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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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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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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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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9-01-17 00:00    조회 5,131    댓글 0  
 
출애굽기14:13~14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동하신다” 2009. 1. 18
늘 평탄한 일만 계속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와 구원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큰 풍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경험하게 되고 이 경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욱 진실하게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107:23~30절입니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 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하늘로 솟구치는 바닷물결을 보고 뱃사람들이 위험함을 느끼는데 영혼이 녹는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을 찾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주무시고 제자들은 배를 몰고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바닷물결이 배로 들어오고 배는 몹시 흔들리고 뱃사람들인 제자들이 무서울 정도가 되었을 때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부르짖어 찾지 않습니까? 예수님 우리의 죽게 된 것을 어찌하여 돌아보시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까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말하기를 이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사실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에서 제외시키시고 환난에서 제외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시련 가운데 이 환난 가운데 오셔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속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은 그 불 속으로 찾아오셨고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계신 것만으로 불이 저들을 사를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위로입니까? 환난을 벗어나서도 아니고 시련이 사라져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련과 환난 속으로 찾아오셔서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셔도 함께 하시는다는 것이 위로요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시편107:23절의 말씀처럼 바다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런 딱한 일이 있을까요? 이스라엘백성을 광야로 내보낸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바로는 이스라엘백성을 잡아들이기 위해 필사의 추격전을 시작했습니다. 특별 병거 육백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다 동원하고 장관들이 그들의 지휘관들이 되어 이스라엘백성들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가고 싶어도 앞에는 홍해가 있어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말 딱합니다. 큰 위기요 시련이요 환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10절입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이 이렇듯 참으로 딱한 곳으로 이스라엘자손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하나님이야말로 참신이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실제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시136:13~15절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참으로 딱하였었던 시련과 환난이 있었지만 지금 이스라엘자손들이 감사 찬송을 하나님께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을 경험하기 전에 참으로 딱한 시련과 환난의 현실 앞에서 11절에 이스라엘자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 같이 하느냐”
이 웬 시련이고 웬 환난이냐 우리가 죽게 생겼구나 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아니지요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신이시고 오직 하나님만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고 시련과 환난의 장소에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려는 것을 안다면 사실 어떻게 반응해야 옳겠습니까?
“하나님 잘 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원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낳을 때 나아서 죽게 하려고 그 해산의 고통을 하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자손을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어린양으로 대속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였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이스라엘자손을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려고 어린양의 피로 대속하셨습니다. 아멘? 절대로 죽게 하시려고 어린양으로 대속한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신 것은 절망 가운데 죽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려고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곤경과 낭패 그리고 절망스러운 환경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역경들 앞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신 것은 이런 일들로 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지 오히려 하나님이 나의 유익과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려는 것이야” 아멘?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입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잘 된 일입니다. 예 맞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아멘?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이 작은 어려움 큰 어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아무리 사람에게 큰 어려움이라도 어려움이 될 수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딱한 어려움이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을 지금 이스라엘자손들이 겪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에 대하여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라고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서 있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나 머리가 복잡하겠습니까? 이 생각 저 생각 이 궁리 저 궁리 불안하고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홍해 앞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홍해를 마르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산을 깎아서 바다를 메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애굽군대를 대항해서 그들을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이 이스라엘자손을 위해서 싸우시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 외에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할 일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사 그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대속하신 하나님의 행동을 단지 보고 믿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이 충족되는 것처럼 이스라엘자손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다 이어야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이십니까? 주님만 믿고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편히 쉬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자손을 위하여 싸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죄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와 죄의 사이에 누가 싸우시려고 개입하신다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
우리를 향해 싸우려고 칼을 쳐들고 달려드는 환경이란 놈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위기요 시련이요 환난인지 그러나 우리와 환경 사이에 우리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그 환경을 우리 대신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도록 믿음을 가지고 가만히 서 있는 일이요 가만히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참으로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하는 신앙인의 신앙자세입니다.
사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아멘?
미국의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 여사가 어렸을 때 일입니다. 아버지는 중국선교사로 다른 지방으로 멀리 출타하고 어머니와 둘만 있었는데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이 계속되다보니 이상한 소문이 돌기를 시작했습니다. 백인이 우리 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이 노해서 비를 주지 않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펄벅의 어머니는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지금 다른 곳으로 피하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큰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펄벅의 어머니는 몽둥이를 들고 폭도로 변한 주민들이 들어닥치던 그 밤에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라 놓고 케익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신은 뜨개질을 하고 펄벅은 인형을 가지고 구석에서 놀고 있습니다. 몽둥이를 든 주민들이 닥쳐보니 대문을 굳게 잠가 놓았을 줄 알았는데 대문이 열려있습니다. 단숨에 거실까지 쳐들어가 보니 불이 환하게 밝혀있고 선교사 부인은 뜨개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구석에서 놀고 있고 너무나 평안한 모습입니다. 펄벅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차와 케익을 좀 들고 가세요 하고 대접을 합니다. 너무나 평안한 이 모습에 가지고 왔던 몽둥이를 다 내려놓고 차와 케익을 먹고 모두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날 늦은 밤 온 마을에 비가 내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위기를 만났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곳에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주를 신뢰하고 시련과 환난이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리하나님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시련과 환난 속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과 환난을 만날 때에 “맞습니다. 잘 된 일입니다.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고백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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