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7:37~39절 “우리 심령을 메마르지 않도록 늘 적셔주시는 성령” 2023.9.3.
이스라엘 갈릴리 바다를 지나 가이사랴빌립보 지역에 도착하면 보이는 높은 산이 헐몬산인데 꼭대기에는 흰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이 헐몰산에서 흐르는 물이 세 방향에서 갈릴리바다로 들어오는데 그래서 갈릴리바다가 항상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37절을 보시지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여기서 소개하는 명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사십 년 광야를 지나올 때 장막을 치고 살아왔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서 장막절이라고 하는데 장막절이 되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나가서 초막을 짓고 이 장막절을 기념하는데서 초막절이라고도 불렀다는 거고 이 초막절을 지키는 때가 모든 곡식과 열매를 거두어 창고에 들인 후에 드려지는 절기라서 수장절이라고도 불렀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명절 끝날 큰 날>이란 어떤 의미일까? 초막절은 이레 동안 지속되는데 끝 날이라니까 이레째 되는 날이고 이 날 오후 해질녘부터 8일째가 시작되는데 이날 이스라엘백성들이 성회로 모이는데 이 날을 큰 날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 이레 동안 매일같이 한 일이 뭐냐 하면 제사장들이 한 무리를 이끌고 새벽녘에 실로암 못으로 가서 황금주전자에 물을 가득 떠서 아침 제사를 드릴 때 떠온 물을 제단 서편 굴뚝에 붓게 되면 성전의 성가대원들이 이때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거지요 그러나 팔 일째 되는 큰 날은 물 떠오는 일이 없이 성회로 모였다는 거고 바로 이때 예수님이 성회로 모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외치셨다는 거 아닙니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신 건데 왜 하필 큰 날 말씀하신 걸까요? 여기 <큰 날> 헬라어 <메갈레>는 <크다>란 의미만이 아니라 <위대한> 또는 <중요한>이란 의미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선포역시 죄로 말미암아 영적 목마른 모든 인생에게 참으로 크고, 위대하고, 중요한 선언임을 나타내 준다는 거지요 너무도 중요한 선언이기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셨고 <서서> 헬라어 <헤이스테케이> 외치셨다는 거 아닙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은 초막절 이레 동안 매일처럼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으로 가서 물을 떠다가 제단에 붓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시므로 그 물을 마시고 사십 년을 기적처럼 살아왔던 것을 추억해 낼 수 있었다는 거지요 이 때 예수님이 자리에 일어나서 그 반석이 누구인지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다는 거거든요 고전10: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여기 <누구든지> 헬라어 <티스>는 <어떤사람이라도> 또는 <아무라도>니까 예수님께로 물을 마시기 위해 오는 모든 목마른 자는 차별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목마르거든> 헬라어 <에안 딥사>는 <만일 갈증을 느끼거든>인데 이 목마름은 육체적 갈증이 아닌 구원에 대한 갈급함이라는 거거든요 그렇습니다. 구원에 대한 갈급함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신 거지요 그러므로 요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그리고 영생하게 하는 물이 되신다는 거 아닙니까? 요6:35절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구원에 대한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뭐냐 하면 <와서> 헬라어 <에르케스토>와 <마시라> 헬라어 <피네토> 이 두 단어 모두 현재명령형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뭡니까? 모든 시대를 따라 그리고 지금 누구라도 와서 생수를 마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을 얻으라고 초청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영적갈증을 해결할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길 외에는 없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도 행사도 영적 갈증에서 충분히 시원하게 하시는 예수님이 중심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마시라> 헬라어 <피네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38절을 볼까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여기 <나를 믿는 자는> 헬라어 <호 피스튜온, 믿는 자는/ 에이스 에메, 나를>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거지요 이 말씀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슥14:8절에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여기 그 날은 언제를 말하는 걸까요? 슥14:7절에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여기 한 날에 대해 드디어 소개하기를 요1:5절에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리고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되게 하시니 정말로 큰 권세인데 어둠에 찬 세상에 빛으로 오신 때 스가랴선지자가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 세계에 미칠 것을 예언했는데 그 한 날이라 예언했던 스가랴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지금 초막절 절기 끝날 큰 날에 일어서서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39절에 상반절에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은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의 배에서 성령의 역사가 강같이 흐르는 일이 일어난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 <배> 헬라어 <코일리아>는 <인간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말하거든요 그런데 헬라철학에서는 이 <코일리아> <배>를 욕망의 원천으로 봤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바뀔 수 없는 배 속에 깊이 감춰진 이 욕망의 원천이 성령으로 정결하게 되고 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겁니다. 또 <흘러나리라> 헬라어 <류수신>은 <넘쳐흐르다>인데 우리의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젠 세상 욕망이 아니라 성령께서 넘쳐흐른다는 겁니다. 요14:16~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렇듯 믿는 자가 받을 성령에 대해 예수님은 행1:4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던 120명의 성도들 행2: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니까 생수는 뭘 말씀하신 거였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이었습니다. 이 성령이 스가랴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내게 강같이 흐르게 되면 롬8: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4절에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8: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8: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기서 뭘 깨닫습니까? 성령께서 믿는 성도들의 모든 영적 갈증을 해결 해 주신다는 것이니 우리 모두 내 안에 성령이 역사하심을 믿으며 성령의 감동대로 순종하며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9절 가로부분 말씀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영광을 받는다> 헬라어 <독사조>는 <명성을 얻는다> <명예로운 지위를 굳힌다>거든요 그러나 여기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는 놀랍게도 정 반대의 의미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뭡니까? 우리의 대속을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지극히 높으신 영광을 받기 위한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빌2:8~10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그렇다면 39절의 가로부분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 성회의 날 큰 날 일어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외치셨을 때는 아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전이라서 성령이 아직 믿는 자에게 임하시기 전이었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는 어떻습니까? 고전6: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배> <코일리아> 예전에 이 깊은 곳에 욕망의 원천이 가득했었는데 예수 믿고 코일리아 우리 배에 성령께서 욕망의 원천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대신하시는 성령의 전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울이란 청년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욕망의 원천이었던 그 배에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욕망의 원천이 아닌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성령의 역사로 사울이 바울되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순교자가 되듯 우리 또한 원천적으로 욕망에서 성령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뀌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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