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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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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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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0-03-06 00:00    조회 4,698    댓글 0  
 
사도행전3:1~10절              “예수의 이름”         2010. 3. 7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처럼 기독교회도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1장에서 말씀을 하셨고 이 땅위에 세워진 기독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는 것을 사도행전 2장 끝부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3장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교회가 매우 생명력이 있고 능력이 있고 활력이 있는 행동하는 교회다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이 되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입구에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먹을 것을 구걸하기 위해서 항상 그 장소에 고정출연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도 그냥 지나치려는데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앉은뱅이는 무엇인가를 이들이 주겠거니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그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은과 금이 있으므로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과 금이 힘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힘이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아무리 많은 은과 금이 있다고 한들 그에게 그것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먹고 살기는 편해지겠지만 은과 금도 그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힘이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사실 앉은뱅이와 같은 사고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은과 금이 많으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자연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것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되고부터는 은과 금보다 더 큰 능력과 힘이 예수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은과 금으로 쫓아낼 수 없는 마귀를 권세 있는 이름 예수로는 쫓아냅니다.  
은과 금으로 치료될 수 없는 질병을 권세 있는 이름 예수로는 쫓아냅니다.
은과 금으로 이겨낼 수 없는 절망이나 고독 같은 마음의 상처를 이기게 하시는 이름 예수
은과 금으로는 죄악을 이길 수 없으나 죄악을 이기게 하시고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이름이 은과 금이 가지고 있는 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3세기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생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어느 날 교황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보물들이 있는 창고로 안내했습니다.
“토마스여 내가 교황으로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선물로 내게 준 것들일세 베드로사도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했지만 지금은 시절이 바뀌었다네  은과 금이 많을수록 좋지 않겠나?”
그러니까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을 바라보며 아무 두려움 없이 말하기를  “교황께서는 많은 은과 금은 가지고 계시나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는 말씀은 하실 수가 없으니 애석합니다.” 교황으로서 부는 얻었지만 진짜 중요한 능력은 잃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팔을 내밀어 앉은뱅이의 손을 잡았고 곧 일으켜 당겼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의 이름에서 오는 생명력과 능력과 활력이 다리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그 생생한 상황을 의사인 누가가 7절과 8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냥 뛰어 서서 걸으며 라고 하지 않고 발에 힘이 갔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발의 골격과 골격근에 힘이 생겼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사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 다음에 발목에도 힘이 전달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숭아 뼈 있는 부근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발목을 받쳐주는 발목인대가 서 있어도 좋을 만큼 걸어도 좋을 만큼 아니 뛰어도 좋을 만큼 치유된 것을 의사 누가는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할 의사가 지금 예수의 이름에서 나온 기적을 의학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힘보다 금과 은의 힘보다 예수의 이름에서 나오는 힘이 더 강하다 하는 것을 의사인 누가가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이 오신 목적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목적이 비록 세상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지만 교회를 통해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이 지금도 연속되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상처 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38년 동안 병자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다 못이 동하기를 기다렸다가 동하는 순간 바로 들어가기 위해서 못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옮겨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병은 38년 된 그 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생긴 마음의 병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옆에 환우들이 그토록 오래 머물고 있는 38년 된 병자를 위해서 너무 이기적이었고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번에 만큼은 우리들이 옮겨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 그러나 철썩 같이 믿었던 그들은 막상 물이 동할 때면 자신들이 먼저 들어가기가 바쁘지 38년 된 병자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38년 동안 짊어지고 있는 병보다 인간의 이기적인데서 겪는 아픔과 가깝다고 생각한 이들의 배신의 아픔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들은 믿을 만한 존재들이 아니구나
예수님은 이처럼 인간과의 관계에서 크게 상처가 생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오셨고 아픈 마음과 육신을 치료 받은 38년 된 병자를 마침내 자리를 들고 일어서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신 것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질병을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잃어버린 영혼에게 진정으로 안식을 주려는 것이고 이어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예수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이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주 망령된 자로 여겨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은 이 일로 인하여 생명을 내 놓을 수도 있었던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려서라도 잃어버린 상처 난 영혼을 구원해 주시려는 대속의 병 고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셨고 이 마음은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을 버려 대속해 주신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40년이나 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자를 고친 것입니다. 앉은뱅이 역시 자신이 일어서서 걸을 수 없다는 육신적 결함보다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사람들이 여과 없이 내 뱉는 말들과 행동 때문에 너무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불구의 몸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앉은뱅이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잃어버린 상처 난 영혼을 찾아오셨고 그 대속의 예수님에 의해서 앉은뱅이는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이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예수님의 이름에서 생명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앉은뱅이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뛰는 것이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예수생명의 전달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예수님은 머리 우리는 그의 지체라고 하는 영적으로 실현되는 공식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도록 앉은뱅이로 있었어도 예수생명이 오게 되니까 놀랍게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서며 걸으며 뛰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우리 인간의 현주소가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성전미문에 앉아서 상체는 살아있으나 하체는 불구가 된 성전을 가까이 두고 있지만 성전의 길목에서 절대로 스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앉은뱅이의 모습이 인간의 현주소라는 것입니다.
오직 생계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불구된 몸을 고쳐주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그래서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을 깨달아 불구가 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예수의 이름으로 온전케 하여 하나님을 찬양토록 만드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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