평안합니다. 원망했었는데 감사하고 절망했었는데 기뻐하고 찬양하며 큰 믿음이 생겼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린 얼마든지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없이 변론하는 지식적 신앙에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엔 당연히 변화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얼마든지 우리도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능력도 구원도 없습니다. 예수 안 계시니까 예배와 찬양 그리고 기도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여 본을 보이라!
여기 본문의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도 마찬가집니다. 자식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게끔 아버지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습니까?
엘리제사장에게는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도 동침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엘리는 간단한 충고만 전할 뿐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들이 이런 정도니 블레셋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결국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 하나님의 법궤 옆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도 아흔여덟의 나이로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 비느하스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지금 막 해산하는 비느하스의 아내도 갑작스럽게 해산하여 죽으면서 아들을 나았을 때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입니다. 내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면 나도 죽고 자식도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향합니다. 불과 나무를 들고 모리아산을 올라갑니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어봅니다. “아버지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은 있는데 번제물은 없으니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창22: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 그리고선 모리아 산상에선 이삭을 결박합니다. 그리고 칼을 집어 들어 높이 올립니다. 아들 이삭은 이 순간에 나 죽는구나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고 믿었을까요? 나 죽는다고 생각했었을 지라도 무엇입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수풀에 뿔 걸린 수양을 대신 번제물로 드리면서 아들 이삭의 마음엔 아버지가 말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는 그 신앙 은 제대로 심어졌으리라고 믿습니다.
전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이 나가더라고 기뻐하면서 예수님께 보고했던 제자들이었는데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데리고 온 귀신들린 아이를 만나기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뭐라했습니까? 안 됩니다.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니요 그렇게 마시옵소서 아주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은 불신앙 속에서 예전처럼 귀신을 몰아내기란 어렵지요.
오늘 본문의 아이의 아버지도 아이를 제대로 인도하기 위해서불신앙을 청산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본문 21~2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 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버진 제자들이 실패한 것을 기억하면서 마음에 고통이 따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도와주세요. 예수님은 고통 받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그 아버지에게 있는 믿음을 이끌어내십니다. 예수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거짓으로 믿는 척 한 것이 아니라 이번엔 내가 믿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을 덧붙였습니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세요.” 이런 대답에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아이를 잡고 있는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귀신이 아이로 심하게 소리를 지르게 하면서 아이에게서 떠나갔고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을 때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고 아이는 일어났습니다.
자식에 대한 영적 고민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소원이 아버지 자신이 가진 의심 없는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세 번 운답니다. 첫 번 우는 것은 천국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울고요 두 번 우는 것은 이렇게 좋은 곳인 줄을 진작 알았더라면 하루라도 빨리 믿을 것을 하면서 울고 세 번 우는 것은 온 가족을 생각하면서 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난 이렇게 좋은 곳에 와 있는데 아직도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않는 식구들 때문에 운답니다. 어제 예수로교회 임직식이 있었습니다. 임직식이 축도로 모든 마무리가 지는 듯싶은 바로 그 순간에 제 뒤에서 쿵 소리가 들립니다. 평소에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다니시던 그 교회 장로님이 두 번째 쓰러지신 것입니다. 쓰러진 그 장로님은 피부비뇨기과 의사라고 하시던데 그래서 몸 관리를 누구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잘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도 쓰러지신 것입니다. 마침 교인들 중에 119요원들도 세 분 계셔서 인공호흡도 하고 심장충격도 가하고 그렇게 10여분 응급하는 사이에 119에서 와서 일산 백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기회는 이 때입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예수님 하나 덧 붙이십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없다. 사58:6절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흉악한 결박이 풀어진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자녀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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