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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6:1~6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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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12-01 00:00    조회 5,671    댓글 0  
 
마가복음6:1~6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    2012. 12. 2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에서 일하던 두 종이 서로 싸우고 있더랍니다. 주인이 뭐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나가서 가만히 들어보니 서로에게 별명을 붙인 것이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하여서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좀 말라 보이는 종이 몸이 뚱뚱한 종에게 곰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몸이 뚱뚱한 종이 몸이 마른 종에게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별명을 불러가며 서로 티격태격 언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인이 두 종을 불러 놓고 몸이 마른 종에게 네가 저 사람을 곰이라고 부른 것은 네 마음속에 곰과 같은 음흉하고 미련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네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게 된 것이란다.
그리고 이번에 몸이 뚱뚱한 종에겐 네가 저 사람을 원숭이라고 부른 것은 네 마음속에 원숭이 같은 간사하고 가볍기 그지없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원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교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5:18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사람들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인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2절에 예수님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살아온 태어난 고향과도 같은 나사렛 동네의 회당에서 안식일이 되어 가르치시니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자기 고향 사람인 예수가 지혜로운 말씀과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이런 놀라운 지혜와 권능을 얻었을까? 그 지혜와 권능을 누가 주었을까? 그러면서 3절에 저 사람은 우리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목수가 아니냐?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와 요셉, 유다, 시몬의 형이 아니냐? 또 그의 누이들도 여기서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느냐? 꽤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듣고 놀라울 정도의 가르침, 서기관과 비교할 수 없는 권위가 담긴 말씀, 또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을 온전하고 깨끗하게 하시는 이적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현실을 보았다면 기뻐할 일이요 나사렛동네에 예수라는, 권능이 있고 지혜가 넘치는 선지자가 생겼다면 경사 중에 경사가 아닙니까? 요즘 같으면 프랑 카드도 동네 어귀에 걸고 소라도 잡고 잔치해야 할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지혜와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기 전, 예전에 예수님을 잘 안다는 이유가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멍에나 쟁기가 고장 나면 부러진 멍에나 쟁기를 가지고 어디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문짝을 고치던지 새로 만든다든지 집을 수리하던지 짓기 위해선 누굴 찾았을까요? 나사렛 동네의 예수라는 목수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렛동네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을 하는 예수에 대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은 자신들이 잘 알고 있던 그런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에 놀라고 행하시는 이적에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동네 사람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의 행하는 권능이 어찌된 일이냐?”
이 질문의 저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목수 예수가 갑작스럽게 이런 지혜와 권능의 소유자가 된 것은 적어도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처럼 음부의 악의 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째 이럴까요?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걸까요? 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악한 세력의 일로 보는 것일까요? 예전 과거에 알고 있었던 예수에 대해서 너무나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설마 하나님의 역사로는 보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요7:16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회당에서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행10:38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이 어떤 영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십니까? 사11:1~2절입니다.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 한 싹인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는데 그 여호와의 영이신 성령은 어떤 영이십니까?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오늘 본문의 나사렛사람들이 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그 지혜의 출처가 어딥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나사렛사람들은 예수님의 과거를 안다는 것 때문에 악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 짓고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들린 삶이 얼마든지 현실을 바르게 보질 못하게 하고 있고 올바로 말하게 하는 것을 막고 있느냐 하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과거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변화된 현재의 삶에 박수치고 기뻐해 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말이 나오고 비판하는 말이 나오고 안 좋은 소리가 나오고 모두가 내 속이 그래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란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말 한대로 산데요. 평소에 하는 입버릇대로 산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이 바로 그 사람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칭찬과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하게 되자나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지고 그러면 나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래서 에너지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은 좋은 에너지이고 나쁜 말은 나쁜 에너지래요 좋은 에너지가 흘러넘치면 나도 좋고 남도 좋습니다. 사람은 평소의 입버릇대로 말 하는 그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이 있대요 “밥을 먹을 땐 잘 씹어서 먹어야 자기 속이 편한 것처럼 말을 할 땐 잘 씹어서 해야 듣는 이의 속이 편하다”

나사렛동네의 사람들의“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의 행하는 권능이 어찌된 일이냐?” 질문은 분명 불신앙에서 비롯되었고 이 같은 불신앙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습니까?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불신앙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정지되고 만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지막 6절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무엇입니까? 그들을 덮고 있는 불신앙의 세력이 너무나 크고 강해서 이상히 여기셨다 즉 놀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결과는 예수님이 다시는 나사렛에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신앙의 무서움 아닙니까?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 중앙 회중석에 커다랗게 라틴어로 눅22:31~32절 말씀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불신앙에는 그 배후에 사단이가 키질을 하듯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집요하고도 반복해서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능력인데 우리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주님은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고아원에서 성장하던 소년이 미국의 양부모로부터 입양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양부모는 미국으로 오는 배표와 더불어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소년은 고아원에서 준비해 준 달걀 몇 개와 쌀 한 봉지를 들고 배에 올랐습니다. 미국까지는 2주가 걸리는 먼 길인데 다른 사람들은 배 안에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이 소년은 끼니때마다 생쌀을 씹어 먹으면서 고픈 배를 참아냈습니다. 배가 이제 미국에 가까이 왔을 때 소년은 배고픔을 더 이상 못 참겠어서 식당 안을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발견한 승무원이 “너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소년이 대답합니다. “배가 고파서요.” “그럼 들어가서 밥을 먹지 그러니” “저는 돈이 없어요.” “배표는 가지고 있니” “네 여기 있어요.” 배표를 본 승무원이 말했습니다. “이 배표엔 식사비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란다.”
이 소년처럼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믿음의 배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할 줄을 몰라서 풍성한 식당에서 자유롭게 가져다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 없는 삶은 극도로 궁핍하게 지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배표를 가진 사람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풍성한 혜택을 누리게 하는 힘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믿음을 요구 받는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우리를 그렇게 내 모는 불신앙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까지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불신앙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정지되었고 다시는 예수님이 그곳에 돌아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불신앙으로 어둠처럼 뒤덮은 나사렛동네에 한 줄기의 빛 같은 희망이 있는 이야기가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지만 소수의 병자에겐 안수하여 고치셨다.” 무엇입니까? 불신앙의 능력은 전능자를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멈추게 하지만 믿음의 능력은 전능자로 하여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멈춤의 자리에서까지도 손을 내밀어 안수하시므로 고치시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믿음 가지고 있는 이에게 지키시며 원수의 목전에서도 믿음 가진 이에겐 차려진 밥상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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