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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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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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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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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6-12-31 00:00    조회 5,843    댓글 0  
 
마태복음5:6절       “배가 부르는 행복”          2006. 3. 5

오늘은 87년 전 1919년 3월 1일 삼일 만세 사건이 있었던 주일입니다.
그때 당시 일제의 억압 속에서 독립을 얻으려는 몸부림은 신앙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때문에 일제는 기독교인들을 싫어하고 몹시 핍박했습니다. 80여 개의 교회가 파괴 혹은 전소되었으며 기독교 계통의 학교 8곳이 폐교를 당했습니다. 3.1운동 때에 옥에 갇힌 신도는 3,373명이었으며 목사는 54명, 전도사는 127명, 장로는 6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총독부의 기록이기 때문에 실제의 수는 더욱 많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립 선언서에는 이런 소망의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는구나, 새 문명의 사관이 인류의 역사 위에 던져지기 시작하는구나....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이 마당에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고 거리낄 것이 없도다.\"
하늘에 소망을 두었던 신앙의 선배들은 비록 자신이 희생될지라도 정의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옳은 일을 위한 행동을 의로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魯)나라의 한 마을에 가난한 여자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웃 제(齊)나라에서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이 마을에도 쳐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한 아기를 안고 한 아기는 손목을 잡은 채 이끌고 난리를 피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적은 점점 가까이 쫓아옵니다.
그러나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느라 도저히 빨리 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잡혔구나 싶었을 때, 여자는 부득불 한 아기를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얼른 내려놓고, 손목을 잡고 있던 아기만 데리고 뛰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손목잡고 있던 아기를 버리고 안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가야 빨리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적의 장군에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에 아기를 버리는 그녀를 보았던 장군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품에 안고 있던 아기는 내려놓고 손목 잡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느냐?”
여자는 조용히 설명했습니다.
“내가 품에 안고 가던 아기는 내 아이요, 손목을 잡고 가던 아기는 내 형님의 아이입니다. 난 내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의입니다. 의를 버리고 사적인 사랑을 택하여 형님의 아이를 버리고 내 자식을 구원한다면 나는 좋겠지요. 허나 그렇게 한다면 우리 집안 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꼴은 또 무엇이 되겠습니까?”
제나라 장군은 크게 감동하여 “의를 아는 여자가 있는 도성은 쳐들어갈 수 없다. 의가 있는 나라는 공격하지 못하는 법이다”라며 철수를 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여인입니다. 오늘 날 이런 분들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아이부터 살리고 볼 겁니다.
사적인 사랑보다 공적인 것을 위에 두는 행위를 세상에서는 의라고 말합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이 철도에 떨어진 일본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전철에 치여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에게 의인 아무개라고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행동을 세상에서는 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즉 롬3: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정의 사회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보지 않으시고 노나라의 그 여인도 의인이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던진 유학생도 의인이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가 분명히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에 나도 그렇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을 말씀하시면서 그 산에서 네 아들 네 독자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삼일 길을 걸어서 그산에 도착했고 아들에게 지게를 해서 제물을 태울 장작을 지우고 한 손에는 칼과 다른 한 손에는 불을 들고 올라가 제단을 만들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놓고 칼로 내리쳐 잡으려는 순간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아 하고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나를 위해 네 독자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 경외함이 네게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고 하시면서 그럴 줄 알고 준비하셨던 수양을 대신 잡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의입니다.
정말 그런가 볼까요? 약2:21~23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믿음으로 받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지만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말씀이기에 믿음으로 받았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는 높다란 나무에 큰 종 하나를 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씩 그 종을 세게 쳤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힘써 외쳤습니다.
\"Judgment is coming; judgment is coming; judgment is coming.\"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심판이 가까웠습니다.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노아는 힘써 외쳤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노아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비웃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 시끄럽게 종은 왜 쳐!\"
그러나 노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노아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이기에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의입니다.
창7: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그렇지요,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에 대하여 믿음으로 받아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노아를 보시면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것을 의라고 보십니다.
무죄라는 것은 죄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모두가 죄인이니 의로울 자가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히9:13~14절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에서 정결케 거룩케 무죄하게 되는 것이 무엇으로 가능하였습니까? 짐승의 피
그 짐승의 피로도 구약시대에는 죄에서 거룩케 정결케 무죄하게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 죽은 인생을 깨끗하게 못하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롬5:9~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예수의 피로 내 죄가 씻어 졌음을 믿을 때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사실을 어떻게 하라고요? 주리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이것을 주린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인즉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를 원하시는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옳은 소견인데 하나님이 옳다고 여기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또한 하나님이 의롭게 되는 방법으로 독생자로 피를 흘려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어버리시겠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믿는 자는 죄가 없어지는 무죄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사실에 대하여 주리고 목말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배부른 행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
2.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어요
-후렴-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셔서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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