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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파주 문산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선유중앙교회

SUNYOU CENTERAL CHURCH
주일오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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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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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수 목사    작성일 06-12-31 00:00    조회 5,681    댓글 0  
 
마태복음10:34~39절          “자기 십자가를 지고”        2006. 10. 1
34절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 듣기가 좀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시지 않고 분쟁을 주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처음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베들레헴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불렀던 천사들의 찬송소리와 분명히 다릅니다.
눅2:14절에 무엇이라고 천사들이 찬송하였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여기서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지금 천사들이 하나님께 올린 찬송은 기뻐하심을 입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평화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요 오늘 본문 34절의 말씀은 예수님 때문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뉨을 통해서 오는 영적 갈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네이버 -> 핍박 -> 중국교회 핍박(웹페이지)
이 갈등은 가족에게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5~36절입니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리라”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쫓겨난 자식과 아내 이야기가 어찌 한 둘이겠습니까?
전라도 지역의 최초 세례식은 1897년 여름에 있었습니다. 이때 세례 받은 다섯 사람 중의 한 명이 유씨 부인이었습니다. 유씨 부인의 남편은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씨 부인은 딸만 둘 낳았을 뿐 아직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조선 여성의 가장 큰 의무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아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무를 하지 못하는 여인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 가련한 여인에게 예수의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여인은 여선교사 테이트의 집에 드나들면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단지 서양사람 집을 구경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받으러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남편은 분노하며 아내를 때렸습니다. 그는 “여자가 배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암소 같이 영리한 짐승도 배울 수 없는데 여자 같이 어리석은 것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유씨 부인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유씨 부인은 박해를 이기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축복해주셔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단독(丹毒)에 걸렸습니다.



(한의학 사전: 단독이란 피부의 헌데나 다친 곳으로 세균이 들어가서 열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지며 붓게 되어 종창, 동통을 일으키는 전염병.)
사람들은 단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돼지를 잡아 아기를 그 위에 눕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나을 리가 없었습니다. 유씨 부인은 의료선교사 잉골드를 불렀습니다. 그는 돼지 위에 뉘여 있는 아기를 꺼내서 치료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내심 아이가 엄마와 더불어 예수의 가르침을 받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유씨 부인은 신앙생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과거에 유씨 부인은 자신은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제사 준비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은 제사를 드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사 준비도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부엌에 가서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을 안 들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원한다면 죽이시오. 나는 제사를 드릴 수 없소.” 남편은 칼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곧 바로 신앙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두 딸과 아들을 기독교학교에 보내 교육을 시켰습니다. 유씨 부인은 밖에 나가서 전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서 갖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을 신앙을 지켰습니다.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7절에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이때 어거스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이십니까? 아멘? 할렐루야!
이전엔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1856년 사랑하는 자녀들을 전염병으로 잃은 프렌티스 여사는 거룩하신 주님의 위로를 구하면서 이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38절입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진정한 평안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없이하여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버림당하신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죽으러 가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매일처럼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매일처럼 죽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고전15:3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평안합니다.
두더지 게임기가 휴게소에 설치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디서 두더지가 쏙 나올지 모릅니다. 나올 때 방망이를 들고 있다가 내리 치는 것입니다. 점점 나오는 횟수가 빨라지면서 두드리는 방망이도 재빠르게 움직여야만 두더지를 때릴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교만이 쏙하고 머리를 내미는 순간 방심치 않고 있다가 이놈 죽어라 하고 내리치는 것입니다. 음욕이 쏙하고 머리를 내미는 순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가 이놈 죽어라 하고 내리치는 겁니다. 이처럼 불신앙을 내리치고 게으름을 내리치고 악한 욕심을 내리치고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내리치고 아멘?
갈2: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는 바로 여기에 참 평안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3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죽지 않는 자는 잃는 것이 많고 죽는 자는 십자가 지는 자는 얻는 것이 많고 그러므로 날마다 죽는 십자가 지고 가시므로 얻는 것이 많은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평안의 주인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요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환경에 지배 받지 않습니다. 관계없이 지속되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대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1: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쉼, 진정한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때요? 우리 짐은 내려놓고 우리 짐은 누가 지셨습니까? 주님이 지셨고 2천년 전에 믿는 자의 모든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짐은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짐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지고 간다면 우리는 그 짐과 함께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십자가는 대신 예수님이 지셨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지을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쉽고 가벼워서 비록 십자가를 졌지만 쉼, 평안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 몫에 태인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진정한 평안을 주님께로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마땅히 져야할 성도의 의무를 가리킵니다. 성도가 이 의무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진정한 쉼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면 잠을 제대로 깊이 잘 수 없습니다. 쉼, 평안은 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검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타협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검을 가지고 불의와 싸우는 모습이 없이는 절대로 예수님의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의를 눈감고 불신앙을 눈감고 우상숭배를 눈감을 때 그 당시는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속담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편안한 사람이요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은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유는 건강하기 위해서 마시는데 놀랍게도 편안하게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편안한 신앙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좀 불편은 해도 불의와 불신앙과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대하여 검을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서 편안함보다는 평안을 소유하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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