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수요예배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7월 18일 삼일 저녁 예배 설교 (회복하라)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김진수 목사    작성일 -1-11-30 00:00    조회 1,909    댓글 0  
 
잠언28:13절        “당신도 회복될 수 있다.”      2007. 7. 18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죄를 고백하고 떨쳐버리는 일이 결코 공로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죄를 고백하고 떨쳐버리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죄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고 떨쳐버리면 불쌍히 여기시고 뿐만 아니라 형통한 인생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1서1: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불의로 인하여 더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깨끗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더러운데서 깨끗케 되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놓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우리가 죄로 인하여 더럽습니다. 그래서 불통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것을 정해 놓으셨습니까?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시32:3~4절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왜 다윗의 뼈가 쇠하였습니까?
왜 다윗의 영혼과 삶이 여름 가뭄처럼 진액이 말라버렸습니까?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죄를 자백하고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개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뼈가 쇠하는 육체의 고통을 당하고 여름 가뭄처럼 진액이 말라버리는 영혼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의 활력을 갉아먹는 무서운 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토설치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손이 낮 밤 가리지 않고 누르셨습니다. 죄를 회개치 않는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의 매가 그에게 가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름가뭄처럼 진액이 다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육체와 그의 영혼이 참으로 초췌한 모습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통회하고 자복하기 전까지 그에게 구원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부름에 믿음으로 응답한 아브라함은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순종하고 있습니다.
요14:21절입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하여 사는 자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창12:7절에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하는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예배는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여 기쁨으로 감격으로 드렸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창12:8절에 어떤 모습으로 더 나아갑니까?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모습이요 우리 하나님께 몰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하나님께 몰두하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40:31절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여호와께 이끌리고 여호와께만 몰두하는 자는 하나님이 새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끌림과 몰두하는 벧엘 동편 산으로 올라갔다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요?
아브라함은 벧엘 동편 산 거기다 장막을 쳤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수리처럼 영혼이 힘이 있어 영광의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은 분명 집이 있어 그곳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한 곳에 머무르는 집에 살지 않고 나그네로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산에 오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그네는 장막에 거합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힘이 있어 영광의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입니다.
벧전2: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고 하나님께 몰두하며 살아가는 나그네는 영혼을 거스르며 세상을 사랑하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처럼 나그네로 살려하지 않고 장막대신 소돔성의 집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몰두하는 삶에서 세상의 것들을 함께 보는 둘로 갈라진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한 롯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육체의 정욕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랬고 그와 그의 딸들이 그랬습니다. 롯은 그의 딸들을 위해 세상을 사랑하는 사위들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롯은 겨우 불 가운데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을 통해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산으로 오르는 신앙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몰두하는 신앙입니다.
장막을 고수하는 나그네임으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몰두하며 제단을 쌓는 신앙입니다.
여기에는 진실한 예배가 있습니다. 신령한 예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는 살아있는 예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리고 롯처럼 평지로 내려 온 신앙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산에 오르는 신앙이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삶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몰두하는 삶에서 세상의 것들을 함께 보는 둘로 갈라진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삶에서는 의지하던 세상의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실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공허한 형식주의자가 되고 맙니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을 들었던 바리새인의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정말로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는 신앙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아멘? 악한세대에 짝하여 살지 않고 그 죄 된 삶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자기 몸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히11:13절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믿음 따라 삽시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삽시다. 천국을 비롯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나그네임을 보여줍시다. 아멘?
이 삶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는?
장막과 예배이며 이곳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놓으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기만 하면 형통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이끌리며 하나님께 몰두하는 산으로 오르는 신앙을 사심으로 독수리처럼 힘 있게 청년보다 소년보다 힘 있게 피곤은 싹 달아나고 곤비함도 싹 달아나는 새 힘으로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일오전 설교동영상
24년 5월 12일 주일 예배 영상
하박국 2:4 김용우 목사
2025년 5월 12일
교회앨범
담임목사 위임·원로목사 추대 및 임직… 
동영상앨범
22년 낙도선교회
- -
-
선유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용우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 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yegrim@hanmail.net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yegrim@hanmail.net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