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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3:26~49절 “용서, 헌신 그리고 온전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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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4-15 00:00    조회 5,296    댓글 0  
 
누가복음23:26~49절     “용서, 헌신 그리고 온전한 믿음”  2011. 4. 17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예루살렘성전 사십육 년간이나 지었던 이 성전을 헐면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 이 말씀 때문에 격분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십니다. 한 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밤새 채찍에 맞으며 온갖 고초를 겪으신 그 몸으로 십자가를 지고 걷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팔레스틴의 날씨가 보통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숨이 헉헉 막힙니다. 그래서 쓰러지십니다. 채찍을 든 군병들이 예수님을 다시 세워 보지만 또 쓰러지십니다. 로마 군병이 좌우를 살펴봅니다. 건장한 한 사람이 눈에 띕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이 시몬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친 몸을 겨우 가누어 그 뒤를 따라갑니다. 얼굴은 땀과 피로 물들었고 예수님의 옷은 온통 피에 젖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가슴을 치면서 슬피 흐느껴 울지 않는 여인이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예수님이 돌이켜 여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그리고 장차 마지막 때 일어날 심판의 극심함이 얼마나 큰지 “차라리 나지 않은 사람이 복이 있고 자녀를 낳지 않은 여인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고통 중에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을 염려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위로를 드리려던 여인들이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마침내 처형의 장소인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자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구레네 시몬이 지고 온 나무 십자가를 땅 바닥에 누입니다. 그 거친 나무 위에 옷을 벗기우신 예수님을 눕게 하고 양팔을 벌립니다. 군병들의 강한 손들이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있는 동안 예수님의 양 손바닥은 굵은 대못이 들어가 박혔습니다. 손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과 함께 예수님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집니다. 그리고는 군병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준비된 패를 붙인 나무 십자가를 그대로 세우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몸무게에 의해서 몸은 앞으로 못 박힌 손은 찢어지면서 팽팽히 매달리셨습니다. 두 사람의 행악자도 예수님 좌우에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낄낄거리고 조롱하며 비웃으며 내 뱉는 인간들의 던지는 말이 지금 겪고 있는 육신의 고통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아무 잘못도 없으신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우리 같으면 욕을 하기도 하고 소리를 쳐서 억울함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결국은 저주로 끝을 맺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34절에 저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있으니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더란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주를 택하는 것이 보통인데 예수님은 반대로 저주 대신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저들을 오히려 충분히 이해를 하시면서 용서를 택하셨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벧전2:19~21절입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왜 저주 대신 용서를 택하셨다고요?
우리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따라오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당하신 것보다 더 당하신 분계십니까? 예수님처럼 아무 죄도 없는데 예수님이 당하신 것보다 더 당하셨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아마 아무도 없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자취를 따라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저주대신 용서를 택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 십자가 지셨을 때 예수님 어떻게 하셨나 베드로사도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벧전2:22~23절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셨다”  
정죄 보다는 이해 저주보다는 용서 맞대응 하여 욕하지 않으시고 나 이만큼 고난당했으니 너희는 안 당하나 보라 위협 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께 용서하시는 우리 예수님의 이런 모습의 자취를 따라 살기를 욕심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벧전2:24~25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렇게 이런 용서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이다. 이제는 죄에 매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죄가 없어진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 왜 채찍에 맞으셨습니까? 상대방과 똑같이 맞대응하는 아픔이 계속되는 삶, 원수를 향해 저주를 퍼부음으로 편치 않는 마음으로 고통 하는 삶, 용서하지 못하는 무겁기만 한 괴로움에서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감으로 우리의 모나고 상처난 마음을 낫게 하시려고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예수님의 자취를 따르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에게 볼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너와 내가 정말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 오셨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처럼 용서를 택할 때가 된 겁니다.
