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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2:13~17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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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8-03 00:00    조회 6,145    댓글 0  
 
마가복음12:13~17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2013. 8. 4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자들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이랍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표현하셨고 회칠한 무덤과 같으며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톰 허베스톨의 저서 “불편한 진실 내 안에 바리새인”이라는 책에서 톰 허베스톨은 자기 자신에게서 바리새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너무 놀랐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나와는 다르다고 여기고 살았는데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바리새인과 닮았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톰 허베스톨의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려한 기독교적 배경에도 좋은 열매는 못 맺고 의롭게 살려다 자기 의에 빠지고 바른 교리를 고수하지만 사랑이 없고 공적 모습과 사적 모습이 다르고 성경보다 전통이 사역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복음을 지킨다면서 자유는 싫어하고 세상과 구별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닮지 못하며 영적으로 건강하지만 갑자기 넘어지는 등 너무도 바리새인의 모습이 나와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톰 허베스톨은 또 이렇게 해답을 내놓습니다. 바울도 빌3:5절에 바리새인이었고 6절엔 열심으론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전형적인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7~8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가 유익하던 것을 (유익하던 것이란 바리새적인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리새적인 삶을)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바리새적인 모든 삶, 행위로 의를 이루겠다는 삶)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바리새적인 모든 것)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바리새인으로 살 때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이루는 것으로 알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의를 이루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래서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는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를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의 삶을 청산해서 다행스럽지만 그 당시 책잡는 자를 보낸 바리새인들 모두는 예전의 바울처럼 의를 어떻게 얻는다고요? 율법을 지킴으로 그러니까 예수 믿음으로 얻는 의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 구태여 필요합니까?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교리와 반하는 교리이기 때문에 책잡아 없애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자들이 누굽니까? 헤롯당이 보낸 사람이랍니다.
헤롯당 Herodians은 헤롯 가문을 지지한 세력으로 규합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에 동조하면서 헤롯의 권력지지 기반을 위해서 뭉친 당시 사회적 강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유대인의 왕은 헤롯 가문에서 하고 있는데 다른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예수라고 하니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순전히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현세주의자들이었습니다. 세상과 구별을 내세우는 바리새인과 세상 속에서 어떻든지 출세와 성공을 목적으로 사는 헤롯당과 너무나 다른데 공통적인 목표는 같았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오직 헤롯왕가에서만 나와야 하는데 예수가 유대인의 왕으로 왔다니까 헤롯당의 열심은 예수는 처결이 되어야만 하는 대상이었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즉 예수 믿어야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을 잡힙니까?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때문에 책을 잡힙니다. 여기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자들은 예수님의 삶속에선 책을 잡을 수가 없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책잡는다는 말은 사냥한다는 말입니다. 덧을 놓고 짐승이 덧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간교한 술수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덧을 가린 위장 낙엽이나 깊은 웅덩이를 감춘 나무 가지처럼 14절 말씀을 보세요.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책잡으려는 자들이 그동안 보아온 예수님에 대해서 네 가지로 말합니다.
그 하나가 참되시다는 겁니다. 사실 누구만이 참되십니까? 롬3:4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참되신 분으로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을 겁니다.
또 하나는 그 누구에게도 꺼리는 일이 없으신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깨끗하신 까닭입니다. 요1서3:5절에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벧전2:22절에 “그는 죄를 범하지도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고후5:21절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시다.” 요1서3:3절 “예수님은 깨끗하시다.” 또 깨끗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요8:50절입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위해 구하고 행동하다보면 꺼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고 책을 잡으려는 자들의 평가였습니다. 저들의 말이 맞습니다. 책잡기 위해서 술수를 쓰고만 있지 않다면 너무나 합당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는 그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멸시를 당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손가락질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외모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가까이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가 오직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그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요8:31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36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14: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에 진리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되시다. 예수님은 깨끗하시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책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처럼 훌륭하게 알면서도 믿지 아니하므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었습니다.
14절 하반절에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5절에선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리이까 바치지 말리이까? 뭐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세금 바치라고 할 수도 없고 세금 바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입장 곤란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금 바치라 하면 바리새인들에겐 로마에 대항해서 세금 바치지 않는 이들이 많았는데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매국노 취급을 당할 것이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제국에 호의적인 헤롯당에 의해서 반역죄로 고발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매국노냐 반역 죄인이냐 둘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서 책잡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젠 됐다 싶었을 겁니다. 너 이젠 꼼짝 못하게 되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한 데나리온을 가져오라하셨고 그 은전에 새겨진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은전에 새겨진 형상과 글은 가이사였고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고 황제를 신으로 찬양하는 글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황제를 신으로 새긴 동전은 가이사의 것입니다. 우상의 동전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성전에선 돈 바꿔서 유대 돈으로 성전 세를 낸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이십니다. 그분만이 찬양과 경배의 대상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어떤 물질도 사람도 돈도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동전에 누구의 형상이 있습니까? 가이사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까? 창1: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에게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인 것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훼손시켜선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살도 살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에서 또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인간이 신적인 권위를 부여한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신적 권위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지신 신적권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뭡니까? 스스로 계신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인간이 만든 형상에 절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인간을 의인으로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천국백성이 되게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우리를 의인되게 하십니다.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천국백성 되게 하십니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게 합니다. 외식과 세상적 추구의 마음인 가이사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를 세상의 왕인 가이사에게 내 줄 수 없습니다. 우리 분명하십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온전히 드려지는 하나님의 형상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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