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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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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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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7-10-07 00:00    조회 5,462    댓글 0  
 
마태복음23:1~12절      “하나님 앞에 사는 것”      2007. 10. 7
우리에게는 가까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창기나 세리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 하고는 달리 저들을 친구삼고 매우 가깝게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이 친구로 삼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었고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13절에도 15절에도 그리고 16절, 23절, 25절, 27절, 29절에 계속해서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심지어 33절에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창기나 세리를 친구로 삼으실 정도로 정이 깊으신 예수님이신데 어째서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그렇게 화를 선포하셨을까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깨달으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되 제대로 믿자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이 칭찬을 하셔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칭찬을 못해주실망정 화를 선포하시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날 신앙인들인 우리가 문제를 삼는다면 누굴 문제 삼겠습니까?
창기와 세리이지 잘 믿겠다는 바리새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창기와 세리가 아니라 잘 믿겠다는 바리새인들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이 그러실 때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서 온 여인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끌려서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들먹이면서 이런 여인은 모세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앉아서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땅에다 쓰시는 것입니다. 좀 지체되는듯하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재촉합니다. 이 간음한 여인을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슬며시 자리를 떠나 가버렸습니다. 죄로 인하여 고소당하여 예수님께 온 여인은 내가 너를 죄로 정치 않겠다는 말씀을 듣고 이 여인은 용서 받은 은혜를 안고 집으로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간음한 여인을 율법을 가지고 고소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죄인임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죄인은 그 죄에서 용서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와야 용서 받습니다. 아멘?
이렇듯이 창기와 세리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비추인 자신들이 너무나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을 깨달았기 때문에 죄 용서 받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했습니까? 예수님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왔고 당신을 찾아 나와 죄 용서 받기를 원하는 그들을 위해서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잘 믿고자 하는 저들은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죄인들임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죄인들임을 깨닫지 못하니까 누가 필요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를 대속해 주시는 구주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가 바라는 것입니까? 뱀이요 독사인 사단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믿는다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정했음에도 예수님을 떠나가는 저들에게 예수님은 독사의 새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믿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잘 믿는다고 칭찬해주지요 자신들도 이를 은근히 자랑하게 되었고 결국은 교만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옛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던 뱀이요 독사인 사단도 교만 때문에 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믿다보니까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대충 지키고자하는데서 철저하게 지키려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위선의 행동으로부터는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5~7절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여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모든 자신들의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 띠는 띠에다 선유중앙교회나 예수 믿으세요를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띠를 넓게 해서 길게 겉옷에 달고 다니고 높아지려하고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제 모습입니다. 잘 믿으려는 의지가 강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잘 믿는 모습은 있는데 사람에게 보이려는 인간적인 마음을 용납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사람에게 인정 받고자하는 것 칭찬 듣고자 하는 것 존경 받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함으로 하기보다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가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우리도 위선에 차고 형식에 매인 바리새인처럼 되고 맙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겸손하게 기억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눅17:7~10절입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를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에게 칭찬 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날 때 그리고 마땅히 수고에 칭찬과 인정이 따르지 않아 상한 마음이 일어날 때 이 말씀을 읽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대접 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존귀한 자리에 마땅히 내가 앉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강한 마음이 일어날 때 이 말씀을 읽고 마음을 다스려 인간적인 마음을 이겨내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도 지옥에 들어갈 화 받을 바리새인이 되고 마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3층천의 세계도 갔다 왔습니다. 많은 전도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죽은 자도 일으켰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참으로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다고 말할 정도로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 그가 고전4:3~5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은 사람보고 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칭찬만을 바라보고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삶이 그를 바리새인처럼 위선으로부터 이기게 하고 세상의 칭찬과 존귀함을 받으려는 유혹에서부터 이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많은 수고와 나타난 능력 있는 결과로 인하여 분명 교만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칭찬만을 사모하여 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위선과 교만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아멘?
우리 또한 말씀을 지키려는 좋은 의도의 우리의 신앙행위가 위선과 외식으로 비춰지는 데서 이기는 삶을 살며 사람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의식하는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로 친구 삼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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