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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2:18~28절 “예수 있는 자와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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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8-18 00:00    조회 5,946    댓글 0  
 
마가복음2:18~28절    “예수 있는 자와 없는 자”     2012. 8. 19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그 당시 유대인들의 금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금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58:3절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무엇입니까? 금식의 날을 맞이하여 금식하는 유대인들 이야기입니다. 자기들의 금식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저들은 금식하면서 세상오락을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부리는 일군을 압제하더라는 것입니다. 4절엔 구체적인 행동을 더 말해 줍니다.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이웃과 더불어 다투고 사람을 치고 이러니 5절에 너희가 하는 금식을 어떻게 금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번엔 예수님 당시 금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6:16절에 예수님이 금식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외식하는 사람들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얼굴에 슬픈 기색을 하고 배고픔을 참고 있다는 표현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에게 보이게 하는 것인데 마치 사람에게 지금 나 금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내 경건함을 좀 알아주시오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날이 되었을 때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경건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는 참으로 종교인다운 경건미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금식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금식하는 사람들 같은 모습도 갖추지 않았고 오히려 음식을 먹고 마시며 옆 사람과 떠들며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어째서 금식의 날인데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가 물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세레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율법을 지켜나가는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예수 당신의 제자들에게선 경건치 않은 모습뿐이니 무엇이 믿는 자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19절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당신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면서 제자들은 지금 혼인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혼인집 손님들이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금식하는 것, 경건한 모습이 더 이상하지 않겠느냐 당신들도 아는 것처럼 혼인집에선 먹고 마시고 떠들고 기쁘고 즐거워해야 그게 맞는 것이 아니냐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20절입니다. 앞으로 혼인집의 주인공인 그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빼앗길 날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강제적이고 폭력적이며 비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예수님에게 와서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은 장차 이들이 나를 강제로 잡으며 갖가지 폭력을 행사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리는 그런 모습을 느낄 수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이렇게 죽을 날이 반드시 오시리라는 것도 내다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왔는데도 당신의 제자들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기쁘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비로소 그때가 되면 나의 제자들이 금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들의 소망처럼 십자가에 영원히 빼앗기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금식하는 자의 모습처럼 예수님을 빼앗긴 자의 모습이 아니라 잔지 집에 거하는 자의 모습이 맞다는 것입니다. 신랑의 집에 있으므로 신랑이 나와 함께 하므로 신랑의 것을 먹고 마심으로 그 신랑이신 예수님 때문에 오직 그 사실 때문에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해서 자신의 경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고 하나님이 받으셨을 것이라는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처럼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니까 구별된 삶을 살고 권사니까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화목하고 예수님 때문에 즐겁고 기뻐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무엇이라고 말씀하는 줄 아십니까? 고후5: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절에 새 것의 성격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화목의 근저가 무엇입니까? 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얻는 화목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1절과 22절에 헤어진 낡은 옷을 고쳐 입기 위해서 새 천을 잘라서 기우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새 포도주는 새로운 부대자루에 넣어야 되는 것처럼 인간의 죄의 문제를 없이하고 하나님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인 성도들이 과거처럼 사람 보이라고 이만하면 하나님이 받으셨겠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는 예수가 없는 삶이요 새 술을 헌 부대자루에 넣는 행위요 헌옷을 고치기 위해 새 천을 잘라내는 행위어서 둘 다 못쓰게 되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 구원 받으려는 데서 떠나 신랑 예수님과 함께 하고 신랑 예수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고 마시고 신랑 예수님으로 인하여 즐겁고 기쁘고 하는 잔치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비난을 예수님이 듣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의 행동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밀을 한 움큼 훑어서 비벼서는 먹더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된 것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아야 하는데 노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의 제자들까지 안식일을 우습게보고 있다는 그런 비난입니다.
25절과 26절에 다윗의 일을 예로 들어 대답을 하십니다. 다윗이 자기와 함께 한 자들과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하도 배가 고프니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대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제사장들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얻어서 자신과, 자신과 함께 한 자들이 먹었다는 삼상21:6절의 말씀도 읽지 못했느냐 성경에도 있지 않느냐 그러시면서 27절에 안식일이 뭐냐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28절에 안식일에도 내가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집에서 실수 전기 스위치를 건드려 전기불이 꺼졌을 때 다시 키면 일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옆집 아이에게 찾아가 사탕을 주면서 부탁을 한답니다. 자신의 집에 가서 전기 스위치 좀 올려달라고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예수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신학자 헤셀은 자신이 저술한 안식이라는 책에서 안식일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우리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 무척 중요한 교훈을 선물하는데 그 책에 의하면 안식일은 신부이면서 동시에 여왕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나타나 함께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마치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인 주일이 지나는 것은 방문했던 여왕이 떠나가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다가올 때는 신부가 되어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식장에 들어가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환영하는 것처럼 안식일인 주일이 지나갈 때는 신랑을 배웅하는 신부처럼 다시 만날 기다람과 아쉬움과 애뜻함과 사랑함으로 환송하는 것이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역시 잔치와 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여기 안식일의 주인은 당연히 신랑이신 예수님이요 신랑과 함께 있는 그 시간에 배고픔이 있다면 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잔치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양이 제힘으로 푸른초장을 찾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벌레를 잡지도 못합니다. 양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 못합니다. 누가 해줍니까? 목자이신 예수님이 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이런 주님을 예배하는 날, 만나는 날, 만나서 기쁨을 나누는 날 축제의 날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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