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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8:18~23절 “바울의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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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10-01 00:00    조회 6,357    댓글 0  
 
사도행전18:18~23절             “바울의 서원”            2011. 10. 2  
바울이 다멕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사인이 든 문서를 쥐고 살기가 등등하게 예루살렘으로부터 말을 타고 달려 왔습니다. 그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결박을 지워서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리라 하였습니다. 다메섹 성읍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인데 갑작스럽게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췹니다. 말도 놀랐고 놀라 뛰는 말에 탄 바울은 더 놀라서 말에서 떨어져 엎드러지게 됩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인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두 번 연거푸 부르면서 들리는 말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째서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떨리는 목소리로 “주여 누구신데 당신을 핍박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때 또 음성이 들려오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고 있는 예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되어지는 말씀은 “너는 일어나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라 거기서 이제부터 네가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지를 알려줄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다메섹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울이 들었던 음성은 분명히 자신들도 똑같이 들리는데 이상스러운 것은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엎드러져 있다가 땅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눈은 떴으나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말씀하신대로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바울은 머물고 있는 유다의 집에서 신비한 체험을 경험하고는 누가 시켜서도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이런 회심의 순간에 누구나 그런 것처럼 한 없이 흐르는 회개의 눈물이 있었을 겁니다. 어느 부흥사의 이야기처럼 지하수가 흐르고 땀을 이야기한 겁니다. 하수도가 흐르고 콧물을 이야기한 겁니다. 상수도가 흘렀다 눈물을 이야기한 겁니다. 이렇게 바울이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아마 보이지 않는 눈에 대해서 걱정이 되어 기도했을 겁니다. 이렇게 영원히 볼 수 없는 장님이 되는 겁니까 갑작스럽게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 또한 젊은 사람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겁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아니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자기 머리에 안수하게 되니 보게 되는 환상을 본겁니다. 보이지 않는 눈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신령하게도 가르쳐 주신 겁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와서 안수하게 될 때 고쳐질 것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나니 마음이 놓입니다. 실제로 사흘 후에 예수님의 계시를 받은 제자 아나니아가 유다의 집으로 찾아왔고 환상에서처럼 바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게 될 때 눈이 밝게 보이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경험에서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원을 어는 기간 동안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거룩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만나게 되면 누구든지 나실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지하수가 터지고 하수도가 터지고 상수도가 터져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 기도할 때 이제 주를 위해서 살리라는 결심을 하였었는데 바울도 역시 하나님께 서원하는 시간을 가졌었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지 않겠다는 서원이 몇 년이라는 기간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변화된 어느 때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일들을 이루겠다는 의미일 수 있을 겁니다. 여기 본문에 바울의 서원이 어떤 의미의 서원이었는지 분명히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했던 그 서원을 이제는 그 때가 다 찼다 여겨서 수리아로 떠나게 될 때 고린도의 항구도시인 겐그레아에서 예수 만난 후로 한 번도 자르지 않고 기르던 머리를 잘랐다는 겁니다.
구약에서 나실인은 구별된 자로 일정 기간 주께 헌신하게 되는데 그 기간이 몇 개월일 수도 있고 여러 해 일수도 있고 평생 일 수도 있는데 아마 바울의 서원 기간은 몇 해나 어느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로 정했던 것 같습니다. 이 서원 기간 동안은 머리를 자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칼에 칼을 댈 수 없었습니다. 또 포도든지 마른 건포도이든지 먹을 수 없었고 당연히 포도주는 마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서원된 나실인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하고 이 세상의 쾌락을 외면하고 죽은 자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현대의 나실인은 목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장로나 권사나 직분 가진 자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현대의 나실인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인도에 내 삶을 맡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죄와 세상과 마귀와 타협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을 말씀하는 겁니다.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실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올 7월27일 세계적인 복음의 거장 존 스토트 목사님이 90세를 일기로 천국에 가셨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복음적인 많은 책을 저술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이년 전에 제자도라는 마지막 책을 저술하셨습니다. 제자도라는 책의 원제목은 The radical disciple 인데 이 말은 근본, 기본, 타고난, 또는 철저한 제자라는 말로 제자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죽기까지 또는 전폭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제자를 말합니다. 한 마디로 제자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을 본받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과 타협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죄와 유혹과 싸우는 제자를 말합니다. 이런 제자를 오직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나실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심으로 철저한 구별을 말씀하셨고 전폭적인 하나님 의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나실인의 시작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리고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 이것이 기본이고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그리고 온전히 자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나실인이 되셔서 자신을 버리셨고 자신을 버리신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제자가 가져야할 radical 기본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왜 서원하여 머리를 길렀었습니까?
나실인으로 구별된 자로 거룩하고 의롭게 주의 복음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삶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근본을 갖춘 기본이 된 기초가 든든한 철저하게 radical하게 disciple 제자로 사는 삶으로 부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믿는 자로서 제자로서 기본을 갖춘 기초가 확실한 철저한 나실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전9:26~27절에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리고 고전15:31절에도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철저하게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철저하게 사는 기본을 가지고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에 머물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당하게 살면서 십일조 내고 감사하고 하면 되지 적당하게 기도생활도 하고 적당하게 교회 봉사도 하고 그저 적당하게 하려는 우리의 신앙에 예수 만나고 은혜 받고 성령 받으면 도저히 적당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제대로 예수 만나면 철저한 radical한 성도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주를 위해서 그 어떤 일도 적당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가 나를 위해 철저하게 죽으셨으니 우리 또한 철저하게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몸값이 죽는 장소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비행기에서 죽으면 수억대로 올라갑니다. 자동차에서 죽으면 억대로 내려갑니다. 병으로 죽으면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러나 보험 들어놓고 죽은 사람은 몸값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의 몸값이 이처럼 천차만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몸값은 얼마가 될까요? 예수 믿는 우리들 몸값은 수억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몸값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몸값을 주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값으로 추정할 수 없는 고가의 명품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명품들이 있습니다. 그 명품들은 명품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값싸게 파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세상의 명품도 명품다운 자태를 뽐낸다면 하나님의 명품들인 우리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세상 유혹에 물들지 아니하고 구별하여 살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보여 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그 옛날 어떻게 살았습니까? 히11:24~26절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하나님을 뵈온 후 은혜 받은 모세는 나실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거절합니다.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적당하게 사는 이들이 하나님의 명품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모세는 진짜로 하나님의 명품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적당주의에서 벗어나 바울처럼 철저하게 기본이 되어있는 radical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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