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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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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6-12-31 00:00    조회 5,796    댓글 0  
 
마태복음5:7절       “긍휼히 여김을 받는 행복”     2006. 3. 12
기쁨은 받는데서 오지 않고 사실은 주는데서 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는 데에 기쁨을 아는 사람은 자기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주는 일들에 대하여 부지런합니다.
뉴욕 역대 시장 중 가장 명 시장으로 알려진 사람은 라과디아 (Laguardia)  시장이였습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 하루는 가게에서 빵을 도둑질하다가 붙잡혀온 팔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그 팔순의 노인은 \"배가 고파 빵에 손을 댔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최종적으로 이렇게 판결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행위는 10불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불을 꺼냈습니다. \"그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라과디아 판사는 자신의 중절모자에 10불을 넣어 재판부 서기인 베일리프씨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불들도 저처럼 너무 잘 먹은데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노인은 오히려 47불을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김으로 나도 남도 기뻐집니다.
오늘날 흔하게 듣습니다. 부모가 이혼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던 아이들이 그 아버지마저 가출하는 바람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서 소년 소녀 가장으로 참으로 어렵게 공부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병이 들었어도 치료 받을 돈이 없이 자녀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노인들 이 모든 이들은 너무나 불쌍합니다.
어제 뉴스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형제가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형은 예순 세 살이고 동생은 쉰세 살인데 형은 장가가서 삼년 만에 집을 나와서 움막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침에 두 형제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는 막걸리와 소주를 사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살았는데 동생이 먼저 죽고 한 시간 후에 형이 죽었는데 부검결과 타살 흔적과 자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부검해 보니 위와 창자에는 음식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그리고 위와 간이 창자에 녹아 붙어 있었다는 겁니다. 또 알콜중독으로 두 형제 모두 간경화와 동맥경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어서 사인을 간경화와 동맥경화로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다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에는 ‘불쌍함’이 넘치고 있습니다. 없어서 불쌍하고 제대로 못살아서 불쌍합니다.
성경 야고보서2:13절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없는 사람이 불쌍하고 제대로 못사는 사람을 불쌍해하는 것이 긍휼일까요?
2000년 전 유대나라 작은 마을 갈릴리 한적한 곳에 온 몸이 뭉그러진 문둥병자인 나병환자 한 사람이 꿇어 엎드려 있고, 그 앞에 예수님이 조용히 그 사람을 바라보시며 서 계셨습니다.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에게도 볼 수 없었던 큰 긍휼을 담고 있었습니다.
꿇어 엎드려 있던 그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긍휼에 찬 눈빛을 보는 순간 이 불쌍한 사람은 간절한 어조로 조금도 의심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손이 그에게 내밀어지고 그 손은 나병환자의 일그러진 몸을 부드럽게 만져줍니다. 그리고 연이어 단호하고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가 뒤따라옵니다.
“내가 원한다. 깨끗함을 받으라!”
순간 온 몸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렸던 나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가복음 1:40-42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
여기서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긍휼입니다. 단지 불쌍히 여기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도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둥병자를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동안 나병환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적어도 7~8미터 떨어져 있으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불쌍함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은 우리가 불쌍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 영혼을 사랑기 때문에 그 사랑이 담긴 불쌍히 여김입니다.
문둥병자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꺼려하는 나병환자를 나병환자라도 기꺼이 사랑하는 어미처럼 예수님은 만지신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긍휼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행복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그 사람을 하나님도 사랑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그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지하도에 젖먹이 아이를 끌어안고 추운데서 벌벌 떨면서 앞에 놓인 동전 그릇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여인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러나 불쌍하기는 해도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머리를 깍고 파리하고 수척한 얼굴을 한 아이가 다시 항암치료를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면 부모로써 아이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단지 불쌍만 합니까?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기라도 했으면 하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불쌍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긍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요3:16절이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가장 빠르게 응답하시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영혼구원일 겁니다. 왜요? 영혼구원이 가장 시급하니까요.
그 다음 시급한 것이 무엇일까요? 육신의 치료일 겁니다.
그 다음으로 맨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질문제일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제일로 긍휼히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영혼구원이라는 겁니다.
영혼구원에 대하여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데서 지나쳐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기까지 하신 그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불쌍히 여김이 있어야 되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할렐루야!
영혼구원이 되지 않으면 육체의 건강도 많은 물질도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1961년,독일의 나치 히틀러 잔당들에 대한 전범 재판이 열렸습니다.
잔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유태인 예이엘 디무르가 극악하기로 유명했던 히틀러의 참모 아이히만의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디무르에게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저 사람을 똑바로 보십시오. 저 사람이 아이히만 맞습니까?”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디무르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 깨어나자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왜 졸도를 하셨습니까? 과거의 악몽 같은 장면이 살아나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저 사람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만히 저 사람을 쳐다보다가 저 사람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수많은 우리 동료들을 가스실로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 앞에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없이는 절대로 새로워질 수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의 긍휼의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는 어둠 속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하나님의 긍휼로 가득한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소경 바디매오가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는 적어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만 하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에 찬 긍휼을 경험하게 되는 행복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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