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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7:16~31절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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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1-09-10 00:00    조회 5,996    댓글 0  
 
사도행전7:16~31절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   2011. 9. 11
베뢰아에서 320킬로미터를 배로 내려와서 아덴에 도착한 바울은 아덴의 시가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놀라운 것은 고대 헬라철학자가 이야기한 “아덴에서는 사람보다 신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고 한 것이 빈말이 아닌 것에 놀란 겁니다. 바울이 바라 본 아덴이란 도시 구석구석에는 헬라 즉 그리스의 신들 외에 로마사람들 애굽사람들 아시아인들이 섬기는 신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실제로 이 지구상에 우상이라는 모든 것은 이 아덴이라는 도시 한 곳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던 겁니다.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바울은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는 유대인이나 경건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장터로 나가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매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이나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쟁론하였는데 이 모습을 본 아덴의 사람들은 바울을 예수와 부활을 전하는 또 다른 이방신을 전하는 말 쟁이로 보았는데 말쟁이란 뜻은 씨앗을 쪼아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새처럼 여기저기서 씨앗을 쪼아먹는 것처럼 들은 것은 많아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풍자한 말입니다.
바울은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한 반면에 바울보다 50년 후에 아덴을 방문한 지리학자이며 여행가인 파우사니아스는 아덴에 대해서 말하기를 “데메테르 신전을 비롯하여 돌과 나무와 대리석 그리고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각종 형상들은 예술의 극치 보여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의 철학자 르낭은 바울을 말하기를 “저 추하고 보잘 것 없는 유대인은 아덴의 보물인 형상들을 우상이라고 말함으로써 헬라의 예술을 모욕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감명을 받는 것들에 대하여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격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덴의 사람들은 죽어 있는 것에 대하여 자랑하고 그것을 뽐내고 있었던 것이고 이 죽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분명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바울은 모르면 몰라도 아니까 격분하게 된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이 있어서 그 신이 섭섭해 하고 화를 낼까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쳐지는 제단”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어떤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그 나중은 곤고함과 허망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또 다른 신을 찾아서 헤맸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그 당시 있었던 두 개의 학파가 소개가 되는데 정신적 쾌락이 진정한 선이고 다른 것들이 가치가 있다면 이는 쾌락을 산출하는 효용가치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욕망을 줄이는 길이 곧 행복한 길이라고 곧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스토아학파인데 그들의 결론은 자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런 교육의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덴이라는 도시는 묘하게도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라는 곳에 가서 너희들에게 종교성이 많다는 것을 알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이란 분에 대해서 내가 알려주고자 한다고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냐 그분은 사람들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들에게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다 사람이 옮겨놓아야만 하는 그런 신전이나 제단이나 형상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만물과 호흡과 생명을 주신 분이신데 하나님이 연대를 정하시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경계를 정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창조주는 하나님이심을 더듬어 찾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되 어렴풋이 알지만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는 아라투스와 클레안테스 이 두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움직이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몰라도 우리가 알면서 하나님을 사람이 조각하여 만들어서 새긴 우상처럼 만들어서야 되겠느냐 이 일을 우리가 회개하고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날이 오기 전에 정말 믿을 만한 증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자를 주신 일에 대하여 우리가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 같은 설교를 듣고 32~34절에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조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 듣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 결실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바울이 그들에게서 떠나게 될 때 몇 사람이 바울을 가까이 하여 믿었는데 아레오바고의 공무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인과 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을 통해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복음의 빚을 진 자로 그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동분서주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그리고 베뢰아로 지금은 우상숭배로 가득한 아덴의 한 가운데서 예수와 부활이라는 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고 그 생명이 바울 안에 들어오시니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수고하는 진실로 살아 있는 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바울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면 바울처럼 살아있는 자가 되어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모습이 보여야 되겠는데 다른 일들을 위해서 복음을 위한 일을 내려놓기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세상일을 그만두는 것처럼 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이어즈의 시를 소개해 봅니다.
환상의 구름은 걷히고 진리는 밝히 드러나며 광야나 군중 도시나 강은 공중의 파라다이스에 녹는다. <말씀에 의해 변화되어지는 세상을 말합니다.>
저 아래 정복자가 되어야할 자들이 죽은 영혼처럼 속박에 매이고 당연히 왕이 되어야할 자들이 노예처럼 사는 모습을 본다. 공허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들의 소망은 슬프게도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만족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거지요>
그때 갑자기 소집 나팔 소리처럼 거부할 수 없는 열망이 솟아 나를 전율케 한다. 주여 저들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나로 희생과 죽음을 감수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여기 시인 마이어즈가 주는 교훈은 우리는 바울처럼 기독교인인가? 그렇다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살리기 위해서 희생과 죽음을 감수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냐? 구원하고 살리며 정복자가 되어야 할 우리가 반대로 죽은 영혼처럼 속박에 매이고 왕이 되기는커녕 죄와 세상에 종노릇하면서 세상의 그럴싸한 것들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고유 명절인 추석명절에서 우리는 바울처럼 예수님과 부활의 복음을 전할 너무나 귀한 시간들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겉으로 드러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었으니 내가 받은 이 복음을 바울처럼 부지런히 전하므로 사람들로 구원 받게 하고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다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우리의 소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가 되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의 소생이다. 그러나 무엇이냐 그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지 않았느냐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중생이다 다시 사는 것이다 다시 사는 것은 진리인 말씀과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가능한데 진리이신 예수께서 이 진리를 이루셨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그런데 이를 믿게 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시다. 맞습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가 중생 얻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의 것으로 예배하지 아니하고 요4:24절 말씀처럼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설교는 계속됩니다. 회개하여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했지만 이제 복음을 들었으니 돌이켜서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서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구원을 찾기 위해 방황하지 말고 이제 구원 받을 길을 내가 제시 했으니 회개하라 하나님을 향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 중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결단을 미루고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놀랍게도 결단하는 믿는 자들을 생겨나게 하였습니다. 이 후 교회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아덴교회는 2세기 때 푸블리우스, 콰트라투스, 아리스테스, 아테나고라스 등의 감독과 순교자들이 나왔고 3세기 때는 평안했고 4세기 때 아덴 교회에선 신학자 바실과 그레고리를 배출했던 것입니다.
그 옛날 아덴처럼 거짓종교를 버리고 참 종교로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이 회개의 문을 거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잘못은 그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참 하나님이면서 사람으로 오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복음입니다. 거짓된 종교에서 벗어나 참 진리로 들어가기 위해서 바로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과 그의 부활의 복음이 필요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석명절은 아덴에서의 바울처럼 되기를 소망하며 전해진 복음이 우리의 가족과 친지에게 들어가 훗날 저들을 통해서 또 다른 하나님의 교회들이 세워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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