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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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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9:1~13절 “권능의 나라가 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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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3-05-18 00:00    조회 6,429    댓글 0  
 
마가복음9:1~13절          “권능의 나라가 임하다.”         2013. 5. 19
세상이 변하기보단 그보다 먼저 내가 예수로 사는 자로 변하기를 원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해서 참으로 합당한 대답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의미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제자들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그렇다면 아멘,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했어야 했습니다만 훌륭한 신앙고백과는 다르게 아닙니다. 예수님 고난을 받고 죽으시다니요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아주 강하게 반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사탄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리라”하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을 보세요.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바꾸시고 정복하시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세상을 만드셔서 우리로 하여금 변화된 세상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잘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나 한 사람을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로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자꾸만 확장되는 것을 위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속엔 제자들처럼 세상이 변화되기만을 원하고 있지 정작 내가 변화되는 일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프레드릭스버그라는 아주 유명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총격전은 곧 진격 나팔과 더불어서 육탄전으로 바뀌었고 육탄전은 수많은 부상병들을 발생시켰고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습니다. 육탄전이 벌어졌던 장소는 많은 부상병들의 신음소리로 진동했습니다. 이때 누가 시켜서도 아닙니다. 북군의 한 병사가 물통을 들고 육탄전이 벌어졌던 장소로 뛰어듭니다. 남군에선 놀라서 총격을 하다가 이내 총격을 멈추었습니다. 왜냐하면 물통을 든 북군의 병사가 북군 남군 가리지 않고 부상병들에게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남군 북군 병사들이 이 시간만큼은 싸우지 말고 부상병에게 물을 주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군의 장교는 바로 그 북군의 그 병사에게 “What is your name?” 하고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병사가 대답합니다. “my name is christian” 내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병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바로 목숨을 건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회적 변화가 아닙니다. 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모신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예수 믿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봐야만 십자가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섰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모습을 볼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엿새가 지났다고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일 동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변화산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권능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제자들은 아마 이 엿새 동안 모두 잊고 있었을 것이고 마음에 두고 있는 제자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심을 원치 아니하고 사람의 일과 생각으로 차있는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권능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서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권능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시므로 하나님을 몰랐던 자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능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가 십자가 없이 가능합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십자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있었고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흘 만에 살아나신다 하심을 반대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이 오직 한 길 십자가로 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예수님은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집사가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듣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돌을 들어 던집니다. 그런 중에 스데반집사는 무엇을 봅니까? 천국에 계신 예수께서 양팔을 벌리시고 자신을 환영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난 스데반은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십사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십자가를 사랑하게 되며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서 변화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예수 계신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기꺼이 환영합니다. 그 높은 산 아무 것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습니다.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장막도 없습니다. 더구나 잘려면 덮을 것도 없습니다. 초막이라도 질 생각을 하고 거기서 거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세상보다 그래도 여기가 좋다고 말입니다.
고전1:18~25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좋은 일하고 착한 일하고 구제 많이 하고 그러면 천국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천국 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택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 갈 수가 없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을 미련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미련한 사람들이 되었으나 어쩝니까 미안하게도 천국을 가게 되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로 천국으로 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입으신 옷이 그렇게 희게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빨래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희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산에서 엘리야도 모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천국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구약의 권능의 선지자 엘리야가 있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율법을 받은 지도자 모세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땅으로 옮겨진 천국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없는 엘리야, 예수 없는 모세 아무 소용없습니다. 엘리야와 모세는 없어도 예수 계시면 거기가 천국이고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믿습니다.
엘리야가 왜 있으며 모세가 왜 있는 것입니까?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있습니다. 저들의 존재의 목적이 자신들을 통해서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이 덮는 듯싶더니 음성이 들립니다.
본문7절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구름이 걷힌 주변을 살펴보니 엘리야도 모세도 없는데 예수님은 그대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는가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반 데비소니치의 하루라는 소설에 이반이 힘든 형무소생활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 시대의 감옥이라는 것은 너무나 있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감옥에서 이반은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동료 죄수가 이반에게 말합니다. “기도해도 소용없을 걸 절대로 빨리 나가진 못할 거야” 이반이 말합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감옥에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나는 지금 이 어렵고 힘든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었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것을 알면 우리가 견디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아픔도 이길 수 있고 괴로움도 견딜 수 있고 고독 또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예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28:20절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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