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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5:25~34절 “옷에만 손을 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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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부    작성일 12-11-03 00:00    조회 5,917    댓글 0  
 
마가복음5:25~34절       “옷에만 손을 대어도”      2012. 11. 4
25~26절은 한 여인의 형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명은 혈루증입니다. 피가 유출되는 질병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뜨거운 날씨 때문에 감출 수 없는 냄새와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피가 모자라 오는 빈혈 등이 여인을 상당히 힘들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레위기 15:4절과 5절에 율법으로 유출병으로 인하여 자신만 부정한 것이 아니고 침상도 부정하고 그가 앉은 자리도 부정하고 그 침상이나 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도 부정하니 옷을 빨고 몸을 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요 12절에선 그가 만진 질그릇도 부정하니 깨뜨려야 하며 나무그릇은 물로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이런 세월을 자그마치 12년 동안이나 견디어 왔다는 것입니다. 실력 있다는 의사들을 다 찾아 다녔고 민간요법도 안 해본 것 없이 다 했지만 돈만 없어졌고 몸은 더 중하여 졌다고 이 여인의 형편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27절과 28절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외롭게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 여인이 예수님 소문을 듣고는 31절에 에워싸 미는 정도로 많은 사람들 가운데 끼어들었고 더군다나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율법으로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율법도 율법이지만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이 지긋지긋한 몹쓸 저주 받은 질병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강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9절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깨달은 것이 ‘내가 나았구나’ ‘나는 나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습니까? 거북하게 흘러내리던 피가 멈춘 것을 피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있을 때 가시던 예수님이 돌이키셨습니다. 그리고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3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조용하고도 가만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을 예수님은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마치 빠져나가는 물처럼 예수님 자신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이 나갔기 때문에 알 수 있으셨습니다.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에게 있는 능력이 여인에게 임하게 된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많은 무리가 밀고 밀리며 가는 중인데 당연히 예수님 옷에 스칠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31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2절에 예수님은 여인을 찾아 무리를 둘러보십니다. 그러니까 33절에 여인이 자신을 찾으신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정한 자가 만졌기에 예수님도 부정해 지셨고 그래서 자신을 찾으시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34절입니다.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너 때문에 부정하게 되었구나 불호령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평안의 말씀을 주시는 겁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오늘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특색이 있다면 무엇일까? 큰 믿음일까요? 그렇다면 네 믿음이 크다고 하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냥 단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의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이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믿음일까요?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가 던져준 그의 겉옷을 들고 그의 제자 엘리사가 요단강을 이리저리 치면서 요단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마는 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어디서 비롯된 생각이었을까요?
어느 목사님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항상 진실했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예 그렇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물으시기를 너는 항상 깨끗하게 생활했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예, 그렇지도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정직하게 생활했는가하고 재차 물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역시 그러지 못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만 머리를 숙이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비치며 예수님께서 그 목사님의 곁으로 오시더니 하나님을 우러러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사람이 깨끗하게도 진실하게도 정직하게도 살지 못한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저 세상에 있을 때 항상 내편을 들어 살아왔고 나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오늘 이 목사 편에 변호해 주겠습니다.\"하시니 알았다고 통과시켜 주더랍니다.
여기 이 목사님은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예수가 구주이시고 하나님 자신이시며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를 믿고 있습니다마는 그 당시 병 고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누구도 예수님을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메시아로 믿지 않았을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이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여인의 믿음은 그 당시 어떤 초능력자에게선 옷으로부터 그 능력이 흘러나온다는 사회적인 속설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한 제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여인에게 있는 믿음의 특색은 자신에게 있는 비참함과 초라함 그리고 불결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지만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주 앞에 나오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이고 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쌍히 여기심으로 구원이 임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을 돌보기는커녕 내 신앙 지키기에 급급하고 더 나아가 혈루증 앓고 있는 여인처럼 하나님 보실 때 처음에 뜨거운 신앙 열정과는 다르게 피가 빠져 나가듯이 영적 생명력을 잃어가고 빈혈 증상처럼 환난과 세상환경에 비틀 거리며 죄의 불결한 냄새가 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정직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그런 존재가 아니냐는 겁니다.
무엇이 믿음이라는 것입니까? 이런 우리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주님께 엎드리는 것이 믿음이고 이런 믿음에 우리 주님이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혈루증여인과 함께 예수 앞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엎드리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연약한대도 비참한대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고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은 솔직한 것인데 솔직하지 못하니까 구원 받을 만한 참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하나님과 만나기를 원합니다. 내가 꽤나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생각된다면 하나님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 질 것이지만 여기 본문의 여인처럼 솔직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만나 그 분에게서 능력이 나와 우리에게 임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셨고 여인이 있는 쪽을 향해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게 한 믿음의 여인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여인이 자기를 예수님께 보이는 순간 감추고 싶었던 아프고 더럽고 추한 과거가 세상에 까발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철저한 율법에 매인 유대인들이 자신들 속에 부정한 유출병을 가진 여인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까지 부정해졌다 그래서 부정한 여인을 향해서 돌을 던질 수도... 그렇다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인이 사는 길은 모르쇠 작전으로 나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이 예수님께 엎드려 이실직고합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온전한 구원으로 나가게 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폴란드의 피아노 연주가이며 작곡가로 정치가로 유명한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보스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 열 두, 세 살 되어 보이는 구두닦이 소년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꾸벅하고는 구두를 닦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누추한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솔을 들고 있는 소년의 얼굴에는 구두약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지만 귀여웠습니다.
그래서 파데레프스키는 “내 구두는 지금 당장 닦지 않아도 좋은데 네 얼굴은 좀 닦아야 하겠다. 네가 얼굴을 닦고 오면 이 은전을 주겠노라”고 하고는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소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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