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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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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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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0:1~12절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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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11-05 00:00    조회 6,433    댓글 0  
 
사도행전20:1~12절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2011. 11. 6
사도행전18:22절에 안디옥으로 돌아옴으로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마감을 하게 되었고 다시 안디옥을 떠나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 에베소에 가게 됨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열 두 명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될 때 이 열 두 명의 제자들은 바울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들에게 안수하게 되니 방언이 터치고 예언도 하는 성령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에베소에서 삼 개월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유대인들의 비방과 반대로 인하여 이곳을 떠나 그 유명한 두란노서원에서 이 년 동안 복음을 전하였고 여기 에베소에서 많은 마법사와 마술사 또는 주술사들이 예수 믿고 자신들이 보물처럼 여기던 책들을 모두 불 살라 버리고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외에도 아데미 여신을 믿던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오면서 에베소교회는 크게 부흥하므로 아데미 여신을 만드는 우상공장 사장 더메드리오가 밥줄이 끊겨질 위험에 이르게 되자 데모를 일으켜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바울은 이년 삼 개월의 에베소 생활을 마치고 유럽 마게도냐로 떠남으로 삼차 전도여행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헬라에 이르렀을 때 석 달을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기로 공모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헬라를 떠나 다시 마게도냐 그리고 배를 타고 아시아의 드로아에 도착한 바울은 일주일을 머물게 되었을 때 주간의 첫날인 주일을 맞이하여 그 다음날 월요일에 떠나려니 전할 말씀의 분량이 많은지라 밤중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청년 유두고가 삼층 창문에 걸터 않아서 말씀을 듣다가는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떨어지고 만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으켜 보니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바울이 말씀을 전하다가 내려가서는 그 위에 엎드려서 숨이 멈춘 청년 유두고의 시신을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하라고 말하고 생명이 그에게 있다하니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고 바울은 다시 올라가 떡을 먹고 오랫동안 새벽이 되기까지 말씀을 더 전하고 떠나니 죽었다가 살아난 청년을 보면서 “야! 우리가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엄청난 위로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로 다시 살아난 유두고가 앉아 있던 창가는 삼층 창가였기 때문에 떨어지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이었다면 애초에 피했어야 옳았습니다. 시편1편1절에 시편기자는 복이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받는 좋은 환경도 아니고 악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지배 받을 곳이라면 애당초 피하는 사람이 바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십여 년 넘도록 깊은 산에서 열심히 수도를 하던 수도사가 어느 날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 산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풍자하는 연극장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는 연극장에 들어가 앉아서 관람을 하는데 재미가 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수도사가 마귀를 향하여 “마귀 이놈 내가 오랫동안 수도한 것을 알지 않느냐 네가 나로 세상 재미에 빠져들게 하는데 내가 넘어 갈 줄 아느냐 이놈 날 시험치 말라”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마귀가 하는 말이 “그래 십여 년 동안 수도를 했다는 놈이 내 영토엔 왜 들어 온 거야” 하더랍니다.
낚시 밑밥을 던지는 곳에 얼쩡거리는 붕어는 결국 잡히고 말지 않겠습니까?
죄로 유혹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책자가 있다면 그런 게임이 있고 놀이가 있다면 마땅히 멀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청년 유두고는 삼층 창가에 걸터앉아서 졸았고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에 앉았을지라도 졸지 않았다면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유두고는 졸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날 이른 새벽에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 주예수에 관하여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라도 더 전하고 싶어서 밤이 늦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전하다보니 청년 유두고는 잠시 졸게 된 것이고 그만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너무 피곤하였던지 아니면 상습적으로 설교시간만 되면 졸았던지 청년 유두고는 졸았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하면서 조는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병이 아니고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먹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영의 양식을 먹으면서 존다면 이는 밥을 먹으면서 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지 못하게 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잡 생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아이도 아닌데 앞에 있는 아이보고 까꿍까꿍하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조는 것이랍니다. 어느 교회에는 예배당 안에 난로나 기둥들이 있어서 난로나 기둥을 찾아서 앉는 분들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목사님 눈을 피해서 졸기 위해서랍니다.
어떤 분은 예배당에 와서 설교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조시는 분이 계시기에 목사님이 “집사님 눈에 고춧가루를 좀 치시면 어떻겠습니까?” 했더니 그 집사님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목사님 설교에 고춧가루를 치신다면 제가 졸지 않을 것인데 하도 목사님 설교가 밋밋하고 맛이 없어서 이렇게 졸지 않습니까?” 했다는 겁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중심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한 주간을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세상에 나가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3:3절에 시편기자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하오며” 라고 자신이 영적으로 졸며 잠을 잘까봐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한문으로 생(生)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살아있다는 것은 조심, 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니 졸고 잔다면 결국 그 생은 위험한 사망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에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날과 그 시를 아무도 모르고 마지막 때에는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뜻에서 말씀하시기를 노아홍수 때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고 영적으로 잠을 자던 사람들이 결국은 모두 홍수심판 때 살아남지를 못했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영적으로 깨어있던 사람들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한 반면에 영적으로 잠자던 다른 사람은 버림을 받았다고 하셨고 두 여자가 맷돌을 돌리고 있었는데 영적으로 깨어 있던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들림을 받은 반면에 영적으로 잠자던 사람은 버림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에게 고전16: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유두고는 청년입니다. 정신력이나 패기 그리고 힘에 있어서 한창 넘쳐날 때입니다. 그런데도 한 순간에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섰다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벧전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청년 유두고가 창가에 앉아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깥 모습 한 번 보고 말씀 전하는 바울 한 번 보고 창문을 살며시 열어놓고 바깥바람 쏘이면서 창가에 기대어 말씀 듣는 그러다가 졸게 되었고 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떨어져서 좋은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떨어져서 사고가 되고 문제가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믿음은 올라가야지 떨어지면 정말 큰일입니다. 그래서 엡4: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우리 신앙은 예수님을 향해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3:12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심으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내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등산가도 떨어지면 죽습니다. 신앙도 떨어지면 죽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두고도 떨어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한창 좋을 때인데 힘이 넘치는 때인데 그만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없으면 살았으나 죽은 것이요 힘이 넘치고 한창 좋을 나이라도 예수 없다면 그는 빈껍데기와도 같은 것인데 이 사고의 현장에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있었고 이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생명이었습니다. 요1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전15:45절입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시니 예수 만난 심령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겨 죽은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산 자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요11: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 보이셨습니까?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체가 상하기까지 한 나사로를 무덤에서 이끌어 내심으로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장차 심판의 때에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오시게 되는데 그때 죽은 자는 예수 없는 자요 산 자란 예수 있는 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망이 임한 그곳에 슬픔이 깃든 그곳에 문제가 발생하여 절망이 덮인 그곳에 예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위로가 있는 현장으로 가슴 벅찬 감동의 현장으로 예수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다는 결단의 현장으로 바뀐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에 누가 계십니까? 예수 생명 그렇다면 우리 가정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절망적인 문제에서 은혜로운 해결이 사망에서 생명의 역사가 할렐루야! 이렇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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