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BER  |    |    |  
회원 로그인
회원 가입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회원가입으로 서비스 약관개인정보 보호 정책 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파주 문산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bo_title_img1.png

6월 8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카카오톡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밴드 주소복사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08-06-07 00:00    조회 5,596    댓글 0  
 
갈라디아서4:21~31절    “우리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  2008. 6. 8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홍길동전이 있습니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자유가 없는 그 집의 종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홍 판서이지만 어머니가 종이기 때문에 홍길동은 정식 아들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서자가 되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서출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바로 자유가 없는 여종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여종의 자녀였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 역시 어머니를 따라서 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똑똑한 홍길동이가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래서 양반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하는 의적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서자는 불행합니다. 종인 어머니로부터 또 종으로 태어난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백년가약의 약속을 한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은 행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종에게서 난 이스마엘과 그리고 본 부인인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 남편의 나이 여든 여섯 자신의 나이 일흔 여섯이 되었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잉태의 조짐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서 아이를 낳게 하였습니다. 여종이 낳은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분명히 약속의 자녀가 아니지요?
그래서 본문23절 상반절에 “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났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마엘은 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아들이 아니라 엄히 말해서 종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은혜는 도저히 인간으로는 안 되는 것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은혜가 아니라 육체를 따라 낳은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여종이 아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라가 나이가 9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녀의 육체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들이 없어졌을 때 월경도 그쳐 버렸고 갱년기도 한참 지나버려 여자로서의 기능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분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도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아멘? 그리고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도 능치 못함이 없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육체로 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뿐 만이겠습니까?
우리도 살면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 갈급하여 꼭 필요를 느끼고 우리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 주실 것을 믿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선생님이 자기가 가장 아끼는 귀한 시계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먼저 시계를 꺼내 보이며 아이들 중에 키가 가장 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갖고 싶으면 내가 주겠다.\"
그러자 그 아이는 선생님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생글생글 웃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어린이에게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손을 내밀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 그랬는지 웃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은 제일로 키가 작은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얼른 시계를 받아 제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참 고맙다. 네가 내 말을 믿어 주었구나. 이제 그 시계는 네 것이니 잘 보관해라. 태엽 감는 것 잊지 말고...\"
그제야 두 아이는 후회했습니다.
\"정말 주시는 거예요? 그런 줄 알았으면 진작 내가 가졌을 것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절망이 우리 앞에 가로 막고 섰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능히 해결해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심으로 오늘 그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전10: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이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도 그렇고 그 아내 사라도 그렇고 그들은 마치 죽은 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육체로는 낳을 수가 없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시켜주시면 몰라도 세상 방법과 육체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육체의 기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아멘?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들 이삭은 육체의 자녀 입니까? 약속의 자녀입니까?
이삭은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아들입니다. 아멘?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은 것은 우리의 행위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은 우리는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아들입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예수 믿는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자유하는 아들입니다.  
24절~26절입니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 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두 언약 하나는 모세의 언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모세의 언약은 율법을 주신 것으로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모두가 죄의 종이 되는 것으로 사도바울 당시 율법의 중심지가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율법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모두가 종이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삭을 하나님이 은혜로 인하여 주신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지킴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인하여 종이 아니라 아들인 자유자로 삼으셨으니 이는 땅의 예루살렘에서가 아닌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는 세상의 율법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우리로 아들 되게 하신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아들된 것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3:24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가 아들로 인정될 만한 어떤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 없는데도 아들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인 우리는 롬5:1절의 말씀대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종은 주인과 더불어 풍성한 교제를 나누지 않습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입니다마는 아들은 아버지와 풍성한 교제를 나눕니다. 풍성한 아버지의 것을 함께 얻습니다. 이것이 아들입니다.
화란의 코리 텐 붐 여사는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을 숨겨준 이유로 나치에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이 끔찍했던 전쟁이 끝이 나고 코리 텐 붐 여사는 독일 뮌헨의 어느 교회에 초청을 받아 간증을 하게 되었을 때 아주 낯익은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남자가 나치 친위대 소속으로 수용소에서 자신을 비롯한 포로들을 괴롭혔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남자를 보는 순간 수용소에서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여자포로들을 발가벗겨서 복도를 걷게 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던 바로 그 남자 바로 그 남자가 간증이 끝났을 때 악수를 청합니다. 도저히 분노와 복수의 생각으로 그 남자의 악수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로 이 남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용서하신 사람을 내가 정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손을 내민 그 남자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손을 잡는 순간 어깨로부터 강한 전류가 흘러 남자에게까지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세상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용서가 아니라 바로 주님의 용서라는 사실을 코리 텐 붐 여사는 깨닫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자격이 없었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 되어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님의 풍성한 것을 경험합니다.
이제 분명한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31절입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아멘이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어떤 사람이 물지게 양쪽에 각각 항아리 하나씩을 매달고 물을 날랐습니다. 오른쪽 항아리는 온전했지만,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을 받아서 집으로 오면 왼쪽 항아리에는 물이 반 정도 비어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너무 미안했던 금이 간 항아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금이 간 항아리입니다. 저를 버리고 금이 안 간 좋은 항아리를 새로 사서 사용하세요.”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걸 알고 있지만, 항아리를 바꿀 마음은 전혀 없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한번 보렴. 오른쪽 길은 아무런 생물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됐구나. 하지만 왼쪽 길을 한번 보렴. 네가 물을 흘린 자리 위에 아름다운 꽃과 풀이 자라고 있지 않니? 금이 간 네 모습 때문에 많은 생명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금이 간 항아리처럼 아무 쓸모없는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의 것은 주면 줄수록 비게 되지만 주 안에서 거저 받은 은혜는 우리가 베풀면 베풀수록 더 많아지고 더 풍성해 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선유중앙교회
파주 문산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031-954-1080
031-954-1040
sunyouchurch@naver.com

회원가입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전체 최근게시글
  • 선유중앙교회 SNS를 방문해 보세요
    교회명 : 선유중앙교회 | 담임목사 : 김용우 | 주소 : 10811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독서울 5길 18-30
    교회전화 : 031-954-1080, 953-5977 | Fax : 031-954-1040 | 목사관 : 031-952-2097 | 이메일 주소 : sunyouchurch@naver.com
    Copyright ©1955~2024   sunyou.or.kr. All Rights Reserved.
    031-954-1080
    031-954-1040
    sunyouchurch@naver.com
    031-954-1080
    선유중앙교회 전화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