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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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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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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0-02-06 00:00    조회 4,812    댓글 0  
 
사도행전2:43~47절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     2010. 2. 7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 세상은 매우 성적으로 타락하고 부도덕하고 악하고 소망이 없이 근심하며 염려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모든 사회와 인간의 문제였습니다.
학문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헬라의 철학은 그 당시 사람들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법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법은 지금 모든 나라의 법이 기초로 할 만큼 법도 분명히 발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타락하고 부도덕하고 악하고 소망이 없이 근심과 염려 가운데 있었습니다.
로마의 치안유지가 부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동서에 걸친 대제국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놀라운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런 문제는 좀처럼 잘 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오순절 날에 저들에게 교회라고 불리는 모임이 나타났습니다. 교회는 성령이 강림하심과 함께 시작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계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들은 기도하며 기다렸을 뿐인데 저들에게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권세 있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의 일이었습니다.
타락하고 부도덕하고 악하고 소망이 없이 세상근심과 염려로 가득했던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법으로 잘된 통치로 놀라운 인간의 철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일들이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교회라는 모임에서 타락이 사라지고 악한 것이 사라지고 절망이 사라지고 세상근심과 염려가 물러가고 소망의 모습들이 사람들에게서 보여 지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많은 지식도 얻지만 사실은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더 나쁘게 하고 탈선을 부추기고 감성을 무디게 하고 우리의 지각을 어둡게 합니다.
역사 속에 사라져간 많은 제국들이 무너진 것은 정치를 못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묵인과 수용이 나라와 인간 모두를 몰락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분을 지난 주 만났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함경도에서 여섯 명의 식구들과 함께 피난을 나오다가 아버지가 잘 알고 있는 조용한 마을을 찾았답니다. 그런데 그곳은 장티푸스로 인하여 마을 전체가 죽음의 마을로 변해 있었고 그래도 하루를 묵고 가려다가 온 식구가 장티푸스에 걸려서 아버지와 자신만 살아남게 되고 또 다시 남하하여 포천에 자리 잡게 되었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자신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되었는데 어느 미군을 알게 되어 그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돈도 잘 벌고 잘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때 규모 있게 생활하지 못하고 술하고 여자에게 빠져 생활하다 보니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지금은 아내도 먼저 가고 두 딸도 먼저 가고 자신만이 혼자 남아 수급자로 살아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개인을 몰락하게 하는 것도 역시 타락하게 하는 것들을 가까이할 때 오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오직 육신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조금도 영혼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잠29: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달라진 인간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교제합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된 것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내어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었지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저들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모여들었고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과 인간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 달라지는 것을 볼 때  오직 성령의 임하심만이 우리에게 소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시작된 초대교회의 교제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교제라는 말을 절대로 사교적 측면에서 이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과 악수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만날 때 악수 하고 헤어질 때 악수하는 이것은 우애요 친절이요 즐거움 정도입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교제는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연합하는 것입니다.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젊은 부자 청년에게 이 관계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요청을 순종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교제는 단순히 악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 세상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겠고 나와 복음 때문에 핍박도 겸하여 받을 것이며 내세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이나 전토를 백배 얻는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마는 자매와 모친과 자식을 백배나 얻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매와 모친과 자식을 백배나 얻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질 때 교회 안에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한 가족이 되는 것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것을 교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매가 되고 모친이 되고 자식이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초대교회의 진정한 교제처럼 우리 모두는 자매요 형제요 아버지요 어머니요 자식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한 가족이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의 핍박을 피해서 믿는 자들이 카타콤이라는 지하 무덤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너무나 핍박이 심해 어디서 모일 곳이 없었기 때문에 무덤이라도 모일 수만 있다면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새로 맺은 자매였고 형제였고 부모였으며 자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 본문이 말씀하는 교제이고 이런 교제를 바탕으로 카타콤의 무덤 교회는 점점 확장되어 갔던 것입니다.
이북의 지하교회에 이런 모습의 교제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의 피로 된 한 가족일 것입니다.
진리를 믿으며 주님을 알고 삶을 변화시키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누구든지 우리교회에서 이런 모습이 보여 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한 가족입니다. 아버지요 어머니요 자매요 형제요 자식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내세에는 영생이 약속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일3:14절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사도는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예루살렘교회에서 진정한 교제를 볼 수 있었고 이들에게서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세상의 이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예수 안에서는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4~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재산들을 함께 하나의 금고에 넣어두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새 가족의 아픔과 어려움을 고통 가운데 두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가족을 위해 저들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사제를 털어서 사랑실천 후원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와 낮은 자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피부색이 달라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벧전2: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만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이런 본성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는데 이제 예수 안에서 다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전에는 긍휼 없이 망할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구원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자격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의 새 가족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아픔은 곧 우리의 아픔입니다.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곧 우리의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을 바로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다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을 보니 사망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봅니다.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아멘? 이렇게 불러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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