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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3:1~2절 “그때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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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9-21 00:00    조회 5,978    댓글 0  
 
마가복음13:1~2절                “그때와 지금”             2013.9.22.
헤롯이 지었다 해서 헤롯성전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을 46년 동안 지었으니 그 웅장함과 거대함은 성전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성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했던 것인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을 나가셨을 때에 한 사람의 제자도 다른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께 성전의 웅장함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에서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지게 되는데 너희가 자랑하는 돌들이 성전 어디에도 돌 위에 돌이 놓여 진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돌 하나의 크기가 길이가 12m 폭이 6m 높이가 3.6m 어마어마한 큰 돌인데 그 위에 얹어진 똑같은 크기의 돌, 그 얹어있는 돌이 멸망케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무너진다는 그 멸망을 누가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루살렘성전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이 하시는 예언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그렇게 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
1절에 한 제자가 성전을 보는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성전을 이루고 있는 이 돌을 보세요. 그리고 이 돌들로 이뤄진 성전의 엄청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전을 볼 때 제자는 성전의 규모에 대한 것이 그가 보는 성전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금으로 입혀진 성전 지붕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그 찬란함이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전 외모가 너무나 훌륭하다보니까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집중이 성전에 가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에게 가 있어야 옳았습니다.
쟌 칼뱅은 이 부분을 주석하기를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정작 하늘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의 관심이 성전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보다 사람이 만든 거대한 성전이었던 것처럼 그때 제자들까지도 관심은 참 성 전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유치원을 여러 개 경영하면서 앞으로 목회할 교회를 질 계획을 가진 돈을 꽤나 많이 모은 어느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가 자신의 계획을 알려줍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문화공간을 다 갖춘 그래서 운동도 하고 수영도 하고 쉬기도 하고 자기 교회 성도들은 교회만 오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교회당을 곧 지을 것이랍니다. 성도가 보는 것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으나 더 아름다운 하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가졌었습니다만 일부 목사들이 자꾸만 성도들에게 뭘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까? 거대한 교회를 만들어 거기서 성도들이 편하게 쉴 방도를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고 교회는 더 크게 되고 부를 누리게 되고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편안함이 오히려 해가 됩니다. 긴장감이 사라지고 게을러지고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더 누리려 하고 거기에 안주할 것이고 그러다가 신앙인으로서 망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똑같아요. 고난보다 평안을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을 힘든 것보다는 편안함을 이왕이면 나쁜 자리보단 좋은 자리를 원하지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니 네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라 했을 때 롯이 선택한 것은 겉을 보고 한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동산처럼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썩을 대로 썩어서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고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다 망하고 두 딸과 함께 겨우 몸만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벧후2: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딤후3:5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아도 성도는 달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바울사도가 어떻게 살았습니까? 딤후2:9절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최요섭님의 성전을 위한 기도 중에 한 대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성전에서 회개의 기도와 남을 위한 중보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이 성전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언제나 들리게 하시고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점점 더 커지게 하소서. 이 성전에서 서로의 발 씻어주는 물방울 소리와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랑의 속삭임이 메아리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이 성전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의 소리가 드높이 울려 온 누리에 불꽃처럼 퍼져나가게 하소서. 주여, 이 전은 하나님의 집이오니 길이길이 당신 품에 품어주셔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들이, 멋진 사건들이, 아름다운 이야깃거리들이 끝없이 한없이 피어나게 하소서”
겉이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과는 달리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침 뱉음을 당해야 하고 채찍에 맞아야 하고 십자가에 죽음 당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만 있지 않으실 것이고 부활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참 성전의 모습입니다. 여기 참 성전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그 겉모습하고는 다르게 썩고 부패한 것만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온통 썩고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이 겉입니까? 내용입니까? 예수 온전히 모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시는 살아있는 성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의 성전과 지금의 성전의 차이입니다.
그때의 성전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의 성전에 대해서 히9: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때의 성전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창조에 속한 성전이고 지금의 성전은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성전이랍니다. 그때의 성전에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단회적인 속죄만이 이루어진 반면에 지금의 성전에선 예수님 당신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의 성전과 지금의 성전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성전은 그때의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합니다. 그때의 성전은 사명이 참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였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단회적인 속죄를 이루는 불안전한 속죄는 예수님이 당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온전한 속죄가 이루어지므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10: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무엇입니까? 그때의 성전은 장차 올 좋은 일 지금의 성전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는 언제까지입니까? 실체가 올 때까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전은 돌 하나 위에 돌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AD67년2월부터 시작된 전쟁이 AD70년8월까지 삼년 반 동안의 전쟁 끝에 600만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수도 예루살렘은 빼앗기고 예루살렘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있는 것이 없이 모두 무너지는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구약의 성전에서 예수님이 떠나셨고 구약의 성전에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의 성전 손으로 짓지 않은 이 세상 창조에 속하지 않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10:8절입니다.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더 이상 구약의 성전에서 하던 속죄 희생은 원하지 아니하고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겁니다.
왜 입니까? 그 이유를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첫째 것 짐승의 속죄는 폐하심은 그리고 둘째 것 예수님의 속죄를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0절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구약의 성전에선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지금의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영원히 거룩함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와 지금 그때는 그림자 지금은 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것이 오므로 그림자는 폐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때의 것들입니까? 성전의 겉모습입니까? 아니면 성전에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입니까? 이 세상의 부요와 성공 그리고 번영입니까? 아니면 좁은 길이요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까? 고난당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 유익임을 고백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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