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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3:1~6절 “선과 악 그리고 그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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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08-24 00:00    조회 6,278    댓글 0  
 
마가복음3:1~6절      “선과 악 그리고 그 중간”   2012. 8. 26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 회당에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예수님의 눈에 바로 띤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손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6장에선 그 마른 손이 오른 손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이 통통하면 몸도 통통한 사람이고 손이 마른 사람은 몸도 마른 사람이래요 손이 부은 것은 온 몸이 부어 있음을 나타내고요 손에 윤기가 없고 차면 몸도 마찬가지로 안 좋은 상태랍니다. 손을 통해서 온 몸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그처럼 중요한 손이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손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겪었을 마음의 아픔이 어땠을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손을 보면서 그리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항상 외톨이로 살아왔을 그 손 마른 사람 때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을 것이고 아니면 손 마른 상태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살아갈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띤 것입니다. 아니 먼저 찾아주셨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우리 하나님 어떤 분이십니까? 시14: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1:4절엔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는” 분이심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농부가 바쁘게 둥지를 짓고 있는 어미 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곳은 얼마 전에 마른 나뭇가지를 잘라 쌓아 놓은 터라 새끼를 치기에 매우 위험한 장소였습니다. 농부는 어미 새를 위해 완성된 둥지를 부숴 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미 새는 다시 둥지를 지었고 농부는 또 부숴 버렸습니다. 3일째 되던 날 어미 새는 드디어 농부의 부엌문 가까이에 있는 큰 가지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농부는 안심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해 지어 놓은 보금자리를 하나님이 왜 부수시는지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한눈에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더 높은 뜻을 갖고 계시며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고 더욱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최명덕교수의 “유대인 이야기”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최명덕교수가 이스라엘에 유학 중이었던 시절에 그의 아내가 죽을 고비에서 성공적인 수술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예루살렘 샤아르 째덱 병원에서 회복 중에 있었는데 샤밧이라고 부르는 안식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병실에 간호사가 들어와서 체온을 체크하고 혈압을 재는데 여느 때는 혼자 들어와서 했는데 안식일엔 아랍인 간호보조가 함께 따라 들어왔다는 겁니다. 유대인 간호사는 체온을 체크하고 혈압을 재기는 하는데 적는 것은 아랍인 간호보조가 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안식일에 기록하는 것은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기록을 아랍인 간호보조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겐, 뭐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꼭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아니고 뭐냐는 반응이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이정도니 예수님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더 하면 더 했을 것입니다. 그 더한 모습을 본문 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2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안식일인데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가 그래서 모두 주시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만약 고쳐준다면 안식일을 어겼다고 즉시 고발할 참입니다. 사람들을 복되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사람에게 주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인지도 모르고 그 예수님을 고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위하여 고발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3절입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사람들 중심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 유대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때 그 어떤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5절에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시면서 탄식하셨고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 마른 자가 자신의 마른 손을 예수님께 내밀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을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성한 손이 된 것입니다. 성한 손이 된 것을 보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든지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손 마른 자의 회복을 눈이 있어 보면서도 바리새인들이 슬며시 밖으로 나갑니다. 밖에서 헤롯의 추종자들인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무슨 죄목을 붙여서 죽일까 의논하더라는 것입니다.
방금 전 4절에서 하신 말씀이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안식일에 예수님은 선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시는 반면에 같은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어긴다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죽이려는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는가 범하지 않는가에 있었습니다마는 예수님의 관심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가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가 아니면 악을 행하는 가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하는가에 있음을 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안식일에 있고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명분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어디에 관심이 있습니까? 지금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 가운데 살아왔을까, 지금 이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의 관심은 고통 받는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도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 사람의 소유를 빼앗고 때려서 거반 죽게 만들어놓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지나가는 제사장이 있었고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역시 그냥 지나갔습니다마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름으로 맞은 상처를 닦아줍니다. 그리고 자기 나귀에 태워서 주막으로 가 간호해줍니다. 그리고 돈을 주면서 주막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이 올 때까지 돌봐달라고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서 드리겠다고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죽은 자를 만졌을 때 부정하기 때문에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성전에서의 하나님의 일을 볼 수 없다는 명분 지키기가 관심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되고 있는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상처 난 죽어가는 한 영혼입니다.
안식일이 무엇이냐 주의 일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벗겨주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요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주님의 생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은 선이냐 아니면 악이냐를 말씀하시지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안식일인데 하루 지나서 고쳐주면 되지 않느냐 그 중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과 악이지 그 중간은 없음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고통 속에 살아온 이를 발견했고 나에게 그것을 바꿔줄 힘이 있는데 내일을 기다린다면 이것이 악이라는 것이고 그만큼 고통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은 또 다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 서게 하셨고 그 마른 손, 그 흉측한 손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의 눈이 그 마른 손을 봅니다. 그래도 말씀대로 손을 내밉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큽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손이 예수님을 향해서 내밀게 될 때 다른 한편의 손처럼 온전해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들려지는 말씀이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고쳐지기를 바랍니다. 해결되시기를 바랍니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위선과 명분에 매달려 있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위선과 명분에 매달려 있으면 큰 소리와 많은 소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작은 능력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보시며 탄식하셨고 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상처 난 한 사람, 고통 받고 있는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큰 능력이 함께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 문제라기보다는 자신들은 깨끗하다고 정의롭다고 자신들은 괜찮은데 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셨습니다. 자신은 깨끗한 척 자신은 의로운 척 그래서 큰 소리를 내는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 진노할 수밖에 없는 위선 덩어리였고 예수님이 보시는 슬픈 죄인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회복된 손 말랐던 사람에게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아마 손 말랐던 그 사람은 회복된 그 기적의 손을 보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던 손이었었는데 그 손 가지고 뭘 했을 것 같습니까? 부지런히 그 동안 못해본 봉사를 맘 것 하는 봉사의 손이 되었을 겁니다. 기도하면 되는구나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고 들으셨고 예수님이 찾아주셨음을 기억하면서 기도의 손이 되었을 겁니다. 이 손이 어떤 손인 줄 아십니까? 하면서 전도의 손이 되었을 겁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사랑의 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일하는 손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메마른 손을 회복시켜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의 일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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