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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2:1~12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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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5-06-19 00:00    조회 6,360    댓글 0  
 
마가복음2:1~12절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2015. 6. 21
예수님이 보신 그들의 믿음
가버나움 동네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이미 문 앞 입구까지 막아선 상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네 명으로 들게 해서 바로 그 집에 도착을 했지만 이미 입구부터 막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 있는 곳까지 간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사태를 파악하고 다음 기회를 보자하며 포기하지 아니하고 감히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시도했습니다.
보통은 어떻습니까? 길이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말잖아요. “집 옥상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자” 그리고 결국은 중풍병자를 예수님 계신 곳으로 달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중풍병자를 침상에 들고 온 그 사람들처럼 생각만 조금 바꾸면 얼마든지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것을 생각의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지붕을 뚫는다는 것은 아무나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막혀있지만 그래도 그쪽으로 가는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처음부터 다른 길은 생각지도 않고 다른 시도 없이 그냥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그 사람들은 다른 곳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막혀있지만 뚫으면 길이 될 수 있는 길을 본 것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백성들은 모두가 길이 없어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바다에 길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지붕을 뜯어내면 예수님께로 중풍병자를 내릴 수 있다는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지붕을 뜯어내는데 지붕 아래가 온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흙먼지에 사람들이 아우성쳤다는 이야기 없었습니다. 분명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요하지 않으니까 오늘 본문에서 마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성령의 음성은 오히려 전혀 의외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아우성이나 이 무슨 무모한 짓이냐고 예수님의 질책 대신 예수님은 저들의 행동을 믿음이라고 보셨고 그 사람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어딜 봐서 믿음이 있는 행동일까?
“예수님 앞까지만 가면 된다 그러면 이 중풍환자는 낫는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멀쩡한 지붕을 뚫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는 도무지 불가능한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희망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해 가려는 우리의 길목을 막는 일이 생길 때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에게 나가는 길만이 희망인데 그 길이 살길인데 주님에게 가는 길을 막고 서 있는 것들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저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실하게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믿지 않는 것을 지식적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지식적 믿음은 미안하지만 사단도 가지고 있습니다.
막5:7절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귀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귀신을 고통스럽게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신데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확신을 가진 믿음으로 믿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예수님께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옵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에 부흥회를 여러 번 나간 적이 있습니다. 아마 신년부흥회로 여겨지는데 겨울이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그 시각에 방문을 열고 나오면 한데나 다름없는 주방이었는데 그 찬 콘크리트바닥에서 제 아내는 부흥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 기도에 힘입어서 그 교회 성도들이 모두 은혜 받을 수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의 마음은 내 남편이 지금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편하게 따뜻한 방에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길만이 내 남편이 말씀에 승리할 수 있고 부흥회 강사로 제대로 세울 수 있었음을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설교를 예수님께로 가지고 오는 것 문제를 예수님에게로 들고 오는 것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고 문제해결이 이루어질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 믿음인 것입니다.
마가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만이 아니라 막5:34절에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그 혈루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알기 전엔 많은 의원들에게 보이고 돈도 많이 허비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장애물이 여간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12년 동안의 병마의 싸움으로 인해 이제는 걸음을 띠기도 어렵고 많은 인파를 헤치고 예수님에게까지 가는 것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장애물은 레15:7절이었습니다. “유출병이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뭡니까? 혈루병 여인에게 있어서 율법이 제일 큰 장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대로라면 이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부정해 지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의 정결하시고 깨끗하심이 자신에게 전달이 되어 오히려 자신의 부정함이 없어지고 깨끗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뭡니까? 머리로만 가슴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면 내가 날 것이라는 확신을 방해하는 것들에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행위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말씀해 줍니다. 막10:5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께로 이 말씀을 듣기 전에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제지를 하였습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디매오가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오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보셨습니다.
만약 많은 사람들의 잠잠하라는 반대에 부딪혀서 잠잠했다면 예수님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람의 소리를 더 두려워하고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결코 우리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바디매오와 같이 장애물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눈을 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사람들의 시선과 말을 두려워했다면 지붕을 뚫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는 여전히 누워서 생활했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붕을 뚫어서라도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뜬금없이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레26:15~16절입니다.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이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모두가 죄 때문에 중풍병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9:2~3절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모든 질병이 다 죄 때문이 아닙니다만 왜 그렇습니까? “죄로 인하여 온 질병”이라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그렇다면 죄가 해결되면 질병도 낫게 될 것이라는 저들의 생각을 아시기 때문에 오늘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바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기에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중풍병자가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죄 사함을 받았구나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시지 죄 사함은 하나님만 주시는 것인데 그래서 7절에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증거는 중풍병자가 분명 나았다는 것 이것은 죄가 해결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죄사함을 주시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 맞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이 쉬운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어느 것이 쉬우냐고 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이 말은 너무나 쉽습니다. 쉽지만 유대인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이 말도 절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말 모두를 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과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씀을 모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니까? 하나님 자신이시니까. 우리는 모두 어렵지만 우리 구주 예수님은 모두가 쉬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모두를 주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죄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지 해결되는 회복의 힘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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