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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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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7-09-16 00:00    조회 5,589    댓글 0  
 
마태복음22:23~33절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2007. 9. 16
예수님 당시에 두 집단이 만나기만 하면 다툼니다. 이런 원수지간이 없습니다. 이 두 집단의 이름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인데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지파는 부활논쟁으로 끊임없이 다퉜습니다.
그러던 차에 사두개인들은 능력 있는 선지자로 사람들 사이에 유명해진 예수님께 와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24~27절입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이 말씀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말하기를 예수님! 모세가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형이 후손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해서 상속자를 세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칠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어 상속자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모세의 법대로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동생이 역시 상속자가 없이 죽게 되어 그 밑의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를 들고 이런 식으로 일곱째까지 장가들게 되었고 일곱째도 죽었고 최후에는 형수마저 죽었는데 부활 때 이 형수는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참으로 유치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는 바리새파와 싸울 때 빈정거리기 위하여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빈정거리며 말하기를 부활을 믿는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아 그 형수가 일곱 형제와 다 살아보았으니 과연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된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부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두개인들에게 29~3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의 말씀인즉 부활 때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이성적 감정이 아닌 중성적인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가 기록한 오경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이 모세가 기록한 그 성경도 그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능력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저들이 믿는 모세가 기록한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31~32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시니”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믿는 모세에게 불붙은 가시덤불에서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셨을 때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바로 그 말씀을 하시면서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파 사람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다 죽은 사람이고 역사에서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셔야 옳았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입니다.
아니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이 땅 위에 살고 있었을 때 나는 그들의 하나님 이었다.”라고 말씀하셨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현재 자신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덧붙이시기를 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입니까?
산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그들은 살아있습니다. 그들은 주 안에서 살아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으로 오실 때 우리 주 안에 있는 모든 믿음의 후손들은 천국에서부터 오는 산 영혼과 우리의 잠자는 죽은 육체가 연합하여 홀연히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사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비록 역사에서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산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불의와 부정으로 인하여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이 이 세상에서 죽음과 함께 끝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참으로 놀랍게도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제사장으로 다리 역할을 하는 귀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을 부정과 불의의 온상으로 만들어 온갖 부당이익을 취해서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이들 때문에 만민이 기도하여할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이들이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부활을 믿고 싶었겠습니까? 아마도 이들은 죽고 나면 끝이지 부활은 무슨 부활 이라고 자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히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일부 종교인들은 종교인들이면서 짓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부활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벧후2:20절입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절입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절입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우리가 예수 믿는다면서 지금 이처럼 죄 가운데 있다면 그래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사두개인처럼 부활을 부정하고 싶을 것입니다. 죽음으로 그 끝이기를 자위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분명 드러내고 싶지 않은 더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더러움 때문에 당할 수치와 부끄러움이 우리들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냥 덮어두고 싶고 그냥 끝내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거할 부활을 믿기를 주저할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죽음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 없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보혈을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서는 부활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지나고 난 우리의 삶은 수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리기 위하여 죽음이 끝이라고 그 죽음으로 덮으려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우리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 수치 투성이인 우리가 가리고 싶은 이것들을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덮기를 원할 때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죽은 자는 죄와 허물을 죽음으로 덮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산자는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산자는 죄와 허물을 보혈로 덮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산자로 서게 되며 이런 부활을 믿는 사람만을 하나님이 산 자로 불러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삶은 세상에서도 우리 하나님이 구별하여 지켜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히9:13~14절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보혈을 지나
보혈을 지나 하나님 앞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네 X 2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시네 존귀한 주 보혈이 내 영을 새롭게 하네 X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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