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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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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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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7~13절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를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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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12-08 00:00    조회 5,452    댓글 0  
 
마가복음6:7~13절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를 가지라”     2012.12.9
미국 이민교회를 어느 정도 부흥으로 이끈 목사님이 이제는 우리 교회도 미국의 교회당을 빌려서 사용하지 말고 우리 교회당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성도들의 반응을 물으니 모두가 좋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온 성도들이 건축헌금을 시작하였고 예배당 건축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커졌고 나중엔 건축비가 오억 정도 더 들어가게 생긴 것입니다. 이민교회로서 적지 않은 이 돈은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은행융자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온 교회가 금식도 하고 합심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상환날짜는 점차 다가오고 부도가 날 지경이 된 것입니다. 강대상에서의 목사님의 기도는 몸부림에 가까웠고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큰 건물도 화려한 예배당도 아니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너란다.” 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했는가 또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거지요 무슨 일을 할 것이냐 보다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냐를 더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고 권능을 주셨고 여섯 팀으로 나눠서 둘씩 짝을 지워서 세상으로 내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을 내보내시는 예수님은 저들에게서 큰일이나 업적을 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셨을까요?
지금 전도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이 내가 누구냐를 알기 원하셨을 것입니다. 저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예수님을 알지 몰랐을 때 저들은 일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내 가족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이 어부들이었으니까 저들의 주된 생각은 부지런히 움직여서 얼마나 많이 고기를 잡을 것인가 일과 업적에 대한 생각이 주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자신들이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내가 누구냐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질그릇같은 존재입니다. 쉽게 깨지기 쉬운 그런 존재입니다. 엊그제 금요일에 내린 눈을 쓸러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지를 않자 어머니가 나가 보니 글쎄 마당에 숨이 멎은 채로 쓰러져 있더라는 겁니다. 또 30대 청년이 빙판에 넘어졌는데 바로 죽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참 깨어지기 쉬운 존재 너무나 연약한 그릇이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하나하나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계신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시8:4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다윗은 내가 도대체 누군데 하나님께서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실까 라고 찬송으로 감격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화성 탐사로봇인 큐리오시티가 화성을 촬영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사람이 없고 나무가 없고 풀이 없고 새가 없어서 그렇지 분명 광야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멩이가 있고 산이 있고 하늘에 태양이 있고 구름이 있습니다. 이 화성 역시 하나님이 만드신 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넓으신 우주전역을 만드셨고 지금도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바쁘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산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20대엔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걱정하지만 40대가 되면 남에 대해 전혀 신경을 끄고 살아간답니다. 그러다가 60대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잊혀 진 존재란 사실을 깨닫게 된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49:15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절에선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예수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가 누구냐 우리가 누굽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일이나 그에 따른 결과를 생각하기 전에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 제자끼리만 예수님이 하시던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보냄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여기서 가지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 없이 우리끼리 뭘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일까 아니면 비록 몸은 떠나 있어도 항상 어디서든지 우리는 주 안에 있다 라는 생각에서 오는 평안함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12절로 13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는 말씀에서 “우리는 주 안에 있다.” 라는 생각이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보다 더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 머레이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그토록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해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떠나서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1:1절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에베소성도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예수님 얼굴을 그릴 때 까맣게 색칠을 한답니다. 반면 백인들은 금발의 백인 미남으로, 동양인들은 노랗게 색을 칠합니다. 인종은 달라도 예수님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모든 이들 이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까지 내려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얼굴 색깔을 입으시고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우리를 주 안에 있게 하시기 위해서 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주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평안합니다.
스티브브라운의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이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최근에 뉴욕을 방문했다가 올랜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때 스티브브라운은 섬뜩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데 폭우를 동반한 엄청난 천둥과 번개가 쏟아지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스티브브라운의 옆자리에 젊은 엄마가 앉아 있었고 그녀는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었습니다. 스티브브라운은 몹시 무서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습니다. 비행 중에 그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 어린아이였습니다. 아이는 그런 상황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바빴습니다. 함께 장난을 치는가 하면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릴 때도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폭풍우로 기체가 가장 심하게 요동치던 그 시각에 엄마의 가슴에 안겨 아주 평안하게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 안에 있다면 이래야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주신 것은 귀신 쫓는 권능이었습니다. 아무리 부자도 두 켤레의 신발을 함께 신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한 켤레의 신발 그리고 한 벌의 옷 외에 전대도 양식도 배낭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셨고 단지 가져가라고 하신 품목은 하나 지팡이였습니다. 지팡이란 절대 의지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믿고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도구가 지팡입니다. 그 지팡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항상 눈이 지팡이를 잡은 손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부분입니다.
우리의 손에 잡힌 지팡이에서 믿음의 어떤 부분을 보실 수 있습니까?  나를 부르시고 나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갈3:26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4절에선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 때문에 의롭게 되었습니다. 13절에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저주를 대신 받으심으로 죄로 말미암은 저주에서 우리가 속량되었습니다.
우리가 손에 잡은 그 믿음의 지팡이로 인해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갈3:27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합해지게 되었고 그리스도와 합해졌다는 사실을 믿는 자는 반드시 세례를 받아서 그 사실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으로 나타내야 하고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그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볼 때 예전의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나를 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세상에서 사람들에 보여져야 할 것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배낭도 신발도 옷도 전대로 아닌 다닐 때마다 손에 잡은 지팡이를 보면서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주 안에서 의롭다 나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주 안에서 저주로부터 속량되었다. 나는 주 안에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 내게 주 안에서 귀신을 쫓아낼 권능을 받았다.
우리 또한 마찬가질 것입니다. 세상에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나는 주의 이름으로 사는 주님의 관심과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항상 우리는 주 안에 있다는 것 죄와 저주에서 속량된 하나님의 자녀이며 세상을 이길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가 먼저 보여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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