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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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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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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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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7-09-08 00:00    조회 5,457    댓글 0  
 
마태복음22:17~22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2007. 9. 9
예수님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이나 제물을 사는 돈은 모두 유대돈으로 하였기 때문에 성전에는 로마돈을 유대돈으로 바꾸어주고 그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바꾼 유대돈으로 헌금도 드리고 제물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 끼리 사용하는 돈은 유대돈으로 따로 있고 그 당시 사회생활에 쓰여 지는 돈은 모두 로마돈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회에서 사용하는 로마돈을 성전에 헌금하는데 사용할 수 없고 제물을 사는데도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고 반대로 헤롯당원들은 로마돈을 사용하면 어떻겠느냐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일에도 바리새인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반대로 헤롯당원들은 당연히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정치적으로 이미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듯이 정치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이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묻습니다. 17절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하니”
분명히 서로 다른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넘어뜨리려고 예수님에게 온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서는 안 된다는 쪽이고 헤롯당원들은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와서 참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여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세금을 바치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지금 예수님은 바치라고 하시든지 안 바쳐도 된다든지 두 가지 중 한 대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에게 걸리든지 헤롯당원들에게 걸리든지 꼼짝없이 걸릴 것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온 것입니다.
만일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유대인을 위하여 왕으로 왔다면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느냐 당신은 사실적으로 참되지 않다 당신은 사실적으로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도 역시 사람을 외모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요 유대인을 이롭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라고 해서 모든 유대인들의 지탄을 받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반대로 만일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원들이 당국에 고발하기를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왔다는 이가 자국민을 상대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선동하고 다닌다 면서 충분히 로마황제 가이사를 대적하는 인물로 유대총독에게 고발할 참이었습니다.
교묘하지요 간악한 인간들이 성자 하나님을 이렇게도 못하고 저렇게도 할 수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 만들어서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예로 안식일에는 바늘에 실 꿰는 일도 일이니 안 된다고 할 정도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하나님이 이 백성을 사랑하여 자신들 앞에 서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을 몰라보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말씀의 자신이신 예수님을 죽이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모르고 있었고 반대로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2:25절입니다.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예수님 어떤 분이시라고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모두 아시는 분 아멘?
요16:30절입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제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요?
세상의 모든 것과 인간 개개인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아멘?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요?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분 아멘? 할렐루야!
예수님의 출처가 어디로부터라고요? 하나님
요1: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
그런데 요1:14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출처가 어디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을 보니 독생하신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요1:2절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없이 이 세상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으신데 그런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것을 모를 이가 없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의 열심을 아시고 우리의 수고를 아시고 우리의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소원을 아시고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아멘?
아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우리 예수님은 그 해결책까지 가지고 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22절입니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든지 바치지 않아도 된다든지 두 가지 대답밖에는 없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답이 있었습니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이 돈에 누구의 형상이 새겨져 있느냐 가이사입니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고 말씀하심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국가에 그 의무를 다 해야 함을 가르치면서도 꼼짝없이 걸릴 것이라는 저들의 올무를 비켜 나가시는 예수님의 지혜를 보게 됩니다. 그가 누구십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아멘? 이 말씀은 영적인 측면에서 역시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왕권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왕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전혀 생각지 않았던 예수님의 놀랍기만 한 대답을 들으면서 저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악한 길을 다시 걷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 말씀에서 우리 마음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욕심을 다스리라는 영적인 교훈을 배웁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 욕심을 내므로 빚어지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면서 하나님은 계명으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출20:17절입니다.
열 번째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 이웃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우리 이웃을 슬프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서 십의 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열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만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아예 십분의 일을 떼고 주시지 않고 열 모두를 주시면서 하나를 드리게 하시므로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욕심이 부른 비극들은 자신과 이웃을 망하게 하는 것으로 그 결말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칠 수 있는 욕심을 다스리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이라는 도금된 은전이 가지고 능력은 가진 사람을 즐겁게 하고 그것을 많이 가질수록 그 힘은 놀랍습니다.
은이 입혀지고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서 데나리온이 되기 전에는 아무짝에도 누구도 관심 주지 않는 쇠 조각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쇠 조각에 은이 입혀지고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지는 순간 화폐가 되어 사람을 즐겁게하고 많이 가지면 힘을 내는 것으로 변하여졌습니다.
우리도 사실은 쇠 조각처럼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의 옷으로 입혀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지고 난 후부터는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쇠 조각이 아닙니다.
갈3:27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죄악 된 쇠 조각 같은 우리가 단지 예수님과 합하기 위해 즉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그리스도로 도금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멘?
도금 된 우리에게 이제 누가 보여 집니까?
갈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멘? 내게서 나의 형상이 아닌 다른 형상 즉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러므로 쇠조각이 능력을 발하는 데나리온이 된 것처럼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님으로 능력을 발하되 많이 발하는 사람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더 이상 나약한 쇠 조각이 아니라 주님의 보화로 다시 탄생되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인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셋도 아니고 백, 천도 아닙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우주적 광대함이 산출됩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합해지고 일체감을 갖게 되면 덧셈이나 곱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제3의 힘, 기적과도 같은 괴력이 창조됩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니까 옥 속에 지진이 나고 빌립보 교회가 탄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치료하시니까 눈먼 자도 죽은 자도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도금 되어진 우리에게도 이런 능력들이 나타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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