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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1:1~9절 “우린 신적권위를 부여 받은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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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작성일 21-11-12 15:11    조회 2,399    댓글 0  
 
딛1:1~9절  “우린 신적권위를 부여 받은 하나님의 노예입니다”  2021.11.14.
사도바울이 A.D 61~63 로마의 투옥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곤 곧 바로 스페인을 포함한 제 4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건데 이때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마케도냐로 떠났었거든요 그리고 여기 마케도냐에서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 원전에선 ‘프로스 티톤’인데 ‘디도에게’라는 제목이었다는 거지요 이를 영어 성경과 영어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우리 성경은 ‘디도서’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겁니다.

1~3절을 볼까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잖아요 ‘하나님의 종’ 헬라어 ‘둘로스 데우’는 ‘하나님의 노예’라는 말인데 뭡니까? 하나는 ‘하나님에 대해 절대적 순종과 겸손으로 받는다는 거’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맡은 자’라는 거지요
자신이 둘로스 노예지만 어떤 노예라는 건가요?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는 건데 그렇다면 뭡니까? ‘신적권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바울의 자기소개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노예’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적권위를 부여하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지요 여기 ‘사도’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예수그리스도께 전권을 위임받고 파송 된 자’라는 의미거든요 그렇다면 바울은 언제 예수그리스도께 전권을 위임받고 파송 되었나요?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부름을 받았고’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이유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 하나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위해서’라는 건데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란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직 택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하신 구원에 합당한 믿음이라는 걸 밝히는 거라는 겁니다. 또 하나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이유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경건’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것’이고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진리의 지식은 하나님 닮은 인격인 경건할 때 빛을 발한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이유 마지막 하나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의 소망을 전해야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영생의 소망은 위로부터 선물로 허락하신 믿음에 의해서 구원 받은 자들이 누리는 은혜잖아요 그렇습니다. 영생에 대한 소망은 창세전부터 약속하고 계시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전도로 나타내시려 자신에게 맡기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의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마케도냐로 4차 선교여행을 나서고 있는 거지요 이것을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고전1: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는 미련한 것이래요. 그러나 그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바울을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도로 또는 하나님의 노예로 전도자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께로 받은 믿음으로 진리를 경건으로 빛을 발하며 영원 전부터 주신 영생의 소망을 예수로 이루셨다는 걸 전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5절을 볼까요.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디도와 같은 믿음이라는 거지요 왜 그렇습니까? 신앙 양육으로 자식처럼 키워낸 사람이 디도거든요 그래서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했구나 깨닫게 되는 겁니다. 바울은 마케도냐로 떠나면서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거고 그 이유가 뭔지를 말하잖아요. 하나는 남은 일을 정리하게 함이라는 거지요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내가 거기서 못 다한 일을 그대가 완성하고’라고 번역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디도가 그레데에 남은 또 하나의 이유는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려는 때문이었다는 거지요 여기서 깨닫는 것은 그레데섬 여러 곳에 이미 교회들이 세워져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여기 ‘장로들’ 헬라어 ‘프레스뷔테루스’는 연장자로서 교회의 집회와 운영을 책임지는 일꾼들이라는 건데 디도가 이 일꾼들을 세우려고 남겨졌다는 겁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레데교회에 세울 일꾼에 대해 말하잖아요. 6절을 보시지요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먼저 ‘책망할 것이 없고’ 헬라어 ‘아넹클레토스’는 ‘나무랄 데가 없는’ 그런 의미니까 ‘언행일치’의 사람이라는 거지요 책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뭡니까? 언행불일치 때문이거든요. 뭡니까?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일꾼이 되려면 한 아내의 남편,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한 남편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지금은 당연한데 우리나라도 첩을 두는 것을 당연시 했던 시절이 있었듯이 이천 년 전 그 시대에도 그랬다는 거지요 이번엔 자녀에 대해 말하잖아요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는 자녀나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둬서는 안 된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의 거울은 부모니까 뭡니까? 작은 공동체인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교회공동체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 일꾼으로 말씀대로 가르침을 받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언행일치의 삶이 되어 교회 안이나 교회 밖에서나 누구에게라도 비난의 대상이 아닌 인정의 대상으로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9절을 볼까요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앞에서는 장로 이야기를 하다가 감독 이야기로 바뀌는 것이 아니지요 ‘감독은’ 앞에 헬라어 ‘가르’ 접속사 ‘왜냐하면’이 있어 장로나 감독을 같은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꾼은 뭐랍니까? ‘하나님의 청지기’랍니다. ‘청지기’ 헬라어 ‘오이코노모스’는 ‘집의 관리를 맡은 자’라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청지기’란 ‘하나님의 집, 즉 교회의 관리를 맡은 일꾼’이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한 대요 ‘제 고집 대로 하다’ 헬라어 ‘아우다데’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멋대로’ 한다는 거 아닙니까? 자기 멋대로 아니지요 적어도 하나님의 청지기인 일꾼의 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리 세미한 성령의 음성에 밝아야 한다는 거지요 왜요? 하나님의 청지기니까
그리고 여기 ‘급히 분내다’ 헬라어 ‘오르길론’인데 ‘분노를 쉽게 폭발하다’는 의미거든요 왜 쉽게 분노를 나타내지 말아야 할까요? 약1:20절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예를 들면 모세는 민12: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그런데 이 온유한 모세가 민20:10~11절에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뭡니까? 그렇게 평상시 온유했던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의 불신앙에 너무나 화가 나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거거든요. 이렇게 급히 분 낸 모세의 행동을 하나님이 어떻게 보셨는지 아세요 신32:51절에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모세의 그 ‘오르길론’ ‘분을 낸 것’은 ‘내게 범죄한 것’이라잖아요 그 결과가 뭡니까? 가나안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하는 큰 아픔을 당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요 여기 술은 포도주와 맥주 그리고 양주와 막걸리를 비롯한 독주까지를 포함한 모든 술이라는 건데 이 술을 즐긴다는 건데 ‘즐기다’는 ‘곁에 두다’니까 술을 가까이 하지 마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구타하다’ 헬라어 ‘플렉텐’은 ‘때릴 준비가 되어 있는 난폭자’라는 의미거든요 또 하나가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않는’ 건데 뭡니까? 하나님의 청지기는 물질에 초월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청지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데 ’나그네를 대접하며‘ 왜 입니까? 청지기는 실제로 나그네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선행을 좋아하며‘ 헬라어 ’필라가돈‘은 ’선을 사랑하는‘ 이란 의미거든요 사랑실천이잖아요. 그리고 ’신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의로우라고 말하고 거룩하여야 하고 절제하랍니다.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뛰어넘어 삶 속에 실천하는 걸 말하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살아야만 다른 이를 지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신적권위를 부여 받은 하나님의 노예이고 하나님의 집을 맡은 하나님의 청지기이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버려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해야 할 것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노예로 신적권위를 부여 받은 이들로 충실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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