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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36~41절 “참으로 변화됐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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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7-02 09:00    조회 5,710    댓글 0  
 
사도행전15:36~41절       “참으로 변화됐다 했는데”    2011. 7. 10
이번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공범으로 주목을 받은 정 이병은 신학대학 재학 중에 해병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아주 모범적인 신앙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입대할 때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올렸던 나라사랑도 사명감도 아주 깊은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입대 6개월 만에 총기를 난사한 김 상병에게 “모두를 죽이고 싶다”는 가슴 아픈 소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군에 만연된 성추행과 선임 병의 가혹행위 기수열외와 같은 나쁜 악습들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바르게 살려는 정 이병은 큰 벽을 실감하였을 것이고 그에 따른 무수한 보복이 가해졌으리라고 생각이 되고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새 모두 죽이고 싶은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 정 이병에게만 이런 분노가 있는 것인가? 아니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분노가 마음에 가라앉아 있다가 분노케 하는 상황이 되어 질 때 우리도 여지없이 분노하곤 합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아 중심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자아 중심적이라는 것은 인간은 모두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죄성이 우리에게서 언제 나타나느냐하면 자기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죄성은 분노로 표출이 되는 것입니다. 죄성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분노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맘이 유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도 정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합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서 해서는 안 될 짓들을 하는 파렴치범을 보면서 분노합니다. 대부분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분노합니다. 그런데 분노가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가 있고 안으로만 움직이는 분노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으로 움직이는 분노 중에 하나가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우울증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를 갖게 되면 타인을 향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띄게 되지만 안으로 움직이는 분노를 갖게 되면 자기 자신을 향해 공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로 끝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 처음부분에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 바로 다음 세대인 가인과 아벨에서 분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이 분노하였습니다. 누구 때문에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동생과 동생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기와 자기 제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인이 볼 때 하나님께서 비교하신 것으로 본 것이고 그리고 자기 자신은 안 좋게 비교 당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분노했습니다. 가인의 분노는 겉으로 드러난 분노였습니다. 그래서 타인을 공격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하나뿐인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돌을 집어 때려죽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분노하는 교회지도자들을 보게 됩니다. 심히 다투었고 다시 안 볼 사람들처럼 갈라서기까지 하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일차 전도여행 때 가는 곳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교회가 세워졌었는데 그 교회들이 너무나 궁금한 겁니다. 잘하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래서 바나바에게 우리가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한 각 성을 다시금 돌아보는 것이 어떠냐 제의를 하였고 바나나가 이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나바는 2차 전도여행에 마가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자는데 바울이 극구 반대하는 난처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바울이 마가요한을 2차 전도여행에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13:13절에 보면 마가요한이 1차 전도여행을 하던 주에 갑자기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함께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전도 팀을 떠나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바울은 이 일로 인해서 마가요한을 인정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무책임하다는 것일 겁니다.
행13:5절에 보면 마가요한은 수행원으로 전도여행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수행원이라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요? 국어사전에서 수행원이란 높은 지위의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그를 돕거나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 중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뽑혀진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동행 했는데 무책임하게 도중에 집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진즉이 출발 전에 함께 하지 않는다고 했다면 다른 사람을 세웠을 것인데 도대체 이런 행동은 함께 하는 공동체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바울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마가요한을 2차 전도여행에 함께 동행 하자 했을 때 반대한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그런 사람인데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어떻게 했습니까? 39절에 보니까 심히 다투었고 마침내 갈라섰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능력 받은 사람들 오직 예수로 사는 사람들도 다투는가 그것도 심히 다툴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편 갈라서 갈라섰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모든 핍박과 환난과 고난도 기꺼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행4:36절에 원래 이름은 요셉인데 얼마나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사람인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바나바라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다른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37절에는 말만 그렇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제로 자기 밭을 팔아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시리아의 다메섹에 있던 바울을 불러서 안디옥교회에서 두 목회자가 협력해서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하였습니다.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이고 맘도 서로 맞고 신앙의 깊이도 비슷하여 서로 의지가 되는 그런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양보할 것 같은데 절대로 다투지 않을 것 같은데 심하게 다투고 급기야는 갈라섰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 이보다 더 한 것들은 참아내면서 다투지 않아도 될 일인 것 같은 데서는 오히려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심히 다투다에서 심히는 히브리어로 호즈카인데 날카롭다 예리하다 격렬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투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리브라고 하는데 꾸짖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히 다투었다고 할 때 얼굴이 굳어지고 몸이 떨리고 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거친 억양과 격앙된 음성으로 서로 상대를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갈라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떠나게 되었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변화 되었다고 말하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상대를 향하여 공격하는 해서는 안 되는 분노를 얼마든지 폭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5:2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모두에게 있는 이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노할 때가 따로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상대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를 구원의 조건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들처럼 믿게 해서는 모두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나 하는 짓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분노하셨습니다. 또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왜 성전을 기도하는 곳이 아닌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느냐 분노하시고 저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노도 필요할 때가 있음을 봅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상태에서 조롱하며 침 뱉으며 얼굴을 때리는 저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서는 오히려 분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훗날 베드로가 벧전2:2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때에 화를 내셨고 어떤 때에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셨는지를 우리 믿는 자들은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화를 내기 앞서서 열을 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화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
그래서 엡4:26~27절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죄 짓는 분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품은 분노로 인하여 마귀가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의 분냄은 내서는 안 되는 일에 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금요일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것도 없었습니다. 구역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월롱 사거리 50미터 못 미친 지점에서 코란도 짚프차가 앞으로 가지 않고 제 앞에서 머뭇거립니다. 저는 좀 느긋해야했는데 그런 모습이 답답해서 클락숀을 빵빵 울렸습니다. 그때 뒤에 타고 있던 우리 딸아이가 아빠 우리는 예수님의 창문인데 왜 그러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고난 제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그런 것이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한다는 겁니다. 참을 걸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분노의 폭발보다는 분노를 절제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여인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갔습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 한 봉지를 사서 먹으며 책을 읽습니다. 옆에 앉은 자리 옆에 과자 봉지에 손을 넣어서 과자를 꺼내서 먹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옆 자리 신사도 자기와 같은 봉지에서 과자를 꺼내서 먹는 겁니다. 여인은 속으로 이상한 사람도 다 있다 생각했습니다. 여인은 자기가 하나 먹으면 그 신사도 하나 꺼내 먹습니다.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먹습니다. 속으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뭐 이런 사람이 있어 책에서 머리를 들어 그 신사를 바라보니 양복을 입고 꽤나 멋지게 생긴 신사였습니다. 어쩜 모습하고는 다르게 천연덕스럽게 남의 과자를 먹는 거지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여인은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잘 절제하고 있었습니다. 먹다보니까 마지막으로 과자가 한 개가 남았습니다.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때 신사가 몸짓과 함께 드시라고 말합니다. 여인은 오기가 나서 마지막과자를 소리가 나도록 깨물어 먹었습니다. 그때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에 탑승해서 보던 책을 넣기 위해 가방을 여는 순간 이게 웬일입니까? 아까 샀던 과자가 뜯지도 않은 채로 가방 안에 있는 것입니다. 천연덕스럽고 뻔뻔스러운 것은 그 신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참지 못하고 분노를 했더라면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인데 잘 참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창문입니다. 분노를 절제하고 참아낼 줄 아는 분들이 되셔서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교회공동체를 만들어가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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