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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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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4:19~28절 “시작은 암담 결과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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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4-09 00:00    조회 5,312    댓글 0  
 
사도행전14:19~28절       “시작은 암담 결과는 만족”    2011. 4. 10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의 영혼은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믿음으로 내 것 삼는 모든 자에게 그 어떤 질병까지도 깨끗하게 하신다.

어떤 청년이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길목에서 놀고 있는 한 무리의 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네 명의 소년이 복음을 듣고 청년을 따라 교회학교에 나오게 되었고 이 네 명의 소년들은 주일학교에서 아주 착실히 말씀 안에서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복음을 전했던 청년은 어느덧 육십 회 생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육십 회 생일 때 자신이 복음을 전했던 이 네 명으로부터도 축하카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연방은행의 총재로부터 온 카드, 중국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 선교사로부터 온 카드, 당시 후버대통령의 수석비서관으로부터 온 카드 그리고 마지막 카드는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온 카드였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애까지 아름답게 변하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엔 육신의 고질적 질병까지 회복시키더라는 겁니다. 복음은 이렇습니다. 구약에 전해져 내려오는 오실 메시야가 때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분은 약속대로 어린양처럼 자신을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주셨고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 모두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멘이십니까? 아멘? 여느 때와 똑같은 이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전혀 발을 써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끼어서 이 말씀을 자신의 절망적인 형편에 적용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영혼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굳어버린 움직이지 못하는 발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속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있던 바울의 영적인 눈에 띄게 되었고 바울은 외쳤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러자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했던 이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걷기를 시작한 겁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자기 형편에 적용시킬 때 믿음대로 되어지는  능력 있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이 복음을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고 이 복음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이 복음이 내게도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바라보시므로 오늘 우리에게 염려와 근심이 물러가고 주의 평안과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을 번 하였다. 이것도 하나님의 지키심인가?
19절에 보니 비시디안 안디옥과 이고니온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루스드라 사람들을 충돌질을 해서는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었다고 여기고 시외로 끌어다 던져버렸다는 겁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일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그냥 쫓겨났고 그 다음 선교지 이고니온에서는 돌로 치려고 해서 겨우 도망갔고 그러나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초주검을 당한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때에는 당신의 백성들이 상하지 않도록 구하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구하시지 않으심으로 상하게 내버려두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어떤 때는 구원하시지만 어떤 때는 구원하시지 않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당한 당사자인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어땠을까?
훗날 디모데에게 나중 보낸 편지딤후:11절에서 그때 일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건지신 하나님 그리고 이고니온에서 돌에 맞을 번하였으나 그 가운데서 건지신 하나님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음직전까지 갔으나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뭐라고요? 그 가운데서 건지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를 구하셨듯이 오늘 우리가 아주 어려운 문제와 풍랑 가운데 있을지라도 역시 변함없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미의 어느 섬에서 복음을 전하며 사역을 하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원주민들은 여전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마음이 착한 원주민은 선교사를 찾아와 선교사님 괜한 헛수고 하지 마시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음이 고약한 원주민들 중에는 선교사를 여러 모양으로 괴롭힙니다. 침을 뱉기도 하고 물건을 훔쳐가기도 하고 모욕을 주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낙담이 되어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하나님께 작정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역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음성을 주시기를 “아무개 선교사야 나와 더불어 머물러 있어라”고 하신 겁니다. 생생하기 만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니 선교사는 너무나 큰 감동과 함께 기쁨에 넘쳐서 다시 힘을 내어 소망 중에 열심히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의 현장에 자기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섬이 달라진 겁니다. 섬 전체에 일곱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아홉 분의 목사 그리고 칠백 명의 원주민 성도들로 열매를 맺은 겁니다. 피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도 하시지만 고난 속에서 아픔 속에서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찬송도 있습니다. “이 심한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할렐루야! 심한 풍랑이 있습니까? 견딜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아무개야 피하지 말고 나와 함께 머물러 있자” 하시는 그래서 가장 아름답게 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사로잡히면
20절에서 28절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초주검이 되어 사람들의 손에 던져진 바울을 제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둘러섰을 때 바울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갔다가 다음날 아침 바나바와 함께 일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더베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많은 제자를 삼게 되었고 더베를 떠나서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가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굳게 하고 장로를 세워 교회를 조직하고 마침내 자신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었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는 겁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 두 가지를 발견합니다. 먼저 하나는 바울이 무수한 돌에 맞았을 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었다고 본 겁니다. 피가 터졌을 것이고 기절을 했을 것이고 머리를 비롯하여 온 몸은 돌에 맞은 상처로 말이 아니었을 겁니다. 만약 이런 가운데서 살더라도 최소 몇 주는 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바로 일어선 겁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힘주셨고 환난 중에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다. 분명히 아플 텐데 이상하게 안 아프게 분명히 깨어졌을 텐데 곧 바로 아물도록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곧 일어설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불행 중에 슬픔 중에 아픔 중에 곧 딛고 일어서도록 하시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돌에 맞아 죽을 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을 텐데 자신을 돌로 쳤던 사람들이 있는 그 성으로 들어간 겁니다. 인간적으로는 용서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상종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사로잡히면 그래도 용서가 되고 미워지지 않고 원망이 되지 않고 오히려 축복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놀라움을 발견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알기 전에 자신도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증인이 되었었던 사람입니다. 그때 복음을 몰라서 그랬습니다. 복음을 깨닫고는 이제 자신이 거꾸로 돌에 맞는 사람이 된 겁니다. 돌에 맞으면서 스데반 생각을 많이 했을 겁니다. 몰라서 그러는 저들이 이상하게 밉지가 않습니다. 자기가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또 다시 위험한 루스드라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환난과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바울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다메섹에서 기독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중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한 가정을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는데 우리의 수고와 우리가 겪는 아픔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다시 루스드라로 들어간 것처럼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시므로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를 만드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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