미국이 건국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인데 한 신사가 자기 집 정원에서 빵과 음료를 마시면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인디안이 이 신사를 보고 너무 배가 고프니 빵 좀 주지 않겠느냐 사정을 합니다. 신사는 너 같은 인디언에게는 줄 빵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무 목이 마르니 마시던 음료수라도 조금 마실 수 있게 해달고 부탁하자 역시 음료수도 줄 수 없다고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이 신사가 사냥개와 함께 사냥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꽤나 깊은 산중에 들어왔다고 생각이 드는데 설상가상으로 사냥개마저 놓쳐버려서 꼼짝없이 산중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신사는 여기저기 헤매며 길을 찾습니다. 이제 해는 져가고 배는 고프고 갈증은 나고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는 한 인디언을 만났습니다. 그 인디언이 자신의 집으로 이 신사를 데리고 가서 극진이 대접을 합니다.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한 신사가 정신이 들어 그 인디언을 자세히 보니 며칠 전 자신이 그렇게 모멸감을 안겨주었던 바로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신사는 너무나 부끄러워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째서 나를 알면서 도와주었느냐고 묻자 이 인디언이 하는 말이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잠25:21~22절“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가아 주시리라.” 말씀대로 실천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만약 자기가 이 말씀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산중에서 죽고 말았을 겁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이 신사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얼마나 부끄럽던지 예수님이 용서를 택하셨습니다. 왜요? 우리로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 오라고, 아멘?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맞아서 용서를 택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온 몸이 뒤틀리지만 못박혀있는 까닭으로 뒤틀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 밑에서 온갖 모욕을 다 내뱉으며 남을 구원했으니 널 니가 구원해야지 하면서 조롱하며 비웃습니다. 군인들도 역시 비웃음으로 유대인의 왕이니까 너 자신을 구원하라는 겁니다. 이번에는 한편에 있는 행악 자까지 예수님을 비방하는데 가세하였습니다.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고 소리칩니다. 불신앙의 소리들이 얼마나 거세고 큰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마는 십자가에 고통 중에 달려계신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를 꾸짖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른 한 편에 달린 행악 자였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에 우리는 마땅한 값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데 지금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나라 천국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행악 자의 신앙의 소리에 대하여 예수님이 그의 부탁을 들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으로 동행하는 놀라운 축복이 있겠다고 하신 겁니다.
왜?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는 외침에는 침묵하셨던 예수님이 당신의 나라에 가실 때 날 좀 기억해 달라는 행악 자의 말에는 응답을 하셨을까?
너도 구원하고 나도 구원하라는 것은 육체뿐인 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가실 때 날 좀 기억해 달라는 것은 육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과 이 사람의 소원이 맞아 떨어졌다는 거지요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불의로 벌어드린 돈을 가난한 자를 위해서 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하기를 기꺼이 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런 삭개오를 보면서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눅19:10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이 강도의 부탁을 그래서 들어주셨던 겁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였던 겁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 고통이 엄습하는 최고 아픈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죽음의 순간에도 기꺼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는데 헌신하고 계셨던 겁니다. 세상 것에 욕심내는 분들이 아니라 이 같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소원에 욕심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지 벌써 여섯 시간이나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방이 캄캄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햇빛도 더 이상 빛을 내지 않았습니다. 온통 세상이 암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안의 성소와 지성소를 이어주는 휘장이 한 가운데 찢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큰 소리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후 숨을 거두십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백부장이 이는 의인의 죽음이로다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가슴을 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십자가 위에서까지 그 고통의 절정에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시는 예수님의 온전한 믿음을 보고 있습니다. 보통 십자가 위에서 흔들립니다. 고통과 시련 앞에서 의심이 앞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고통의 절정에서 자신을 맡기고 계시는 겁니다. 저는 목회 현장에서 고비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셨고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딸을 맡겼을 때 하나님은 저의 부부에게 더 없는 아들 같은 사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아들을 하나님의 길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님처럼 흔들리지 마세요 믿고 맡기세요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고난주간을 맞아 저주가 아닌 용서를 고통 속에서도 잃어버린 자를 찾는 사명을 위해 헌신함을 마지막 순간에서까지도 흔들림 없이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믿음의 중요함을 예수님 자취를 따라 사시는 저와 우리 온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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